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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간음이란

끼니 |2018.06.22 09:30
조회 184 |추천 0
오늘도 행복한 날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성도는 영적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간음하는 여자들'이란, 문자 그대로 육신적인 간음 행위를 저지른 여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영적 타락을 일삼은 자들 모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문맥에 따라 표현하면 이 땅의 정욕을 따라 세상을 쫓는 교회와 성도들을 가리키는 호칭인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호칭을 대할 때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는다면 영적 무감각증을 의심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향해 화살을 돌리고 싶다면, 판단의 위험성을 경고한 주님의 교훈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 호칭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우리가 어떤 관계입니까? 에베소서 5:24-28과 요한계시록 19:7을 통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이며, 우리는 그의 신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우리를 향하여 ‘간음하는 여인이여’ 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도 마음의 동요가 없다면 참으로 철면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호칭에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며 제자리로 돌아오겠다는 강한 의지와 결단을 하는 것이 성도의 온당한 태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간음에서 돌이켜 신랑과 바른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간음한 여인이 되었습니까? 그 간음이 무엇입니까? 문맥을 자세히 살피면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지 않고 자기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부됨을 포기하고 세상의 벗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이 바로 간음이었던 것입니다. 해를 쫓아 고개를 돌리는 해바라기처럼, 주를 쫓아 고개를 돌려야 하는 주바라기가 됨을 거부하고, 세상이 주는것을 얻고자 마음과 몸이 세상을 향해 있기에 ‘간음하였다’ 고 하는 것입니다. 이 진단에 혹자는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하며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이는 ‘그만한 일로 무슨 간음이니 하는 말을 하느냐’ 며 하나님을 속 좁은 하나님으로 치부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쫓아 가는 것을 ‘간음’ 으로 진단하는 주님의 엄중한 평가를 신중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곧 혹자가 말하는 별것 아닌 일이 하나님 앞에서 간음이란 큰 죄임을 마음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추구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그분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엄청난 일이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세상과 벗하는 것은 분명 영적인 간음입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적 신부로서 신앙의 정조와 지조를 지키며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순결한 주님의 신부가 되도록, 날마다 우리의 겉사람과 속사람 모두를 부지런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모두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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