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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이야기

스푸트니크 |2018.08.17 20:38
조회 6,617 |추천 31

잘 지내셨나요.

어제 밤은 선선해서 오랜만에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창문을 다 열어놓고 잤습니다.

바깥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쾌적하게 잠들었어요. 새벽에는 다소 추운 느낌까지 들었죠.

 

잘 지내셨어요?

전 마지막 글을 적었던 당시와 같은 이유로, 잘 못 지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마도, 불행할 때만 글이 쓰고 싶어지는 타입인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처음 글을 썼을 때 역시 그랬군요. 기분이 좋을 때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시간이 아깝습니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으면, 무력감이 듭니다. 운동도 재미가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집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다 재미가 없어져요. 그냥 가만히 있고 싶습니다, 멍 때리면서.

 

그래도 한동안은 행복했기에 열심히 살았습니다. 행복한 기운을 에너지 삼아. 그 땐 운동도 일도 다 재밌더라고요.

 

왜 못 지냈었냐면.

아시나시피 이유는 하나죠.

왜 저랑 또 사이가 틀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시나 이성문제인거 같은데 전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짐작할만한 것도 없고요. 굳이 짚어보자면 제가 여성과 함께 공유한 시간이 있었다, 라는 사실 정도. 그게 사적으로인지 공적으로인지 이유도 묻지 않고 저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저 역시도 열심히 변명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이성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W는 반드시 저에게 갚아줍니다. 언제가 됐든 받은 것 이상으로. 아마도 이성문제로 제가 속을 썩였기에 똑같이 저에게 그렇게 하는걸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평화가 찾아올거라고. 본래 자리로 돌아갈거라고.

 

기다리는거야 제 전문이니까, 어려운 건 아니에요.

 

 

작년 언젠가 함께 밤을 지낸 다음 날, 저희가 굉장히 사이가 좋았어요. 여느 평범한 연인 못지않은 다정한 분위기에 쌓여있었죠. 같이 맨살 닿으면서 잠든 것도, 같은 침대에서 잠깬 것도 좋았어요. 잘 잤어? 와 같은 어조로 정말 일상적이게 물었죠.

 

우리 같이 살까.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마치 밥 먹었어? 의 질문에, 아니. 라고 대답하듯이 단조롭게 말하더군요.

 

저는 긍정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어요. W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고.

제 마음과 같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고민은 해줄거라고 생각했죠.

 

 

당황은 제가 했죠.

왜? 라고 되물었어요.

 

이 정도가 좋아. 적당히. 하고 뒷말을 잇지 않길래 제가, 적당히 거리 유지하면서? 라고 물었죠.

W가 뭐. 라고 긍정의 뜻을 비치더라고요.

 

저도 알아들었으면 그만하면 될 텐데 집요하게 물었죠.

내가 더 달라붙을까봐 부담스럽냐. 딱히 널 옭아맬 생각은 없는데.

 

W가 그러더라고요.

그게 나아, 너한테도.

 

나한테도? 괜히 나 갖다 붙이지 마.

라고 대꾸했죠. 너한테도, 라니. 본인의 마음이 그런걸, 마치 날 배려한다는 듯한 말투가 기분 상하더라고요.

 

W가 절 보면서 웃더라고요. 비웃는 것도 아니고 마치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자상하게. 날 보고 그렇게 미소지어주는 건 분명 기분 좋을 일이지만, 기분이 풀리진 않았어요. 제가 왜? 하고 묻자, W가 그러더라고요. 진짜 너 때문인데?

 

그 말이 과장된 것 같지는 않아서 잠시 생각했죠. 왜지.

내 행동이 확신을 주지 못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또 나에게 택할 수도 없는 선택지를 주려는 건가. 연인으로서 함께 가기엔 내가 미덥지 못한가 싶기도 했고.

 

제가 다시 물었죠.

내가 연인으로서 잘 못 해?

 

 

그리고 W가 대답한 말이, 그 당시엔 흘려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모르게 뭔가 걸리더라고요.

 

너는 어느 누구한테라도 연인으로 좋을 사람이야.

라고 말하곤 자리를 뜨더라고요.

 

더 대화를 잇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땐 듣고 넘겼는데,

선을 그었던 거 같더라고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더.

 

마치 제가 W의 연인이 아니란 듯이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이잖아요.

연인으로 좋을 사람이라니.

어느 누구한테라도..라니.

 

 

그 대화가 있고 몇 달 뒤에 제가 말을 꺼냈어요. 그 때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우리 관계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때 제가 W한테 점심을 차려주고나서였나.

W가 맛있게 먹길래, 괜찮은 애인이지? 라고 말했죠.

태연한 척 물었지만 속으론 긴장하면서.

 

W가, 맛있네. 라고 말을 돌린건지 애매하게 대답하길래 제가 다시 물었죠.

애인이지?

 

W가 밥 먹다가 고갤 들어 절 보더라고요.

제가, 아니야? 라고 물었어요.

 

W에게 듣고 싶었던 건 ‘괜찮은’ 애인인지가 아니라 사실은 ‘너의 애인’인지 였기 때문에

저도 더 확실히 물었죠.

W가 다시 밥을 먹으면서 대수롭지 않은 질문에 답하듯이 말하더라고요.

꼭 애인이어야 해?

 

전 그 말이 좀 어이도 없고, 솔직히 상처를 받았어요.

저렇게 아픈 말을, 너무도 태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제가 오기가 생겨서, 어. 그래야 하는데?. 라고 대답했죠.

W가, 그런 게 중요하냐. 애인인지 아닌지가. 라고 말했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 차버리네.

라고 말했더니, 그런 거 아냐. 라고 대꾸하더라고요.

 

그리곤 덧붙이더라고요.

애인이다 아니다, 그런 식으로 정해놓으면 우리 사이가 달라져? 괜한 책임감만 생기는거지.

 

책임감이 어때서? 연인 사이에 어느 정도의 책임감이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그런거 싫다고. 의무감 같은 거.

 

 

그 말에 저도 좀 빡쳐서 심한 말을 해버렸죠.

애인도 아니면서 키스는 왜 했냐 그럼.

 

뭐 저렇게 곱게 말하진 않았고요. 더 날카롭고 더 기분 더럽게 말했죠.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이 가시 돋혀 나가자, W 역시 져주지 않더라고요.

 

난 원래 그래. 그게 뭐.

 

 

그땐 전 너무 열받고, 솔직히 재수없어서

어련하겠어?

 

라고 말하고 나와버렸습니다.

저희 집이었는데, 더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일단 나왔죠.

 

그리고 몇 시간 후에 들어갔죠. 사과하겠다는 마음으로. 아마 있다면.

물론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W가 순순히 절 기다리고 있어줄 사람이 아닌 걸 알기에.

역시나 없었죠.

바로 W 집으로 갔는데, 집에 있는건지 없는건지 문을 열어주지 않더라고요.

굳이 제가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가고 싶진 않았고요.

 

그 뒤에는..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왔어요.

 

사과하거나 사과받거나, 그에 대해 마무리하는 대화를 하지도 않고.

 

제가 W 회사 앞으로 찾아갔고,

W 역시 왜 왔냐거나 무시하거나 하지도 않고.

며칠 전의 대화는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저는 좀 전략을 바꾸기로 했죠.

충분히 흐지부지한 사이라고 지내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관계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썸이라면 썸인 관계로.

그렇게 줄다리기 하듯이 위태롭고 또 한편으로는 불확실한.

 

이제는 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W 역시 말만 그러할 뿐, 원래 아무하고나 그런.. 사람은 아니란 걸 알기에. 동성간에는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거고.. 사실 이성과는 불확실합니다.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화려하게 살아왔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굳이 상처주는 말을 해야 했나, 라고 탓하고 싶지만, 제가 먼저 심하게 말해버렸으니 제 잘못이죠.

 

 

어쨌거나, 전략적으로 좀 귀찮게 했어요.

제가 ‘너의 애인이다’라는 것도 틈만 나면 어필했고요.

W는 그럴때마다 애 보듯이 절 귀여워하는 표정으로 웃기만 했지만..

 

 

어느 날 한창 키스하며 열이 올라있을 때 제가 입술을 떼고 물었죠.

내가 문제야?

 

W가,

넌 아무 문제없어. 내가 문제야.

라고 말하면서 다시 제게 키스를 하는데 그런 W가 너무 섹시하게 느껴졌죠.

 

그래서 더 이상 말은 이어나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W의 키스가, 말로는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우리 관계는 누가 뭐래도 연인이라고, 키스로서 대답해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 날을 기점으로, 전 더 이상 ‘연인’이란 말과 관계에 집착하지 않게 됐는데,

이제 와서 반추해보면..

글쎄요, W는 저와 확실한 관계로 규정내리는 걸 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게 누구 때문이든 간에.

 

그렇게 키스에 혼이 뺏겨,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걸 그랬습니다.

추천수31
반대수0
베플|2018.08.20 20:19
왜 자꾸 둘 사이가 평행선으로 간다고 생각하세요? 글로 통해서 본 w님은 스푸트니크님에게 약자입니다. 스푸트니크님은 w님에게 다 져주고 있다고 말하는 데 솔직히 w님을 놓고 흔드는 건 본인 같아요. 동거 이야기를 w님에게 할 때 어떤 식으로 말씀하셨나요? 그냥 우리 이쯤 연애했으니 같이 살까? 이런 뉘앙스셨다면 w님이 왜 동거 하지 말자고 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은데요. w님은 멀쩡한 남자 신세 망친 자신을 원망하면서 평생을 지낸 분입니다. 오죽하면 님의 집에 자신의 물건을 놔두지 않겠어요? 그건 w님이 이 연애의 주체가 아니라 스푸트니크님이 주체라는 뜻이에요. 여자 문제에 민감한 걸 아셨으면 아예 여지를 주지 말고 변명이라도 하셨어야죠. 난 지금처럼 그냥 기다리겠다? 라는 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가요? 솔직히 모든 글을 읽은 사람으로서 언제나 두분을 응원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요. 동성 연애에서 동거는 이성 연애의 동거랑은 천지차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신중해야하고 내가 너와 평생을 하겠다는 의미가 수반되어야 하는 데 님은 그러한 심정을 w님에게 보여줬나요? w님에게 동거는 결혼의 의미라는 생각은 해보셨는지요? 자꾸 본인이 힘들다. 난 기다리겠다는 말씀을 하지 마시고 행동과 진지한 대화를 하세요. 본인은 참는다고 하시는데 w님이 보기엔 회피하는 걸로 인식 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맞춰주는 연애는 없어요. 서로 싸우면서 맞춰가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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