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도 중순을 지나며 언제쯤 봄이 올까 싶었는데, 오라는 봄은 안 오고 폭설 경보가 뜨면서 학교가 문을 닫았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폭설 경보 하나는 굉장히 정확한게 이 동네 일기예보인지라 이번 겨울의 마지막 눈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그닥 춥지 않은 날씨에 바람도 불지 않고 눈만 많이 내린다고 하니 훈제연어 만들기에 딱 좋은 날씨니까요.
횟감용 연어와 소금, 설탕. 그리고 향신료가 준비물의 전부입니다.
미국에서는 생연어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은데, 식품안전법상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해 일정기간 이상을 냉동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다른 조리과정 없이 생으로 먹는 훈제연어를 만들 경우에는 둘 중 하나입니다.
기생충 감염 걱정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냉동하지 않아도 되는 양식 연어를 사용하거나, 어선에서 급속냉동 시킨 다음 매장에서 해동한지 얼마 안 된 초밥용(Sushi-grade) 연어를 사용하게 되지요. 다만 초밥용 연어는 가격이 두 배라는 단점이 있지만요.
간단한 준비물과는 다르게 준비 과정은 정말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우선 연어에 소금과 설탕을 잘 문질러 바르고, 딜과 통후추, 월계수잎을 뿌립니다.
연어를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훈제하는 경우에는 소금을 무시무시하게 많이 뿌리는데,
이 경우에는 그저 맛을 내는 것이 목적이므로 소금과 설탕을 각각 반 컵씩만 사용했습니다.
향신료는 취향에 따라 조합을 다르게 할 수 있는데, 많은 레시피에서 딜은 거의 필수로 넣는 듯 합니다.
연어와 잘 어울리는 허브인데, 그 파괴력이 거의 토마토와 바질 궁합 수준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진공포장 (없을 경우 지퍼백에 보관)한 다음 냉장고에서 열두시간 정도 절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짭잘한 맛이 들 뿐 아니라 연어 내부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오면서 일차적으로 박테리아가 살기 힘든 환경을 만듭니다.
훈제를 하지 않고 염장 과정만 거친 연어도 의외로 많이 팔리는데, 특히 미국에서는 베이글 가게에서 주로 판매합니다.
소금 뿐만 아니라 각종 향신료를 잔뜩 묻혀서 염장한 것은 북유럽 방식으로 Gravlax라고 부르고, 염도를 좀 낮춰서 염장한 것은 Nova 혹은 Nova lox라고 부릅니다. 뉴욕에서 먹는 연어가 주로 미국 동북부 끝자락 주인 노바스코샤 주에서 잡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지요.
그런데 요즘엔 이렇게 정확한 명칭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고 Gravlax나 Novalox나 smoked salmon을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베이글집 메뉴판에 뭐가 써있건 그냥 '짭잘한 연어'라고 생각하며 주문하곤 하지요.
소금의 양을 꽤나 줄인 레시피인데도 lox보다 훨씬 더 짠 맛이 강한 것이, 그대로 훈제하기엔 아직 간이 너무 쎕니다.
한 시간정도 찬물에 담가서 과도한 소금기를 빼는 것이 좋습니다. 중간에 서너 번 정도 물을 갈아주는 것도 좋구요.
이 과정이 끝나면 대충 짭조름한 햄 수준으로 간이 잡힙니다.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한 다음 철망에 얹어 건조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이나 냉장실에서 네 시간 정도 건조시킵니다.
건조 과정을 통해서 연어가 좀 더 단단해지고 연기가 잘 스며들게 됩니다.
몇 년 전에 처음으로 훈제를 시작한 이후 시행착오를 수없이 거친 끝에 완성된 조합으로 훈제를 시작합니다.
웨버그릴, 토치, 그리고 펠렛 스모커.
저온 훈제를 할 것이 아니라면 굳이 펠렛 스모커까지 장만할 필요 없이, 그냥 바베큐용 목탄 하나 불 붙여서 사과나무 토막 하나 올려놓으면 연기 풀풀 나면서 훈제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어떤 방법을 써도 그릴 내부 온도가 너무 올라가는 바람에 항상 고온 훈제 연어만 먹게 되더군요.
맛이야 비슷하지만 식감이 익은 생선인지라, 저온 훈제 연어의 쫄깃쫄깃한 식감을 포기할 수 없어서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결국엔 펠렛을 사용하게 되었지요.
톱밥을 고압으로 압축시킨 조그만 블럭들인데, 일단 불 붙여놓으면 마치 향 타듯 연쇄적으로 타면서 계속 연기를 냅니다.
벚나무, 참나무 등 나무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무난한 사과나무를 좋아합니다. 사과나무라고 해서 사과향이 나는 게 아니고 벚나무라고 해서 벚꽃 향기가 나는게 아니므로 나무를 태웠을 때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고급으로 인정받는 훈연목은 술을 숙성시킬때 사용된 오크통이라던데, 워낙 구하기가 어려워서 거의 논외로 취급됩니다.
그릴 크기가 작은 관계로 스모커와 최대한 거리를 띄워서 연어를 배치합니다.
아무리 펠렛 스모커를 사용하며 거리를 띄워도 날씨가 따뜻하면 내부 온도가 올라가면서 연어가 약간은 익어버립니다.
저온 훈제 연어의 경우, 훈연 과정에서 26도를 넘어가면 이미 망했다고 봐야 하니 그야말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여름에는 아예 만들 생각을 못하고, 심지어는 겨울에도 날씨가 좀 따뜻하다 싶으면 얼음을 따로 얹어서 온도를 낮춰야만 가능하거든요.
따라서 이번처럼 바람도 불지 않는 3월의 어느 날, 폭설이 내리며 그릴의 온도를 차갑게 식혀주는 날씨야말로 연어를 훈제하기 가장 좋은 날입니다. 뚜껑을 얹고 공기구멍을 살짝 열어놓으면 그 위로 연기가 솔솔 피어나옵니다. 부뚜막에 밥 짓는 연기 올라오는 풍경을 보며 느끼는 흐뭇함이 이런 걸까요.
훈연을 몇 시간하는지는 레시피마다 다른데, 한 두시간만 훈연해도 연기의 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얇게 썰어서 먹을 때도 그 풍미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면 네 시간 정도는 연기를 쐬어주는 것이 좋지요.
시골 농장 같은 곳에는 아예 훈연실이 따로 있는 곳도 많고, 그런 장소에서는 24시간동안 연기를 피우며 각종 고기와 생선을 걸어놓기도 하지만요.
이렇게 훈제가 끝난 생선은 비닐 랩에 잘 싸서 냉장고에 넣고 하룻밤 숙성시켰다가 다음 날부터 꺼내 먹으면 됩니다.
그냥 막 집어먹어도 맛있지만, 이왕 먹는 것 연어말이를 만들어서 맛을 봅니다.
얇게 썬 연어 두 조각에 무순, 피망, 물에 담가서 매운 맛을 뺀 양파를 놓고 말아줍니다.
원래는 소스도 만들어서 뿌려먹지만 이번에는 연어의 맛을 중점적으로 즐기기 위해 채소만 곁들여서 먹습니다.
사과나무 연기의 향기가 가장 먼저 후각을 자극하고 뒤이어 짭잘하면서 기름진, 그러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연어의 맛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아삭한 채소의 맛이 한 박자 늦게 어우러지면서 감탄이 절로 나오지요.
처음 훈제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집에서 훈제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것이 소금치고 연기 날리는 과정 자체가 힘들지는 않습니다. 처음 훈제를 시도할 당시에는 목탄에 불 붙이는 것부터 연기 꺼트려서 다시 훈연목 집어넣는 것까지 허둥지둥하며 어설프기 그지 없었는데 말이죠. 이제는 단지 시간과의 싸움일 뿐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시간을 들인 만큼 보상을 받는 기분입니다. 베이컨(https://blog.naver.com/40075km/220906190959)이나 훈제오리 만들 때도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훈제 과정을 한 번 거친 고기나 생선이 냉장고에 있으면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식량을 훈제해서 동굴 한 구석에 쌓아둔 원시인 시절부터 유전자에 박혀서 이어져 내려온 본능일까요.
아니면 오챠즈케, 카나페, 연어베이글 등 이번에 만든 훈제연어를 활용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요리들이 머리에 떠오르기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