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글)
우선 시간들여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제가 베스트 글이 됐다는 사실 보다 더 놀란 건
대부분의 댓글들이 장문의 댓글이라는 점이었어요.
그만큼 중요하고 의견이 분분한 일이라는 뜻 같습니다
댓글 하나하나 보다가 저도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추가글 씁니다.
원글 보다 추가글이 더 길 것 같아요.
"왜 결혼전에 2세에 대해 합의하지 않았나"
원글에서 말씀드렸듯 둘 다 막연하게
나중에 우리도 아이가 생기겠지? 라고 생각한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상상만 했지
그 과정에서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했습니다.
저는 하루종일 맞벌이 하고 살림은 어머니가 다 하시는
보통의 가정에서 자랐어요.
아버지가 요리하신다는 친구는 몇 안되었고
그런 아버지를 애처가시다 ㅎㅎ 라고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말입니다.
요리하는 어머니보고 애부가라고 하진 않으니까요)
결혼 전 아버지가 제게 미리 요리학원이라도
다녀야하는 것 아니냐고 하셨는데
맞벌이인데 왜 내가 요리를 배우냐고 반박 하면서도
결혼 후 당연하게 네이버로 레시피 찾아 요리하는.
전 그런 사람이었어요.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아내는 이래야한다'는 역할 규정을
왜? 라는 물음 없이 받아들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무지하게 꿈만 꾸며 결혼했는데
실제 결혼 생활을 시작하니 자꾸만 화가 났습니다.
신혼 초 집들이 때
내가 요리하는 걸 왜 스스로 당연하게 여겼는지,
왜 내가 집안일 분담표를 만들어 남편에게 주고
이렇게 하자고 합의를 주도해야하는지,
흔히 말하는 시월드도 없고 제사도 없지만
내가 왜 여기에 감사하고 설날 아침엔
제일 먼저 일어나 떡국을 끓여야하는 지,
나도 남편도 경제활동을 하는데
어째서 남편에게만 다들 '가장'이라고 하는지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일들에 민감해지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아마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처음부터 제가 이렇진 않았으니까요
사사건건 어째서 이건 내가 해야하는거야? 당신은?
하고 물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겠죠
남편이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도 보고 자라온게 있으니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걸 제가 먼저 깨우치고
남편에게 알려주려니 많이 피로하다고 느낍니다
회사에는
일이 있어 일찍 출근하면 '남편 아침은?'
출장이라도 길게 가면 '어휴 남편이 보살이네' 라고 하는
꼰대님이 계시고요.
이런 사람을 같이 욕하면서도
그래도 아이는 있어야지,
내 와이프가 너같이 피곤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고 하는 남직원들과
아이는 부부가 동등하게 키워야 해
그치만 아직 남직원의 육아휴직은 좀 그렇지.
라고 하는 여직원들이 있습니다.
과연 남편도 사회 생활하며 이런 고충이 있을까요?
정말 피로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하신 부모님 덕분에
저는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고 현재 너무 감사하지만
어렸을 때는 바쁜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나는 나중에 꼭!
내 아이가 이런 결핍을 느끼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죠
아이가 태어나서 최소 2~3년은 주 양육자가
고정되어야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나? 내 일은...?
일과 육아의 양립에 대해 혼자 많이 고민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하는 게 아닙니다.
남편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벌게 되더라도
저는 제 일을 하고싶어요.
그러다 보니 더 많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저와 남편의 고민은 방향이 달랐어요.
남편은 어떻게 더 연봉을 올리고 저축을 하고
더 큰 집을 구해 아이를 키울 것 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더라고요.
그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는 당장 아이를 낳으면 일은 어떻게 할 것이며
아이가 정서적으로 행복하게 자라려면
우리가 무엇을 계획하고 준비해야하는지가 더 중요해요.
그래서 제 생각들을 많이 알려주고
육아에 대한 현실도 찾아 보여주고 하지만
남편은 아직 수동적이에요.
그 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해요.
지금도 정리가 안되는 게
때가 되면 알아서 되는게 아닐텐데
저는 많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아이 안낳겠다고 계속 남편에게 말하다가
해결이 되지 않아 글도 쓰게 되었네요.
이렇게 시간이 지나도
저는 불안한 현실에 아이가 낳기 싫고
남편은 계속 아이를 낳고 싶다면
그 땐 너무 늦는 게 아닌가,
지금이라도 서로 조율이 안된다면
댓글들 말씀대로 저 또한
남편을 놓아줘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우릴 닮은 아이를 만나는 것,
그 자체는 아름다운 일이겠지만 현실은 많이 어렵네요.
이 글은 남편에게도 조만간 보여주려 합니다.
몇 번이나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로도 정리해서 보여주고 불안감에 울고 했지만
남편은 제가 얼마나 무서운지
100% 실감하지는 못하는 것 같거든요.
언젠가 후기로 알려드릴 일이 있다면 다시 글 쓸게요
기나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댓글들 보며 많이 울컥했어요.
두고두고 곱씹어 보며 더 많이 고민하겠습니다.
모두 평안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원글)—————————————————-
안녕하세요
저는 결혼한지 만 4년정도 된
아이 없는 맞벌이 아내입니다.
남편과 저는 둘다 야근이 잦은 직종이며
저는 주말 출근과 출장이 간헐적으로 있고
남편은 출장이 없는 대신 저보다
더 늦게 퇴근하고 주말 출근이 잦습니다.
서로 원하는 일을 충실히 하며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결혼할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나중에 아이를 가지게 되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고등학교 때 가치관이 대학가서 달라지고
또 사회생활 하며 달라지듯
저도 결혼하고 나서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져
아이를 전혀 가지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결혼 전에 나는 딩크를 지향한다고
미리 남편과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결혼 한 뒤에 생각이 바뀐 부분이라 더 어렵네요.
제 생각과 그에 대한 남편의 생각을
몇가지 정리해 볼게요.
1. 임신,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
@아내 입장
임신하고 나면 내가 막달까지 일하고
출산하려고 마음먹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ex. 유산 위험 등)으로
일찌감치 퇴사 해야할 수 있다.
이 경우 경력단절은 불가피하고
출산 후 재취업이 어려울 수 있으며
재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지금보다 못한
처우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현재 다니는 직장은
육아휴직을 보장하지 않으니 미리 이직을 해야하는데
나는 결혼한지 4년 된 아이가 없는 기혼 여성이기 때문에
채용담당자들 눈에는
'조만간 임신,출산 가능성있는 여성'으로 보여
이직이 쉽지 않다.
@남편 입장
너무 최악의 상황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현재 직장이 여성복지에 취약하니
더 복지가 좋은 곳으로 빨리 이직을 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2. 육아와 일의 병행
@아내 입장
나는 내 일을 하기위해서
아이 낳기 전과 마찬가지로 야근을 할 수도 있고
출장을 다닐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퇴근 시간이 빠르고
퇴근에 대한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 먹이고 씻기고 케어하는
모든 일이 자연스레 나에게 집중될 것이다.
아이 때문에 칼퇴 하고, 가야할 출장을 못가다보면
(출장을 다른사람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엔 내 인사고과에 영향을 줄 것이고
진급이 밀릴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아이가 원망스러울 것 같다.
나는 일을 놓을 수 없고 그래서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다.
@남편 입장
요즘엔 아이 낳고 일하는 여자들이 많고
상당수가 맞벌이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부분도 있을 테고
당신 뿐만 아니라 나도
빨리 퇴근하고 아이를 보도록 노력할거다.
그리고 당신이 출장 가야하는데
나도 야근해야하는 상황이면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시터를 고용해서 해결할 수 있다.
3. 라이프 스타일
@아내 입장
나는 당신과 둘이 적당히
취미생활을 즐기며 사는 지금이 좋다.
아이가 생기면 우리 생활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지금 같은 여유는 없을 거다.
현재 우리 둘의 수입도 우리끼리 먹고 쓰는데
부족함이 없고 저축도 쉽지만
과연 한 명 이상의 아이를
부족함 없이 성인될 때까지 키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이가 있으면 더더욱 열심히 또 많이 벌어야 할테고
현실에 너무 치여서 살 것 같다.
부부 사이에 아이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당신도 2세를 낳겠다는 일념하에
결혼한 것은 아니지 않냐.
@남편 입장
물론 당신과 내가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이를 가진다면 그건 우릴 위해서 일 거다.
나는 당신과 결혼해서 당연히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릴 것으로 생각했지
한 번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아이가 있는 것이 우리 둘만 살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일찌감치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결론은,
남편은 그래도 아이는 있어야 한다.
저는 그래도 나는 싫다 입니다.
너무나 흑과 백으로 분명히 나뉘는 문제라
어느 쪽을 선택 하여도 한 명은 희생하게 되겠죠.
대부분이 그렇듯 저도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커리어고 내 라이프 스타일이고 뭐고 다 차치하고
희생을 감수하며 잘 살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임신이든 출산이든 수유든
모두 제 몸으로 겪어야 할 일이고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습니다
내가 공부하고 취업하고 열심히 일해온 것이
아이 키우려고 그런건 아닌데
하는 자괴감도 들고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지
매일 자문하게 되네요.
아마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 분들이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어요.
저도 난 어쩌지..ㅠㅠ
라는 생각만 드는 요즘입니다
답답한 속을 이렇게라도 푸는 거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혹시 저와 같은 상황에서
아이를 안 낳기로 합의하셨거나
결국은 아이를 낳고 잘 사시는 분들 등
다양한 분들의 말씀 들어보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