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판에 글 처음 써보는 스물 중반의 남자입니다. 먼저10대판에 글 올린거 죄송해요. 그치만 그래도 저와 비슷했던 10대분들이 계실까봐 용기내고 힘내라고 이렇게 글 올립니다. 이과라서 글재주도 없고 또 공감을 못얻을 순 있겠지만...ㅠㅠ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겠습니다. 글이 진짜 길고 띄어쓰기도 많이 틀리고 난잡하지만 읽어주실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댓글 달아드린다면 꼭 답글역시 달아드리겠습니다. 취업이나 장래, 이런거에 대해 궁금하시면 그 역시 답글로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고 싶네요.
올해 공채로 국내 굴지에 들어가는 대기업에 합격했어요. 근무조건 연봉 복지 모두가 바라는 그런 회사였기에 어머니도 정말 우시면서 좋아하셨어요. 저와 사이가 어색해 말도 잘 안하는 남동생도 절 자랑스럽게 보는게 정말 뿌듯하고 힘들게 살아온 가족을 위해 이젠 장남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것 같은 희망들에 부풀어 살고있습니다. 이런 성공이라면 성공이 있기전엔 제 삶을 돌아보면 정말 힘들고 끔찍했어요.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것 같네요
부모님이 일찍이 이혼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있는 모습은 제 기억엔 없어요. 아버지께서 바람을 피셨고 이혼 후 어머니와 살게되었죠. 어머니는 저희 두 형제를 벌어먹여 살리시려고 안해본 일이 없을거에요.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열심히 모으신 돈으로 작은 호프집을 차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동업자분의 자금과 함께요) 근데 호프집 이름이 000소주방 이었어요. 친구들에게 이런점들이 알려지게 되고 너네어머니 술집하신다며? 이런 안좋은 이야기도 들어서 어머니께 버럭버럭 화내고 울었던 적도 있네요... 하여튼 진짜 못 많이 박았습니다 어머니 가슴에.
그 뒤로 어머니는 저의 그런 말들 때문인지 일을 바꾸셔서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셨어요. 단언컨데 공사현장은 여자가 감당할 수 있는곳이 아닙니다. 억세고 막말하는 남자들과 일을 하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가끔은 앞에서 뒤에서 성적인 희롱들이 오가고... 이런일도 있었네요. 어머니께서 일하시는 공사현장에서 제가 잠시 같이 일을 했던적이 있었어요. 어머니께선 그 현장에서 공구나 자재를 관리하시는 일을 하셨는데 일을 정말 잘하시고 꼼꼼하셔서 그 현장 관리자 분들껜 인정받았지만 깐깐하고 가끔 융퉁성 없는 모습때문에 일부 노동자 분들껜 원성을 타기 마련이었나봐요. 하루는 여느때처럼 점심시간에 쉬고있는데 한 아저씨가 어머니 욕을 하는데 제가 어머니 아들인줄 몰랐나봐요 근데 제앞에서 공구장..그니깐 어머니죠? 어머니욕을 막 하는겁니다...입에 담기도 힘든... 그x년 자기 돈도아닌데 자재 아끼고 뭐다뭐다 하는데 아...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무튼 전 그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서서 욕하고 소리지르며 그아저씨 멱살을 잡았습니다. 우리엄마고 왜 당신이 그렇게 말하냐고... 그 아저씨도 당황하셨고 나중엔 저에게 따로 와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참 겪기 드문 일이죠..
중 고등학교땐 사춘기라 반항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잘한건 사고안치고 안좋은 친구들과 안놀고 담배안피고...이건 진짜 잘한거같아요. 공부는 아주 잘하진 못했지만..ㅎㅎ 저는 그래도 이러한 것들은 부모님의 환경과는 별개로 본인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 집이 힘들어 안좋은 친구들과 놀게 되었고 담배도 피고 사고치게 되었다 ' 라는 말들...이건 본인문제가 크다고 봐요) 남들은 용돈도 받고 피시방도 가고 사고싶은 신발도 사고 학원도 다니고 그러는데 전 맨날 똑같은 옷에 버스비도 아까워서 걸어다니고 남들 군것질하고 그럴때 못가고 못먹고.. 거짓말 하나 안보태서 치킨이나 피자 이런거 친구 생일파티때나 먹어봤습니다. 집에선 못시켜 먹었죠. 그런 습관들 때문에 돈을 지금 아무리 잘벌어도 배달음식 하나 못시켜 먹는답니다..치킨한번 제가 직접 시켜먹어본적 없어요 누가 먹고싶다거나 먹자고 할때나 먹었죠.
고등학교는 인문계를 갔어요. 마이스터고나 공고를 가서 취업을 해서 돈을 벌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 반대를 하셨죠... 그 계기로 어머니와 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느정도 였냐면....고등학교 3년 내내 어머니와 말한마디 안했어요. 그냥 밥줘, 나왔어 이런말조차 안하고 살았어요. 믿으시겠어요...?
제 고교시절때는 O스페이스 패딩이랑 바막이 유행이었어요...(아 이렇게 말하니 진짜 아재같네요ㅋㅋㅋ;;) 전교생이 거의다 입었는데 전 못입었죠. 친구들한텐 난 O스페이스 싫어해서 안입는다 교복이 이쁘다. 라고 말했지만 저라고 왜 안입고 싶었겠습니까...입어보니 따뜻하고 벗기 싫어지는 녀석 이었거든요. 근데 집안 가정형편을 잘 아니깐 말도 못꺼냈고 어머니 조차도 옷한벌 없으시고 그렇게 사셨으니깐요.
입고싶은 옷한벌 못해줬던 어머니를 저는 싫어했고...증오했고 지금 저의 이러한 환경들이 어머니탓만 같았고 모든 책임은 엄마 책임이고 주위에 금수저 친구들이 미치도록 부럽고...중고등학교 내내 돈한푼 쥐어본적 없었어요. 수학여행 때도 역시 마찬가지 였구요.
왜 난 그런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왜 하필 가난하고 웃을 수 없는 이런 집에서 태어났을까 금수저인 친구들의 인생과,
아니면 부모님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더 고백하자면 진짜 어머니가 죽었으면 좋겠다. 보험금만 주고 사라졌으면 좋겠단 생각도 해봤어요. 진짜...여기서만 솔직하게 고하네요... 아무리 지금도 눈물을 흘려도 앞으로도 어머니께 잘해드려도 이런 생각들은 용서받을 수 없을거같아요.
그래도 한켠으론 꼭 잘살아 보겠다, 가난을 되물림하지 않겠다, 내 자식만큼은 나처럼 살지않게 해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학교 내에선 성실하게 살았어요.( 역시 공부는 아주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교생 통틀어 유일하게 야자나 보충학습 째기, 지각은 한번도 하지않았습니다. 성적과 성실은 항상 비례는 아니지만 진짜 성실하겐 학교생활 했어요 ) 그렇게 해서 인서울 4년제를 진짜 운좋게 합격했지만...어머니는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돈을 낼 형편이 안된다. 미안하다 라고 하셨습니다. 전 그때 어머니께 심한말을 했어요. 좀 많이 심했지만 글로 쓸 수 있는 정도만 말하자면 내가 열심히 그래도 달려온 지난날들이 엄마때문에 무너졌다 당신이 너무싫다....라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나머지는 너무 심해서... 어머니 전화기 너머로 우셨습니다. 미안하다고 흐느끼셨어요. 전 그거 외면한채 전화 끊어버리고 핸드폰을 던져버렸죠. 이때도 정말 다시는 뺄 수 없는 대못을 어머니 가슴에 박았어요...
저는 제 힘으로 학비를 감당해야 했어요. 학자금 대출, 장학금 이런거 있었겠죠...근데 그당시엔 그런걸 잘 알지도 못했고 우울하기도 하고 그냥 내 힘으로 해야하는구나 싶어서 빚안내고 제가 겨울방학동안 돈 벌어서 학비를 댈 수 있을 전문대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전문대 입학 전까지 추운 공사판에서 악착같이 돈벌면서 학비를 벌었어요( 사실 이때의 경험이 저에겐 가장 큰 양식이 되었습니다. 돈을 번다는게 이렇게 힘들고, 꼭 성공해야 겠다는 생각과 그리고 어머니께 죄송해지고 조금이나마 성숙하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350만원 남짓한 돈을 한달 반 동안 벌었어요. 저에겐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돈이네요.
그 돈을 가지고 상경을 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전문대 였거든요. 기숙사를 신청해야 하는데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신청하지 못해 고시원에서 살았던 기억이 나네요. 18만원의 제일 저렴한 방이었지만 거미가 자고있는 제 몸을 기어다니고 쥐가 보이고 영양제 병을 손에 털었는데 바퀴벌레가 나오고... 그런 열악한 곳이었어요 그치만 한푼이 아쉬워서 그 곳에서 살았죠.
역시 남들 스무살에 놀러가는거 클럽가고 술마시는 유흥경험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학교 도서관 고시원 이렇게 살았어요. 학교 동기들이 비아냥대고 "그렇게 돈이없냐? 엄살좀 부리지 마라" 그랬지만 전 정말 절박하고 열악했으니 무시하고 제가 할거하고 공부하고 학점 따고 자격증 취득하고 그랬습니다. ( 지금 그사람들 저에게 연락와요. 취업 어떻게 했냐고 그 때 미안했다고. 좀 정보좀 달라고. )
그 뒤로도 군대, 취업준비 이런 내용들도 있지만 십대분들과는 조금 먼 이야기에 적진 않을게요. 저의 과거를 다 표현할 순 없지만 ( 대충 일부분 정도만 말한 것 같아요. 자살시도하고 아버지에게 죽을 뻔 하고, 새엄마의 학대, 동생의 고등학교 일탈로 인한 가정의 불화 등등 여러 일들이 많았지만 이것또한 다 적진 않겠습니다. ) 그래도 참 남들이 들으면 어떻게 지금 살아왔냐 기특하다 장하다 라는 말이 오갑니다.
절대로 윤택하고 평범한 삶이 아니었죠. 그치만 이런 저 조차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 하는, 모두가 동경하는 회사에 들어왔어요. 앞으로 돈 벌어서 어머니 눈도 고쳐드리고 치과도 보내드리고 허리도 고쳐드리려구요. 앞으로의 일들이 기대되고 행복하지만 이런 제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형제 기르시려고 피눈물 흘리시면서 노력하신 어머니가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덪붙여 그 당시의 삶을 살면서 안좋은 생각들은 했지만 일탈하지않고 나쁜길 빠지지 않은 제가 있었던 것도요.
그러니 여러분. 특히 저와 같거나 혹은 더 안좋은 가정환경의 분들도 꼭 희망 잃지마요. ( 이거 되게 뻔하고 흔한 말이어서 쓰는 순간에도 조심스러웠네요 )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잠시 쓰러질 순 있지만 그래도 이악물고 달려요.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가 힘들게 태어났고 금수저 애들은 편하게 유복하게 사는거 저희가 어쩔 수가 없잖아요. 못이길 수도 있어요. 그치만 한번쯤은 피터지도록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질러봐요. 몸이 지칠때 운동선수가 더 달리면 죽을 수도 있지만 공부는 죽지않아요. 더 참고 해봐요. 기회는 꼭 옵니다. 비트코인 이런게 기회가 아니에요.(특히 남학생들...게임 비트코인 도박 이런거 손도 대지마요)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는 순간 끝나요. 그리고 성인인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진짜...명심하세요 시간은 돌이킬 수 없어요. 지금 말고 나중에 하면된다? 나중엔 기회가 있다는 보장 없구요 그리고 경쟁자들은 나중까지 기다려주지 않아요...지금의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하니까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정신줄 딱 잡으세요. 명심하세요 부탁이에요. 날씨 추운데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나날들이 꼭 있을거니깐 빛은 여러번은 아니어도 한번정돈 비추니깐 버텨봅시다. 그럼 안녕.
아 그리고...
정말로 지금은 학생때가 제일 힘들고 피곤할거에요. 근데 꼰대같이 들릴진 모르겠지만 사회는 여러분이 상상하는것 이상으로 너무 잔혹하고 각박하고 무서워요. 괜히 20대 30대 대다수가 학생때로 돌아가서 다시 공부하고싶다고 하는게 아닙니다. 그러니 기왕 참는거 더참아요. 지독하게 살아남으세요. 기회는 지금 한순간 뿐이라는 마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