안녕하세요... 요즘 너무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30대 여자입니다...저한테 정말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안나와서 이곳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어요... ㅠㅠㅠ
정말 최대한 짧게 쓰고 싶은데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드려요...
저는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회사를 몇년 다니다가 현재는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구요. 그 사이에 잠시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작년 4월쯤 영국에서의 어학연수가 끝나갈 무렵 영어 스피킹 향상을 목적으로 언어교환을 하면서 알게된 영국인 남자친구와 약 10개월 정도 연애를 하다가 최근에 여러가지 이유로 헤어졌어요.
헤어진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일단 저는 이 친구를 만날 때 이 친구의 상황을 다 알고 만났습니다. 상황이라 말함은,
- 이 친구가 자라온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던 점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부모님이 이혼, 자라면서 늘 어머니 밑에서 구박받으며 자람, 스무살 지나고 어머니가 이제 네가 네 삶 살아라 하시고 얼마 뒤에 재혼하심, 가족들로부터의 재정적인 서포트 전혀 없음)- 대학 시절 건강과 학비 문제로 힘들었던 점 (대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앉은 자세가 안좋아지면서 목/어깨 근육통과 함께 심각한 두통에 시달리면서 휴학을 함, 복학할 때 학교 행정처리에 문제가 생겨서 정부지원금을 못받음, 학비를 혼자 감당할 여력이 안되서 대출을 하려고 했으나 빚지는게 싫어서 학교를 그만 둠, 알바로 벌어놓은 돈은 병원비로 다 나감)- 우울증을 겪었다는 점- 성격이 매우 내성적이고 사람들에 대한 상처가 많아 친구가 거의 없고 친구를 잘 안 만듬- 대학 때 전공이 일본어와 경영임 (일본어 전공이란 이유로 주변에서 놀림;;을 받음)- 대학교 졸업장이 없어서 지금은 자기 전공과 관련없는 쇼핑몰 고객센터 직원으로 일하고 있음- 영국 여자를 만난 적이 한번도 없음 (처음엔 이게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유인 즉슨 자신은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데, 영국인들은 대부분이 영어만 할줄 알고 다른 나라 언어를 웬만하면 배우려는 생각이 없어서 싫다고 함, 기본적으로 아시아권 문화를 좋아함)- 종교가 다르다는 점 (저는 개신교고 이 친구는 엄밀히 따져서 불가지론자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저는 이 친구가 저를 많이 좋아하고 아껴주는 마음과 세심한 배려, 그리고 당시 이 친구가 ↑ 위에 열거한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에...힘든 것들을 같이 이겨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이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어요. 종교가 다른 문제는, 이 친구가 일단 교회를 같이 가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었고 본인이 같이 교회 다니면서 마음 속에 확신이 생기면 더 제대로 믿게될 거라고 해서 이 부분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작년 4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떨어져서 지냈어요. 사귀기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되서 제가 비자 때문에 한국에 잠깐 돌아가 있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롱디 연애를 하며 저희가 자꾸 전화통화를 하다보니 부모님께 제가 이 친구를 만난다는걸 들켜서 한국에 있는 5개월 동안 온갖 반대에 시달려야 했고 ㅠㅠ 저희 부모님은 이 친구가 외국인이라는 사실보다도 외국인인데 미래나 비전이 안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제가 이 친구 만나는 걸 반대하셨어요. 제가 나중에 만약 영국에 살게된다 했을 때 과연 이 친구를 믿고 내 딸을 타지로 시집 보낼 수 있을까, 이 친구가 한국에 오더라도 직업을 구할 수는 있을까 이런 걱정으로요....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서로 통화하면서 어쩌다보니 저희 부모님이 이런 우려를 하고 계신다는 걸 이 친구에게 전달하게 되었고.... 이 친구도 어쩌면 그때부터 점점 저희를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들이 만만치가 않구나 하고 대충은 감을 잡았을 거에요. 하지만 늘 이 친구는 '나는 나 자신을 믿고, 자신감이 있고, 너희 부모님께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증명해보일거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미래는 밝을 거니까 힘내자' 라고 했거든요... 제가 한국에 있는 동안 영어 시험 때문에 힘들 때도 늘 힘이 되는 말들과 영상들을 찍어서 보내주곤 했구요.
그래서 저는 이 친구를 믿었고, 점점 부모님의 말씀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기 시작했고....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들만 찾으려고 했고,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가끔 저희 엄마가 전화로 저에게 잔소리를 하실 때면 자꾸 그러지 마시라고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했었어요.
그런데 11월쯤이었을까요. 이 친구가 좀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다면서 다시 일을 쉬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며칠 그냥 몸이 좀 안좋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며칠이 아니라 거의 몇 주를 쉬더라구요. 쉬는 동안 제 방에 자주 놀러와서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거나 게임을 했는데, 아파서 쉬는 중에 있는 사람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라 그냥 그 몇주 동안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근데 그런 시간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과제를 하고 있는 제 뒤에서 하루 종일 제 아이패드로 넷플릭스만 보고 있는 이 친구를 보니 뭔가가 이전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나한테 우리 관계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생각할거고, 자기가 해야할 것들에 대해서 (학위 문제, 이직 문제, 돈 문제 등등) 계속적으로 알아볼거라고 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이 친구를 보면서 저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혹시 그냥 나랑 사귀고 싶어서 초반에는 안심되는 말들을 많이 했던걸까... 이전 여자친구들은 왜 거의 다 아시안인걸까... 아시아인이면 영국 물정이나 사회적 분위기를 속속들이 잘 모를 것 같아서 그런걸까 등등의 생각까지 들면서 말이에요.
나중에 알고보니 이 친구가 2년 전에 시작됐다던 우울증이 재발한거였어요...
그랬으면 안되는데 저는 우울증이 재발했다는 걸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이 친구가 올 때 마다 의자 펴주고 저녁음식 만들고 설거지하고.. 정말 넷플릭스와 게임, 뉴스기사 읽기 빼고는 아무것도 안하는 이 친구를 보면서 저는 점점 스트레스를 받게되고...결국 이 친구에게 설거지라도 좀 해달라고 그냥 부탁하면 될 일을 기분 안 좋게 표정으로 티내게 되고...
우리 그림책 만들기로 했잖아, 너 너가 하고 싶다던 글쓰기는 언제부터 할거야?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너 왜 하루 종일 넷플릭스만 봐? 나 여기 얼마나 있게 될지 모르는데....나 지금 어느 정도 나이도 있고... 내가 너 5년 10년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라는 말까지 하게 되었네요. (저는 31세, 이 친구는 30세... 하지만 이 친구는 결혼은 마흔쯤에만 해도 되지 않냐고 해요)
이 친구가 그때 화가 엄청 많이 나서 너는 나를 못 믿는 것 같다, 너 그렇게 나를 판단하고 지적하는 표정과 말투로... 그래 내가 너한테 한참 부족한 사람이지 이러면서 방문 박차고 나갔어요.... 그때 저 때문에 한번 좀 크게 싸웠는데요 ㅠㅠ 정말 이건 제 잘못이 너무 크죠 ㅠㅠ 지금도 너무 미안해요 ㅠㅠㅠ
그 뒤로 서로 맞추면서 잘 지내자, 내가 너의 우울증 회복을 위해서 도울 수 있는게 있다면 돕겠다 라고 하면서 다시 화해하고 잘 지내고 있었어요. 물론 그 뒤에도 제 방에 놀러와서 또 하루종일 넷플릭스 보고 게임하긴 했지만요 ㅠㅠ 중간에 제가 뭐라 할까봐 그랬는지 안심시키려고 '나 좀전에 구직사이트 약간 뒤져봤어' 이런 말 하면서요....
하지만 정말 11월은 약 3주 이상 일을 안했고... 12월도 1주일? 정도 잠깐 일할 정도로... 우울증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고 했으니 우울증이 많이 심각한 것 같았어요. 우울증이라는게 그냥 사람을 끝없이 무기력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우울증이 해결되지 않으면 글쓰기고 뭐고 당장은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구요.....12월에 일주일 일해서 벌은 돈 얼마 안되는데 저한테 크리스마스 선물 사준다고 또 써버리고 이래서 정말.. 선물 받으면 기뻐야되는데 마음이 너무 안좋았어요 ㅠㅠ
사실 지난 10개월간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본인이 하고 싶은게 뭔지 잘 모르는데 막바로 뭔가 어떤거라도 (ex. 대학교 다시가기, 이직, 소규모 사업 등등) 시작해볼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상황이 되는 게 아니어서 더 우울해하는 것 같다고 느껴졌어요.. 지금 단계에서 제일 중요한건 이 친구의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또다른 문제가 터진게...
제가 다니는 학교의 학과 과정이 제가 생각했던거랑 너무 달라서... (학교가 학생들한테 거짓말을 했네요) 5년 간 벌은 돈을 다 털어서 유학을 간 저로서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거기에 남친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조금씩 더해져서.....하필 이 친구의 우울증이 재발했을 11월 무렵부터 제가 스트레스를 쏟아내기 시작했거든요. 영국은 왜 유학생들한테 이렇게나 많은 돈을 받고 왜 학교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것과 다르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거 다 그냥 장사하는거 아니냐, 내가 이것때문에 누구 찾아갈 때마다 다들 책임회피만 한다 - 등등의 얘기들을요.... 학교 얘기들은 아예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와서 너무 후회가 되네요 ㅠㅠㅠ
11월, 12월, 1월.... 그렇게 이 친구의 우울증과 제 불안 장애 및 스트레스가 겹쳐 이뤄내는 콤비네이션에 저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겠더라구요. 교회를 다닌다면서 이렇게 스스로의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는 저를 보면서 제 신앙상태의 점검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함께 가끔씩 불거지는 언어의 문제와 서로의 예민한 성격... 이 친구도 예민한 성격이긴하지만 제가 이 친구에게 했던 얘기들이나 쏟아냈던 스트레스들이 이 친구의 우울증을 더 악화시키는 것 같아서 ㅠㅠ 제가 옆에서 이 친구를 감싸주고 위로해줄만큼의 굳센 사람이 못되는 것 같아서... 시간을 갖자고 하고... 서로 케어해주는 친구로 지내면서 우리 각자 서로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자고 했어요.
나는 신앙상태도 감정상태도 엉망인거 같아서 너한테 안좋은 영향만 끼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너의 우울증에 어떤 방법으로도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다... 시간을 갖고 지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학교랑 관련된 문제들도 해결하고, 또 여기서 비자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적으니 취업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을 준비하겠다...
너는 제발 병원에 그렇게 안가지 말고 꼭 우울증 치료받고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가끔 운동이라도 같이 하자... 이런 식의 대화를 하면서 둘다 펑펑 울면서 헤어졌는데... 마음이 너무 안좋아요.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제가 제 자신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어쩌면 사랑하는데 왜 헤어졌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요 ㅠㅠ 지금 헤어진지 2주 됐는데 아직 연락은 계속 해오고 있었거든요... 근데 최근에는 이 친구가 제 연락을 피하는 느낌도 들고 해서 이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네요. 무엇이 최선일까요......
참고)) 영국에는 NHS라는 정부운영의료시스템이 있는데요, 무료인 반면 서비스가 너무 안좋아요. 의사랑 약속 한번 잡으려면 최소 3주가 걸려요. 그나마도 겨우 약속잡으면 의사들이 상담을 해주는게 아니라 약을 먹으라고 하고... 정신치료상담사들은 도움 안되는 얘기만 많이 한다네요. 경력있는 정신치료상담사들은 NHS 안에서 페이가 적다보니 다들 사설 상담센터를 운영한다고 나가버리는데, 그건 또 50분에 최소 40파운드(6만원)일 정도로 비싸다보니 현실적으로 우울증 상담치료를 받는게 쉬운게 아니라네요.
글이 길어져서 정말 죄송합니다.이 상황에 대한 코멘트든 이 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에 근거한 코멘트든....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