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신발, 조오오오온나 엿같네. 가드하라고! 강아지가."
더운 여름 날, 덕재의 동생 한재가 이열치열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한재는 고등학생도 되었으니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여름방학 보충을 신청하지 않고서 알바를 다니겠다고 해도 동생을 믿어야지 하며 굳이 말리지 않던 형 덕재는 요즘 많이 불안했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직장으로 바빠 별 관심이 없어보이셨다. 그런 한재를 걱정하는 것은 덕재밖에 없어보였다. 동생의 성적은 시간이 흘러도 오를 생각은 안하지 오히려 욕과 게임 실력만 느는 동생이 왜이리 철없이 느껴지는지. 솔직히 이해가 가긴 했다. 학기 중에 학교에서는 진로를 정하라고 독촉을 해대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는 아무 것도 모르겠지, 또 함부로 정했다가 3년 공부하는 게 헛질이 될까 두려울테고 이제 책임이라는 단어에 진지해져야 한다는 게 싫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팔은 안으로 굽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듯이 한재가 어렸을 땐 참 착한 동생이었는데 하며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씁쓸해하기만 했다.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조언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게 너무 적었다. 그러면 부모님이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 그렇듯이 덕재와 한재네 부모님도 맞벌이를 하시느라 항상 바쁘시고 고1, 고3인 이 두 형제가 있는 집은 여느 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와... 에바데스. 넌 그냥 게임 접어라. 뷰웅신아ㅋㅋ"
저렇게 말 해도 길드가 같으니 끝까지 같이 게임할 거면서 왜 말은 저렇게 쓰레기처럼 하는지. 덕재는 이럴 때마다 외우는 주문 비슷한 것이 있다. - 하나님... - 그리고 크게 한숨. 일부러 크게 말해도 동생은 면역이 되었는지 헤드폰으로 들리는 게임소리가 큰지 반응도 없다.
이 집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덕재 혼자다. 초등학생 때 친구따라 교회갔다가 유일하게 자신의 꿈을 진지하게 들어주던 교회 누나에게 반해 성실하게 나오는 성도가 되어 버렸다. 제작년, 첫사랑을 다른 지방 대학에 떠나보내고 나서 억지로 나갔던 수련회에서 성경책의 내용이 진심으로 와닿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살짝 창피하지만 덕재는 그때 수련회에서 성경책을 읽다가 울기도 했다. 꿈꾸는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울었었다. 꿈 얘기를 했다가 형제들에게 버려진 요셉, 그런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 종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자신을 가지려던 여 집주인에게 모함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이제 자신의 꿈을 이해해줄 사람도 뭣도 없다는 상실감에 요셉 이야기를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되어 울컥했었다. 그런데 요셉의 이야기의 끝은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보살피심과 이끄는 것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뭄으로 죽을 위기에 있는 가족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요셉이 평화롭게 잠드는 것으로 끝이 난다. 꿈을 포기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그 시절, 결국 부모님을 설득해 예고에 들어갈 수 있던 이유는 꿈을 꾸는 요셉처럼 자신도 어쩌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고 성경책을 매일 읽기 시작하면서 얻게 된 알 수 없는 용기와 부지런함 때문이었다.
지금도 덕재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예고에 와보니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꿈과 미래를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면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보디가드가 있는 든든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교회에 관심을 하나도 주지 않는 집안에서 홀로 꿋꿋하게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동생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어쩌면 한재는 자신보다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는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아니, 크고 작음을 떠나 자신처럼 꿈을 갖는다는 것에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병신새낔ㅋㅋㅋㅋ 뭐하냐ㅋㅋㅋㅋ"
상대편의 어이없는 실수로 게임 오버되면서 잠시 말을 붙일 수 있는 타이밍. 덕재는 한재가 앉아있는 의자를 발로 툭툭 치면서 시선을 끌었다.
"알바 갈 시간 다 와가는데?"
"예, 형님. 한 판 더 하고 충분히 챙길 수 있습니다요ㅋㅋ"
한재는 이겨서 마냥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단순한 놈.
"너 알바비로 뭐 할 생각이냐?"
"엣?! 뺏을 생각 마라. 내가 번 돈인데 뭘 하든!! 현질 조카게 할 거임."
"미친놈."
"예, 미친놈 여기 있습니다~ 꼰대질 할 거면 닥치셈."
"싫은데. 너 뭘하고 싶다고 했었지?"
한재는 심기가 불편한지 헤드폰을 벗고 눈을 부라리면서 형을 노려봤다.
"그걸 찾아보겠다고. 뭔데, 신발."
말 끝마다 욕이 붙는 동생의 언행이 덕재도 많이 짜증났다. 하지만 한 번 피식 웃으면서 같잖음을 표시했다.
"그래서 들어간 알바가 패밀리 레스토랑 웨이터?"
"뭔데 갑자기 지랄이세요~? 짜증나게."
덕재는 한재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하면 꿈이 찾아지는 거냐'라는 의아함을 온 몸으로 뿜어대고 있었다. 한재는 스스로 찔렸는지 몇 마디 덧붙여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럼, 뭐,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뭔데?! 공부하라고? 지랄ㅋ 형도 안하고 예고갔잖아. 나도 그 꿈 좀 찾자고 공부보다 경험을 하겠다는데 뭐가 아니꼬운 건데-"
"네 자세가 아니꼽다. 그게 꿈을 찾는 태도냐..."
"뉘예 뉘예. 난 이렇게밖에 할 줄 모르는데 어쩌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잖아. 나름 도시에서 살고 있고, 조금만 더 찾아보면 의지만 가지면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겁나서 안하는 것들이 많은 거지."
"겁이 아니라ㅋ 현실을 보세요~ 헬조선 클라스가 이런 건데?"
한재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불현듯 표정이 굳어지면서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자세를 덕재쪽으로 고쳐 앉아 제대로 따질 준비를 갖췄다.
"그래, 내가 호텔 조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형... 우리 엄마, 아빠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나? 지랄하지 말랬어. 지랄은 무슨, 지랄..."
"겨우 그런 말 들었다고ㅋㅋ 반항이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 안 해?"
"신발, 그럼 응원해주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음 나도 좀 할 만 하겠다!! 형은 뭔 생각으로 우리 가족이 다 반대하는 그 미술을 꿋꿋하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난 그럴만한 뭣도 없는 놈이니까-"
"꼭 널 응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냐."
"아, 예, 결국 나를 병신새끼 취급이지?"
"그게 아니라 나는 날 응원해주는 하나님이 있으니까 그런 거다, 병신아. 머저리야, 답답아."
"뭔 개소..."
"닥치고 들어봐, 한재야. 넌 내가 교회 다니는 게 우습냐? 근데 난 안 다니는 네가 더 불쌍해. 난 교회 다니면서 하나님이 있다고 신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언제든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믿어지니까 우리 가족이 비웃는 미술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거란 말이다. 넌 뭐냐? 나보다 더 좋은 생각을 품고 살아가고 있기는 하냐?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나를 무시하면서 더 밝게 하다못해 꿈이라도 있냐고."
"형을 응원해주는 게 있다고?"
"처음엔 교회 누나가 응원해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누나가 대학에 가면서 알았지. 그 응원을 해주는 건 누나를 통해 말하던 하나님이었다고. 난 그렇게 믿으니까 더 미술을 포기할 수 없더라."
"참, 그래, 하나님인지 뭔 신이 있다고 쳐. 그럼 매일 형하고 같은 편이라는 거야? 내 꿈에도 그렇게 해준대?"
"그건 나도 모르지. 내가 신이 아니잖아. 항상 내 편이라고 무조건 부자가 되게 해준다는지 꿈을 이루게 해준다는지 그런 건 아니지."
한재는 다시 답답해졌다. 아니, 그럼 이건 또 무슨 논리인가? 자기를 응원해주는 신이 있다고 자랑하다가 부자나 꿈을 이루게 해주는 건 또 아닐 수 있다니? 앞뒤가 안 맞잖아?! 한재는 자신의 형이 뭔 이런 논리를 가지고 있는 신을 믿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모두가 부자가 되면 이 세상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이 어디있겠어? 다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계획이 있으실테고 그 알지 못하는 그 분의 뜻까지 받아들이는 게 믿음인 거야."
"그렇게 믿으니까 마음이 편해?"
"편해."
"지랄한다?"
"형한테 자꾸 말버릇이 그게 뭐냐. 나도 답답해서 같이 욕 좀 써주니까 계속 해도 되는 줄 아네?"
"그.. 그건 미안하고..."
어느새 시계가 오후 5시 40분을 향하고 있었다. 6시 30분까지 출근을 해야하는 한재와 7시부터 대학 실기 과외 수업이 있는 덕재는 동시에 마루에 티비 위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나오는 한숨.
이정도가 덕재가 동생한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인생 조언이었다. 서로 꿈을 응원한답시고 오글거리는 말을 하는 것보다 이런 식의 대화에 더 진심이 느껴졌다. 이제 받아들이는 건 오롯이 동생의 몫. 더 관심을 가질테면 가지고 말 것이면 먼지를 훌훌 털어 미련없이 그만 두려고 하는 덕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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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글쓰는 걸 좋아하는 A입니다.
이 외에도 교회 관련된 소설 몇 개가 더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 안에서의 사역(봉사)라든지 성가대라든지... 목회자와 성도간의 이야기라든지...
시간날 때마다 끄적거린 몇 개들을 올려볼까 하는데 우선 이 글에 대한 반응을 보고서 결정하고 싶네요~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