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30 ~ 32
주품이 큐티 ^ ^
{저주가 아닌 영원한 감사의 깨달음으로}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쌔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 세상 누구가 자신의 죽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을까요 그 마음에 고통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다 용서하는 죽음인 것이며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기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인류용서를 위한 명령과 이에 반응한 순종인 것입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자살과는 다른 일방적인 거룩한 희생을 위한 순종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고 훗날 부활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이 당하고 마는 사건이 아닌 자발적 희생의 십자가와 능력의 부활임을 증거 합니다.
자신의 스승의 죽음의 고백은 제자들에게는 더 묻기도 두려운 일입니다. 부활을 두고 한 말이라도 신이시지만 또한 피와 생명을 가진 사람이신 예수께서 피와 물을 흘리며 괴로운 죽음을 예고한 것은 제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예고입니다. 당하시는 예수님과 듣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들은 쓰라린 침묵 속에 서로의 마음의 고통을 하나같이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가오게 될 고통을 각오 하시는 예수님, 사랑하는 자의 고통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제자들의 고통은 여러 가지 느낌과 긴장으로 교차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십자가는 어떠할까요? 주님과 함께하는 그 평안의 고요할 때나 화려한 기쁨의 찬양 시간, 감사의 시간도 있겠지만 능욕의 시간에는 주님의 뜻에 따라 살려 하였기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인양 모욕과 수치와 능욕의 시간을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정에서 예수님의 뜻대로 살기에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라 말씀을 전하고 살아가기에 믿지 않는 자와 마찰과 갈등과 분쟁의 시간도 살며 가지게 됩니다. 열심히 주님의 뜻대로 살다 실컷 오해 속에 오해와 욕을 먹기도 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가는 자는 복이 있다 합니다. 전에 텃밭이 있는 집에 살때에 텃밭을 비를 맞아가며 정리를 했었습니다. 비옷을 입었으나 노동을 하니 더워 땀을 흘리며 텃밭 안에 정리한 가지를 정리해 치우고 골을 내어 씨를 뿌릴 수 있은 경작을 하였습니다. 이전에 이미 작은 땅에서 경작하는 영상을 찾아 알아보고 옥수수 씨앗도 구해 놓았습니다. 그 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옥수수 씨앗을 심었습니다. 옥수수 씨앗은 알고 보니 우리가 먹는 옥수수 알을 말린 것이었습니다. 옥수수는 온난화 영향으로 한반도에서는 이모작이 가능하며 좁은 지역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는 한국에 좋은 작물이라 합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고통은 마치 울며 씨를 뿌리러 가는 농부의 모습과 같습니다. 헛된 수고가 아닌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유익하고 열매 맺는 수고 인 것입니다. 심겨진 씨앗이 완전 썩어 죽어 그 안에서 새 생명이 움돋아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종자씨앗을 만들어 예수님 재림하시기 까지 그 부활의 새 생명의 모습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수난은 쓸데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수난 뒤에 더 많은 생명을 무한히 열매 맺어 그 영광이 빛이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게 할 것입니다.
그 수난의 길, 그 길을 멈추지 마십시오 그 모든 시험을 감내하고 당신은 생명의 면류관과 승리의 면류관으로 영원히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고 빛나게 할 것이며 그것은 마치 승리를 위한 하나님의 프로그램 게임과 같은 것입니다. 유저이시며 그 프로그램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그 여정 중에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기뻐하시며 그 수고한 대로 주의 영광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는 주의 백성들에게 불패승리로 응답하시고 선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 수난의 길은 좁은 길이며 참으로 구분 짓기가 힘이 듭니다.내가 가는 길이 좁은 길인지 아나 그것이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넓은 길 일 수 있고 내가 가는 길이 넓은 길인지 아나 사실 주님이 원하시는 좁은 길일 수도 있습니다. 가는 길을 구분하는 것과 그 길을 좁은 길을 찾아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조화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과 우리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 군병은 참으로 진실로 하나님의 뜻안에서 신중히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망한 것으로 알았으나 그 망함은 나에게 바른 길을 위한 경고요 내 주위에 오히려 악한 자들이 떠나가는 순결의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며 반대로 나의 흥함으로 주위 악한 자들이 돈을 노리고 들러붙어 지옥까지 끌고 가는 타락의 기운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일순간 망하든 흥하든 낙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항상 버리지 않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원망의 울부짖음을 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마치 아들인 나는 저주를 받은 자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이신 참 신께서 나를 영영히 버리어 죽임에 이르게 하는 절망을 느끼게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 이루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감사와 축복의 교감인 것을 마침내 알게 됩니다. 그 수난은 저주가 아니요 사명을 감당하는 자의 축복인 것입니다.
새 생명의 믿음을 영원히 그 백성들에게 부여하며 자신의 생명의 주인 것을 축복하고 알게 되는 완벽하고 영원한 감사의 탄성인 것입니다.
당신은 알고 있나요 우리에게 부여하신 영원한 축복을 당신의 그 수난과 고통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증거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항상 기뻐하시고 쉬지 말고 기도하시며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주님과 제자들은 그 수난의 길의 두려움과 고통을 오늘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 길을 울며 씨를 뿌리는 길이요 새 생명의 길이며 더 많은 생명을 얻게 하고 영원히 얻게하는 생명의 길입니다. 느끼고 싶지 않고 직면하고 싶지 않는 긴장의 고통이 있는 십자가의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그 고통을 이겨낼 힘을 주시고 어깨를 주시고 선량한 마음을 주시고 원망이 아닌 감사의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삶의 크고 작은 일에 개입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불신의 세력들이 미쳐 날 뛰고 있습니다. 그들과 같이 미치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원망하고 악한 마음으로 같이 더럽히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님 주신 선한 맘으로 대하여 선한 싸움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저와 우리와 우리나라와 각 나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들과 같이 넓은 길로 가는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소서 모든 마귀가 유혹하는 시험에서 승리하여 탈출하고 벗어나게 하여 주소서 마치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승리하는 자에게 무한한 생명의 열매로 보상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옵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