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우리 엄마가 가장이고 우리 집의 기둥이다.
내가 태어난 후 몇 년간은 반 지하 셋방살이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부모님이 항상 다투는 것을 봐야만 했다. 그것을 보고 듣는 어린 나와 동생도 스트레스였다. 어릴 때 그런 이유로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또 하나, 돈이 없으면 마음이라도 편히 살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 뒀어야했는데 엄마의 시댁식구들은 하나같이 못 괴롭혀서 안달이다. 이건 ‘사랑과 전쟁’이나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나 다름없다.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인생을 책으로 한 번 내고 싶다. 글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항상 막무가내 할머니 포함해서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 소통불가인 4명의 동생들에게 굉장히 시달리며 스트레스 받아하시며 살아왔다.
나와 내 동생도 지금까지 그런 것들로 인해 치가 떨리며 살아왔다.
아빠는 거의 40년 세월 간질을 앓아온 환자로서 간질 약을 지금까지도, 아니 평생을 복용해야 한다.
엄마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이유 없이 발작을 보이며 쓰러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병원에서 간질이라는 병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남들은 신혼을 즐기며 깨가 쏟아지고 행복만 해야 되는 시기에 말이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단지 돈이 없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우리 네 식구는 그럭저럭 살아왔다.
그렇게 평온하게 살다가도 할머니와 아빠의 동생들이 괴롭힐 때마다 항상 큰 소리가 났었다.
그런 것들로 인해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봐야만했다.
그 동생들은 항상 집안의 분란을 일으키는 존재들이었다.
아직도 나는 기억이 생생하다.
할머니는 우리 엄마한테 시골 땡볕에서 논, 밭일 시켜놓고 본인 딸들 오면 밥 하라고 밥 차리라고 소리 지르며 달려오는 모습이 생생하다.
왜 굳이 본인이 시켜서 밭일 하고 있는 우리 엄마한테 밥 차리라고 시켰을까
어린 나는 항상 궁금했다. 본인 딸들은 손이 없나?
할머니는 무직에 돈 없고 건강하지도 않고 틈만 나면 아프기만 하는 아들과 이혼하지 않고 지금껏 살고 있는 우리 엄마께 감사히 생각해야 되는 것 아니었나?
뭐가 그렇게 당당할까?
어렸을 때부터 본인 외 손주들과 비교하며 추접스럽게 먹는 거 가지고도 차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화를 하라고 강요를 하고 왜 시골을 찾아오라고 강요를 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고 납득이 가지를 않는다.
또 몇 번 본인 딸과 외 손주 엿을 만들어 준다며 우리 집에 와서 엿을 만들어 집에 습기가 가득 차서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컴퓨터가 고장이 난 적이 있었다.
할머니의 딸들은 하나같이 돈 있는 집에 시집가서 본인들 친정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채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엄마는 그런 거 바라지도 않았지만 받기는커녕 도둑으로 누명을 쓴 적이 있었다.
사건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장할 때였다.
아빠가 무직인데도 불구하고 어렵게 이장비를 마련해서 보탰는데 돈을 전혀 내지 않은 것처럼 말하지를 않나 할머니는 본인이 이장비를 옷장에다 숨겨놓은 후 기억도 하지 못하고 그 날 우리 엄마를 동생 4명이서 도둑으로 몰고 갔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우리 엄마가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울기만 했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한이 맺혀 날 괴롭게 한다.
동생4명은 하나밖에 없는 당신들 오빠에게 밥 얻어먹으려고 농사지으러 다닌다고 하지를 않나, 입이 열 개, 천개라도 말 할 자격 없으니 입 닫고 가만히 있어라 하지를 않나, 얼마나 무시를 하고 업신여기면 그런 무식한 말을 할 수가 있나, 사람이라면 이렇게 천박할 수 가 있나싶다.
앞서 말한 것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이 사건은 내가 고등학생 시절 때의 일이다. 기억하는 자체가 싫지만 우리 네 식구가 직접 겼었던 피해자라서 말하고 싶다.
아빠의 둘째 동생이라는 사람의 남편이 바람을 폈었다. 그것으로 인해 아빠에게 밤낮없이 새벽까지 울고 불며 전화를 하며 아빠를 여기 저기 끌고 다니면서 미행까지 하게했다.
그리고 그 둘째 동생 남편은 다음날 등교해야 되는, 우리가 자고 있는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현관문을 발로 차며 술주정을 부리고 방바닥에 가래침을 뱉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아빠한테 욕을 하면서 말이다.
나와 동생은 새벽까지 잠 한 숨 못자고 등교를 했어야했고 엄마는 그렇게 출근을, 아빠는 새벽 5시에 그 길로 막노동을 하러다녔었다.
그 난리를 겪고 아빠가 일하던 와중에 갑자기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을 가보니 머리와 이마를 수십 바늘 꿰맨 것이 눈에 보였다.
결국 그 시기에 메니에르 질환이 발병이 되고 더 악화가 되었다.
그 집안일로 왜 우리가 잠 못 자고 왜 우리가 피해를 봤어야 했나.
또 둘째 동생 미장원 개업홍보를 하는데도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전단지를 아빠에게 돌리라고 시킨 적이 있다. 아빠가 본인 하인인지, 종인지, 이것은 현대판 노예 아닌가? 거절 못하는 아빠도, 동생들에 한없이 휘둘리며 사는 아빠도 싫을 뿐이었다.
혹시나 동생들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일부러 머리도 잘 못 자르고 실력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미용실을 다녔던 아빠에게 그 둘째는 싫은 내색을 했던 모양이다.
누가 보면 공짜로 이용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아니다.
갈 때 마다 아빠는 돈을 지불하고 이용했었다.
그런 둘째 동생은 또 아빠를 꼬득여서 우리 엄마와 상의 없이 좋지도 않은 집을 덜컥 계약하게 해놓고 우리 엄마를 뼈 빠지게 공장에서 밤낮없이 야근하며 대출 빚을 갚게 했다.
아빠가 결혼한 사람은 우리 엄마가 아닌가, 아빠의 아내는 우리 엄마가 아닌가, 어쩌면 그렇게 너무 바보 같게도 동생이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하는 건가, 그럴거면 결혼을 왜 우리 엄마랑 했을까 싶었다.
그게 무슨 경우인가. 뒷목 잡고 쓰러질 일이다.
도무지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안 가지 않는가.
그 당시에 우리 네 가족은 외가댁에 얹혀살고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고생하며 한 푼 두 푼 모아 적금 들어 놨었던 주택청약을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 빚 갚느라 엄마는 더 고생하며 살아왔었고
그 흔한 외식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었고 여행 한 번 가 본 적이 없었다.
외식을 하기 시작한 것도 불과 5-6년 전 일이다.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어도 할머니가 아프다고 하기만 하면 항상 부모님께서 그 시골 꼴짜기에서 도시로 데리고 나와 병원 데리고 다니며 비용 부담을 다했었다.
아들만 자식인가? 딸들은 자식이 아닌가?
딸들이란 사람들은 병원을 데리고 다닌 적이 단 한 번 도 없으면서 본인들은 할 일 다 했다는 말을 하며 할머니를 떠넘겼었다.
또 돌아가신 할아버지 명의로 된 산꼴짜기에 자그마한 땅이 하나 있었다.
땅이라고 생각하면 보통 수 천, 수 억, 강남 좋은 땅은 수백억이지만 그 땅은 팔아봤자 4백만원이었다.
그런데 그 동생 4명이 고작 산 판 4백만원을 달라고 길거리에서 아빠를 사기꾼 취급하며 가져갔었다. 그것도 세금은 아빠에게 내라고 하며..
길거리에서 추접스럽고 창피해서 세금을 내줬던 바보같은 아빠이다.
그게 사람인가? 4백만원을 4명이 나눠서 가져갈 정도로 그렇게 궁핍하게들 살고 있나? 본인들인 시댁에서 받을 재산 다 받으며 땅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건물도 있으면서 말이다.
만약 수 천, 수 억, 수백억 이었더라면 아빠는 동생4명에게 살해를 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빠의 둘째 동생은 직장동료였었던 우리 엄마에게 본인 오빠를 중매해놓고 너무 몰상식하게 굴었다.
원래부터 본인들 친정집이 찢어지게 가난했지 우리엄마가 시집가서 망하게 한 것도 아니고 돈을 없앤 것은 더욱 더 아닌데 미안스러운 마음 있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을 고맙게 여겨야 했을 판에 선동해서 그 난리를 친 건지 도무지 그 사람 속을 알 수가 없다.
할머니란 사람도 우리 엄마를 떠받들고 살기는커녕 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괴롭힌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말을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시도는 했었지만 내 목이 아파서 내가 지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할머니란 사람은 귀가 어두워서 본인 말만 할뿐이지 다른 말만 한다. 어쩌다 듣고 본인이 불리하다 싶으면 도망가 버린다.
할머니의 딸들이란 사람들도 엄마가 대화를 하고자 할 때면 전혀 들을 생각을 하지 않고 엉뚱한 말만 해대고 자리를 피해버린다.
벽창호들이다. ‘소 귀에 경 읽기’를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대화 자체가 안 된다. 상종 못할 사람들이다.
도망을 왜 갈까 본인들이 한 짓이 찔려서 그러는 것일까
하긴 사람들이었더라면 애초에 그렇게 몰상식하고 천박하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와 그런 동생들에게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휘둘리며 사는 아빠가 한 없이 답답할 뿐이었다.
아빠는 동생들한테 거북한 말을 들을 때마다 늘 우리에게 온갖 짜증과 화를 냈었다.
왜 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왜 우리에게 화를 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싫었다.
우리에게 늘 스트레스를 주는 동생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때면 아빠는 딸인 나에게 식탁의자를 집어던지고 울그락 불그락 화를 내며 우리를 죽일 듯이 쏘아붙였다.
늘 아빠는 아빠의 엄마, 아빠의 동생이라는 사람들 편에 섰었다.
그런 아빠가 너무 끔찍하고 싫고 미웠다. 우리 엄마의 인생이 한 없이 불쌍해보였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때 내 나이 고작 12살. 불과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딸이 엄마한테 우린 생각하지 말고 이혼하고 다른 아저씨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고까지 했을까.
오죽하면 어린 딸이 엄마의 인생이 불쌍해 보여서, 엄마가 지쳐보여서 이혼을 권했었을까.
아빠는 무직이다. 돈이 없으면 건강하기라도 해야 되는데 병이란 병은 다 앓고 있다.
40년이 다 되어가는 간질, 10년 전에 진단받은 메니에르, 또 2017 허리디스크로 시술을 받아 그 부위에 농양이 생겨 지금은 언제 나을지 기약 없이 대 소변도 가누지 못하고 입원중이다.
회진하는 의사는 오래 걸린다는 말만 다람쥐 쳇바퀴처럼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차도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고생해온 우리 엄마가 병수발을 하고 있다.
우리 엄마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짓기라도 한 것일까
또 나와 동생은 무슨 죄를 지었을까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들게만 살아야하나 싶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엄마를 시댁이라는 올가미에서라도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숨통을 조금이라도 트이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참고 참았던 말들을. 이해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고 글은 읽을 수 있지 않나하는 가정 하에 이날에서야 비로소 문자로 뱉어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욕으로 시작하여 욕으로 끝나는 문자 내용이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들, 듣고 보지도 못했던 욕이였다.
‘내가 보낸 문자에 대한 피드백만 하면 될게 아닌가?’ 나는 욕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단지 우리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라는 의미에서 말한 것 밖에는 없다.
왜 그와 관련된 내용은 없고 죄다 욕인가..
그것도 그쪽 자식새끼 시켜서 욕을 보내왔다. 본인이 직접 문자도 못보낼만큼 두 손을 못쓰는건가?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지 자식 뒤에 숨어 50대 중후반. 그 나이먹고 욕이란 욕을 보냈을까
뭐?? 거지근성? 생양아치 만나서 인생 _같이 살으라고??ㅋㅋ
와..수준이 진짜 너무나도 낮다. 그쪽 모자지간 수준 알만하다.
그쪽이 그렇게 시댁에 빌붙으며 기생충.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살아왔으니 나보고 그렇게 말한 것 아니었을까?
거지근성에 인생_같이 사는게 대체 어떤것인지 한 번 그쪽에서 알려줬으면 좋겠다.
더 이상 말 할 가치가 없을뿐더러 더러워서 나는 더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누가 그랬다. 상대방에게 욕을 하고 악담을 퍼붓고 저주를 퍼부으면 그 살은 본인이나 본인자식한테 돌아간다고. 마치 부메랑이 되어..
난 그 말을 믿을 것이다.
불과 이 글을 쓰기 1주일 전 일이다.
1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고 헛웃음이 나온다.
난 그동안 누구에게 말을 한 것이었나, 사람이 맞긴 한 것이었나, 진짜 상종 못할 인간들이다. 왜 우리 엄마가 이 날 평생을 말 않고 살아왔나 이해가 단번에 되었을 정도다.
그 할머니에 그 딸들이다. 그 딸들의 자식들도 뭘 보고 컸을까.
그들이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불쌍하다.
지금껏 우리 엄마의 인생이야기가 ‘사랑과 전쟁’ 그 프로보다 막장이고 막장 드라마 중에 막장일 것이다.
그래도 ‘사랑과 전쟁’과 막장 드라마는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가 있지 않나.
우리는 연끊고 살기로 했다.이제라도 연끊고 살수있게 되어서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하다.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이런 인생을 살았던, 또는 이런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과연 몇 이나 될까?
그런 무개념에 몰상식한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세상밖으로 알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