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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위해 뭐든 하시는 완벽한 엄마... 이제 그런 엄마와 멀어지고 싶습니다

엄마의딸 |2018.08.21 02:01
조회 2,388 |추천 5
저는 아직 아기 엄마가 아니지만
많은 어머니들의 생각이 궁금해 올려요 조언 부탁드려요...

나는 어릴 때부터 참 까탈스러운 아이였습니다

아무거나 안 먹고, 아무거나 안 입고, 잠이 적은 아이
어릴 때 사진을 봐도 활짝 웃고 있는 사진보다는 어딘가 뾰루퉁한 표정의 사진이 더 많아요

순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아이에게 쏟아야 하는 돈과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키우기 힘든 아이였던 나

그런 나를 키우며 우리 엄마가 고생을 참 많이 했어요

세상을 잘 모르는 순진한 부자집 아가씨였던 엄마가
스물다섯에 나를 낳고 키우며 눈물이 많고 자주 울컥하고 때때로 욕이 나오는... 그런 자신의 변한 모습에 놀라 또 슬퍼하는... 그런 고달픈 중년 여성이 되었습니다

여기엔 급격히 나빠진 친가와 외가의 경제적 상황도 한 몫 했구요... 원래도 부모님께서 유산 욕심은 크게 없으셨지만

사업이라는 게 뭔지 순식간에 폭삭 망해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의 노후를 부모님이 보살펴 드려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엄마를 제일 힘들게 하고 가장 많이 변하게 한 건 나예요

엄마가 가장 기대했고, 사랑했고, 공을 들였던 자식인 제가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부 걱정은 없을 줄 알았던 딸이 고등학교 내신을 완전히 말아먹고
그래도 정시로 서울대를 갈 줄 알았던 딸이 재수해서 겨우 연고대에 들어가고
대학을 보내놓았더니 고시공부를 한다고 이년째 헤매고 있고

어린시절 나의 예쁘장했던 외모도 지금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한마디로 금이야 옥이야 날 키운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식이 된 거지요

우리 엄마는 본인이 무리를 해서라도 자식들을 챙기시는 분이라
나는 엄마에게 많은 것을 받고도 보답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김연아나 박지성은 아니더라도
나보다 더 똑똑하고 더 성실해서 대학도 현역으로 가고 고시도 한 번에 붙는 그런 자랑스러운 자식이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내가 생각해도 우리 엄마는 완벽한 엄마이세요

마땅한 취미생활도 없이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끊임없이 요리하고, 청소하고 등등...

덕분에 우리집은 항상 호텔만큼이나 깨끗하고, 우리 가족들은 안 다려진 옷을 입는 일이 없고, 집에는 매 끼니마다 메뉴를 다르게 먹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종류의 국과 반찬이 있습니다

누가 말하길 가정주부는 그래도 몸이 좀 편안하다는데,
우리 엄마를 보면 퇴근이란 게 없는 가정주부의 삶이 가끔은 가혹하리만치 갑갑하게 느껴집니다

엄마는 밤 열한시에도 가족들을 위해 야식을 요리하십니다

무리해서라도 가족들의 욕구를 들어주고 마지막 힘 한방울마저 바닥날 때까지 가정을 위해 헌신하시는 엄마

그 헌신의 중심에 제가 있었죠


제가 재수하던 해에 엄마가 우울증에 걸리셨습니다
제가 대학을 가고 나아지던 엄마의 우울증 증상이 제가 고시에 두 번 낙방한 후 다시 도지고 있어요

가끔은 제 얼굴만 봐도 눈물을 흘리시는 엄마

이유를 물어보니
물려줄 재산이 없으니 자식의 앞날에 대한 걱정
그리고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과 같은 배신감...

엄마는 아니라고 하시지만
내 눈에는 암만 봐도
어린 시절만큼 잘나지 못한 나로 인해 불행한 엄마

나의 과오 역시 인정합니다
매 순간 더 절실하게 살지 못했던 것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고 나 살고픈 대로 살았던 것
고등학교 때 노는 친구들을 사귀어 기어코 재수한 것
재수한 해에도 남자친구를 사귀어 서울대엔 원서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연고대를 간 것
연고대 간판과를 다니면서도 다른 우수한 엘리트 학생들처럼 하루빨리 유명 기업에 취직하거나 일이년만에 고시에 붙지 못한 것

핑계나 변명이 아니라 저도 제 안의 부족함이 보여요
가끔은 내가 어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 집에 내가 잘못 태어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난 엄마의 딸이 될 자격이 없거든요

엄마는 부모가 보살피지 않았으나 자식이 매우 잘 풀린 가정에 대해 이따금 말씀하십니다
저는 엄마의 말씀 속에서 질투, 회한을 느끼고
제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낍니다

난 엄마의 자식으로서 낙제했어요

다가오는 세 번째 고시 시험, 이번엔 정말 잘 볼 자신이 있습니다
원래 공부머리는 나쁘지 않았고 엉덩이가 가벼운 것이 탈이었는데 이번엔 진짜 눈물 콧물 다 빼며 열심히 했거든요
지금까지 살면서 시험을 잘 칠 거라는 예감이 들었을 땐 그 예감이 맞았으니 아마 이번에도 시험’은’ 잘 칠 거예요

그런데 우리 엄마에 대한 죄책감, 나 자신에 대한 패배의식, 혐오감,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부러움과 열등감...

부모를 실망시킨 모자란 자식
완벽한 가정의 불량품

스스로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와 평생 싸워 나가야 할텐데, 잘 할 수 있을까요?

이제 완벽한 엄마에게도
완벽하지 못한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

직장을 얻으면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는 엄마의 영혼을 나에게 바쳤는데 엄마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난 참 배은망덕한 자식입니다

엄마에게 보통의 엄마들보다 더 큰 사랑과 헌신을 받았는데도

엄마의 기대와, 그걸 실망시키는 나

이걸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이제 널 내려놓아야지”
“이제 너에 대한 기대를 포기해야지”
“기대 안 할 거다 나도 과거에 너의 잘났던 모습을 잊어 버리려고 노력 중이다”

엄마가 저런 말을 하실 때마다
무책임하지만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무 곳에도 닿지 않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는 자식으로서의 새출발이요
추천수5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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