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학창 시절 때에 이루지못한 짝사랑을 생각하면 '이루지 못한'에 대해 많이 아쉬워하며 그를 좋은 추억으로 담아두곤한다. 그렇다면 내 짝사랑은 무엇때문에 이렇게 아쉬울까.
그때의 우리가 잠시나마 행복하지 않았더라면,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드러내며 대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학교가 끝나고 단둘이 만나 한적한 공원을 걷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지금의 나는 잠시 스쳐가는 그를 보며 마음아파 할 일도, 혼자 늦은 시간 눈물을 흘릴 일도,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수많은 사람과 영화를 봤지만 그와 함께 영화를 본 이후로는 영화라는 플랫폼을 인식 할 때 마다 또 다시 그가 떠올라 애써 피해야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누구는 그때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손자,손녀를 보며 웃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렇지 않으며 그럴 수 없다. 만일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차라리 조금 아리고 바보 같은 짝사랑만 하고 싶다. 그것이 내 첫사랑이었다.
우리가 이별한 지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이별이란 말이 가당키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서로를 좋아했으며 함께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생각했다. 다만 남들 눈에는 우리가 그저 친한 지인으로 보였던 것이 이별이란 단어를 선택하는 데 머뭇거린 이유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사이와 관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내 감정에 충실해 사랑이라 표현할 것이고 이별을 말할것이다.
우리는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며 같은 건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별 후에도 자주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를 보기위해 그의 등교시간을 맞추고 그가 타는 정류장에 서성이고 그의 반 근처 계단에 죽치고 앉아 그를 기다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같은 학교에 같은 건물이기 때문에 많이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로 마주칠 때 마다 멋쩍게 인사를 하고 다시 갈 길을 간다. 그리고 인사를 한 날엔 꼭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아직도 그는 멋있다. 욕을 하지 않으며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남에게 칭찬하는 것이 습관인 사람이다. 매사에 항상 열정적이며 가치관이 뚜렷해 말을 짧게 해도 생각이 깊다는 걸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점심시간이면 농구를 하거나 또는 보충공부를 하며 자신을 다방면으로 가꿀 줄 아는 사람이었고 마지막으로 그는 내가 설랠 수 있게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의 첫만남은 아는 사람의 지인으로 시작했다.공통된 지인을 통해 연락을 시작했으며 약 일년간 공적인 사이를 유지해왔다. 그는 과연 알까 내가 그를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그렇게 한 해가 다 지나갈 무렵 나는 그에게 좀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은 달라진 모습으로 새학기를 맞이했다. 그리고나선 한동안 끊겼던 연락을 용기 있게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새학기의 달콤한 사랑을 시작했다. 그렇게 오래 연락만 하다가 내가 먼저 시간이 널널한 날 영화를 보자고 본격적인 데이트를 신청했다. 처음으로 사석에서 만나는 거라 실수도 많고 덤벙도 대고 긴장도 했지만 뭔들 어떠리, 그와 함께했다는 모든것에 그저 행복해 했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한층 더 가까운 사이가 됐고 다음 약속도 부지런하게 잡으며 행복할 나날을 꿈꿔왔다. 그리고 함께한 다음 약속은 되는 시간까지 함께있는 것이었다. 날은 쌀쌀했지만 우리의 마음과 웃음은 따뜻했었고 그렇게 평온하고 안정적인 감정을 갖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의 1초 후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렇게 행복하던 찰나에 나에 의해 나와 그가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해버럈다. 상황 자체는 그와 나 사이에 큰 타격을 미치지 않았지만 여기서 내 태도는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저 나 힘들다고 거의 하루 종일 연락하고 내 모든 곳을 공유했던 사람에게 말도 없이 돌아서는 멍청한 짓을 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나에게 힘들었음을 말했고 나는 그런 그에게 '미안해'라는 소리 밖에 할 수 없었다. 이게 최선이었고 이게 마지막이었다.
나에게 힘들었음을 말하는 순간까지 그는 나를 배려했고 생각했으며 그 말에 대답하기 위해 울며 말을 써내리던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내 나름대로의 배려를 베풀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별했다.
나는 아직도 그에게 좋아한다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함께 걷던 그 때 그의 손을 잡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나를 좋아해줬던 아주 고마운 사람에게 내가 좋아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으며 내게 부었던 사랑의 댓가로 차디찬 돌아섬을 받았던 그에게 과거에 더 큰 행복을 주지 못한 거 같아서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우리는 이미 서로에 대해 전과는 분명 다른 어색함을 느끼고있고 지금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내 이기적인 투정에 불과할 뿐 절대 행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를 다시 사랑하고 싶다. 그가 내게 건넨 말을 다시 새겨듣고싶고 그가 보여줬던 감정들을 깊숙히 담아두며 오로지 그 사람만을 사랑하고 싶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 시간이 흘러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그때 보다 더 커다란 설렘을 느끼고 더 성숙한 사랑을 하며 더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함께한 기억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진것이 아니라 '익숙함'으로 자리 남은 것이 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잊혀짐'이 아닌 오랜 세월의 '익숙함'으로 인해 서로에게 무뎌진 존재였으면 좋겠다. 짧은 순간이었고 그때 당시엔 몰랐던 감정을 그 떠난 후에 알게 되었다는 게 세상 멍청 할 수가 없다.
초콜릿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을 그것이 얼마나 달콤한 지 모를 것이다. 달콤한 것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차라리 달콤함을 모르는 편이 훨배 나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나는 아직도 달콤함에 헤어나오지도 못한 채 그를 마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멍청한 짓이고 손가락질 받을 만한 짓이라는 건 내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처음 맛본 달콤함은 꽤 치명적이었기에 시간이라는 해독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가 만날 사람은 나보다 더 멋있고 존경스러우며 배울점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서 느껴보질 못할 감정들을 가끔씩 떠올릴 때 쉽게 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나니 그에게 좀 미안해지는 것 같다. 그에겐 우정거리일 것을 멋대로 사랑이라 치부해버렸으니. 만일하나 그가 이 글을 읽었다면 나는 그저 이 글에서 지칭하는 '그'가 자기 자신인 지 못 알아차리는 것만을 기도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있잖아. 지금 내가 말한 것에 대해 우정이라고 말한다면, 네가 내게 했던 말들의 의미는 뭐야? 내가 의미부여 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