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딸딸하게 취한 엄마가 고해성사하듯 저에게 옛날 얘기를 꺼내셨어요.
너 어렸을 땐 친할머니 쏙 빼닮았었다.
이 말에 저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엄마 지인분들이 저를 처음 보시면 꼭 듣는 말이, 엄마랑 어쩜 이리 판박이냐 거든요.
그런데 제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시어머니 얼굴을 그대로 빼닮기 시작했던 적이 있었대요.
눈을 감고 곤히 잠든 얼굴마저 시어머니를 떠오르게 하니 엄마는 어쩔 땐 저를 쳐다보기도 싫으셨다 하시더라구요.
많은 어머니들이 겪으시는 시월드... 저희 엄마도 지나갈 수 없으셨는데 스트레스로 둘째를 조산하시고 그 후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신 정도라 할머니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어요.
그런 할머니 얼굴을 제가 빼다 박았으니...
그 흔히 일컫는 '미운 4살' 때도 조용히 지냈대요.
엄마가 무서워서 심할 땐 옷장에 숨어있기도 했다고ㅋㅋ
어렸을 때 기억은 별로 없어서 몰랐는데,
엄마는 동생을 만지지도 못하게 했대요.
그냥 제가 동생 바라보는 것도 싫었대요ㅋㅋ (충격)
유치원을 안 다녀서 온종일 집에만 있었는데
엄마가 어린 동생이랑 있다가 문득 제가 조용한 것 같잖아요?
보통 조용하면 사고 친다고들 하는데, 저는 스케치북에 그림만 그리고 있었대요. 그러다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건 크레파스 꺼내는 거거나 종이 넘기는 거였다고...ㅋㅋㅋㅋ
엄마가 그때 유일하게 저에게 뭔가를 해준 건 의식주 해결과 아빠를 시켜서 새 스케치북과 색연필 사주는 거였다고 하시더라구요.
새 스케치북 받을 때마다 되게 쑥쓰러워하면서 받았다고ㅋㅋ
아빠가 손재주가 있어서 가끔 같이 그림 그리곤 했는데 자기 취향대로 안 그려주면 고집도 피울 줄 알았다고 말하시길래
그래서 내가 지금 그림 그리는 걸 직업으로 하게 된 거구나?
아무 생각없이 농담 던졌는데 엄마가 갑자기 우시더라구요.
그렇게 어렸는데도 좋다 싫다 고집 피운 게 겨우 그거였다며ㅋㅋ 장난감 사달라고 조른 적도 없고, 그땐 할머니 닮은 게 죄라면 죄라고 생각하며 애꿎은 널 탓했다고 하시네요ㅋㅋ
저는 그런 기억이 없어서 서운하다거나 속상한 건 없는데, 악독한 할머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한숨이 나와요.
요즘 엄마가 이 일로 자꾸 눈물을 많이 보이셔서 고민이라 글을 올립니다... 괜찮다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 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