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약혼자 3
찬바람이 쌩쌩 부는 초겨울 아침시간의 한 고즈넉한 시골 마을. 띄엄띄엄 떨어져있는 집들만 보면 매우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로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사람들이 아예 살지 않는 폐가(廢家)도 있었다.
그중 반쯤 허물어진 낡은 슬레이트 집.
때가 묻은 목장갑을 끼고 입김을 훅훅 불어가며 열심히 그 집의 벽 수리를 하고 있는 한 젊은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바로 옆, 그가 금방 새로 올린 조적(組積)에 덕지덕지 발라진 교니(膠泥)를 보면, 미장 솜씨가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꽤 정성껏 만지고 또 만진 흔적이 역력했다.
그 앞쪽으로 가지를 뻗히고 있는 큼지막한 밤나무에는 그 남자의 이름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인 ‘상철♡경미’라는 무늬조각글자가 예쁘게 파진 패(牌) 하나가 걸려있었다. 하트 무늬와 이름 부분이 파스텔로 아기자기 예쁘게 칠해진 그들의 신혼방 안에 장식으로 걸게 될 패였다. 금방 작업을 한 모양인지 그 앞에 앙증맞은 파스텔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젊은 남자가 그 패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커다란 대야에 래미탈을 붓고, 물을 섞었다. 삽을 들어 반죽을 하다말고 갑자기 주저앉아 지저분한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시멘트 사이의 아직 스미지 않은 물기 위로 그의 눈물이 똑똑 돋아 올랐다.
멀리서 추리닝 차림에 ‘주케토’를 엉성하게 쓴 신부님이 그를 보더니 잰걸음으로 걸어왔다.
“고생이 많네. 실력이 아주 좋군!”
신부님이 감탄을 하며 박수를 치고는 남자를 바라봤다.
“오셨습니까?”
“집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일세. 빈집 중에서는 가장 넓고 햇볕이 잘 드는 곳이야. 수리만 잘하면 괜찮을 걸세. 보일러는 수일 내에 면사무소에서 지원해준다니...”
남자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받아주신 것만으로 저흰 영광인데...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은혜라니... 마을은 사람이 살라고 있는 곳이라네. 살려고 왔는데, 당연히 터를 내주어야지. 성당이름으로 되었으니, 형식적인 임차계약만 하면 돼. 월세는 행복하게 살아주는 것을 값으로 치도록 하겠네.”
남자가 구십 도로 절을 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가 운이 좋습니다. 이렇게 고마우신 분이 많은 마을에 왔으니까요.”
신부님이 허허 웃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손뼉을 쳤다.
“참, 준비는 다 해두었어.”
신부님의 말에 남자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아, 고맙습니다.”
“근데, 경미양은?”
그제야 젊은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게, 아직요.”
신부님이 시계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좀 더 기다려보게.”
“알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의 표정을 살피던 신부님이 그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상심하지 말게. 늦게라도 오겠지. 약속을 잘 지키는 성실한 사람이라며?”
“하지만...”
“원래 결혼 전에는 정말 할 것이 많아. 아니면, 갑자기 뭔가 엄청 바쁜 일이 생겼을 수도 모르지.”
남자가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네.”
신부님은 남자의 말을 끊고 열심히 그를 달랬다.
“근데, 아까 읍내 파출소장님을 우연히 만났는데, 혹시 실종신고를 했어?”
“제가 먼저 신고를 한 건 아니고, 우연히 그렇게 됐습니다.”
신부님이 손가락으로 셈을 하며 말했다.
“그래그래, 일단 기다려보자고! 시간을 딱 맞추어서 나타날 수도 있잖아. 그 시간이 되기 전까지 버스도 아직 넉 대나 남았다네.”
신부님은 안절부절 못하는 남자에게 걱정 말라는 제스처를 하고는 성당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는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꺼냈다. ‘내 사랑’이라고 써진 번호로 발신한 목록이 족히 수십 통은 되었다. 남자는 주저 없이 그 번호를 다시 눌렀다. 하지만 여전히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공허한 기계음만 들릴 뿐이었다.
남자가 하늘을 봤다.
“모든 게, 내 잘못이야.”
***
몇 시간 후.
남자가 혼자 성당 앞으로 걸어왔다. 낡았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다림질이 된 양복을 걸치고 있었다. 또 한 손엔 옷가방 하나가 들려 있었다. 몸도 말끔하게 씻은 모양이었다. 신부님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아직?”
“... 네.”
신부님은 벌겋게 상기된 남자의 얼굴을 보고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찬물에 씻었나? 여기 와서 따뜻한 물에 씻지. 감기 조심해야 해.”
“건강하니까요.”
신부님은 머뭇거리다 좀 전에 하려던 말을 꺼냈다.
“혹시 오늘이 그날이란 걸, 잠시 잊고 있는 건 아닐까?”
남자의 말문이 터졌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지만, 이렇게 연락이 되지 않은 건, 그 친구를 만난 후 처음입니다.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단 한번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에게 신부님이 대꾸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연락이 끊긴지 얼마나 되었지?”
“일주일 되었습니다. 계속 문자도 남겼는데, 읽지도 않습니다. 사방팔방으로 연락을 해봐도 찾을 수가 없고요. 언젠가는 떠날 거 같다는 느낌이 들더니만...”
신부님이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신부님이 두 손으로 남자의 손을 맞잡았다. 그제야 남자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백을 했다.
“실은 제가 이 마을에 귀농을 오게 된 사연은 사기를 당해서 빈털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짐작은 하고 있었네.”
“결혼 전에 집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말만 듣고는 덜컥 투자를 했다가, 전세금까지 모조리 날렸습니다. 그것도 여자친구와 함께 모은 귀하디귀한 돈을요. 전 이 시골이 좋아서 온 게 아니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오게 된 것입니다. 신부님과 마을 어르신들께 정말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함부로 믿으면 아니 되네. 큰 교훈으로 생각해. 이유야 어떻든 앞으로 잘 살면 되잖아. 안 그런가? 또 젊은 자네들이 이 마을을 살려놓으면, 그것으로 모든 빚은 갚는 걸세.”
“그리 생각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자네는 약재 전문가고, 경미양이 약초 전문가라며? 농촌에 꼭 필요한 인재들이야.”
남자는 고개를 들고 신부님을 바라봤다. 그의 두 눈은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듯 반쯤 이성을 잃고 있었다. 한참을 주저하던 그의 입술이 움직거렸다.
“진짜 떠나간 거 같아요. 느낌이 좋지 않아요.”
“아직은 몰라. 그러니 힘을 내시게.”
남자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고 핸드폰을 잡았다. 그것을 꺼낼까말까 망설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일주일 전에 문자가 왔었습니다.”
“문자? 무슨 문자?”
남자는 주저하다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아, 아닙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동안 마을 어르신 십여 명이 성당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들 모두 나름대로의 정장을 걸치고 있었다. 하객으로 온 것이었다.
어르신 한분이 두리번거리더니 남자를 바라봤다.
“뭐여? 색시는 어디 갔어? 요 며칠 안 보이더니만? 색시를 보여줘야지.”
영문도 모르는 다른 어르신이 대꾸를 했다.
“이 영감탱이 주책은... 남의 신붓감한테 뭔 관심이 그리 많은가? 그리고 색시가 밖에 나와 있는 경우가 어디 있어? 잘 차려입고 따스운 곳에 앉아 대기하고 있겠지.”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을에서 젊은이들이 혼례를 하는 것이 정말 얼마만이고?”
“분희네가 마지막이었을걸? 그것도 한 이십 년은 넘은 거 같네. 애들이 취직했다지?”
“고 녀석들도 어렸을 때보고 못 봤네.”
말이 없던 어르신이 손가락으로 성당을 가리켰다.
“예식시간이 얼마 안 남았소. 다들 들어가서 앉읍시다.”
그를 따라 부지런히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남자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결혼식을 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어려운 걸음 하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할머니 한 분이 놀란 표정으로 대꾸했다.
“뭣이? 결혼식을 할 수 없다니, 다퉜어?”
그러자 심술궂게 생긴 한 할아버지가 혀를 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쯧쯧, 딱 보니 색시가 도망친 게로 구만! 요즘 이런 시골구석에서 살림을 차리려는 젊은 여자가 어디에 있겠어?”
“아니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릴!”
할아버지의 부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부님이 어르신들이 있는 쪽으로 가서 이야기했다.
“그냥 오늘 있을 경사가 며칠 미뤄졌을 뿐입니다. 괜한 오해들은 하지 마시고, 며칠 후에 다시 모이십시다.”
가장 연령이 높아 보이는 어르신이 옷을 털었다.
“그럽시다. 일단 철수합시다. 그리고 여기 젊은 양반들이 결혼하는 날까지 괜한 추측을 하며 입방정 치지 마시게들. 간만에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오셨는데, 좋은 말만 해도 마땅찮을 판에”
그들이 돌아가자 정적이 흘렀다. 남자는 다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먼 산만 바라보았다. 신부님은 그에게 어떤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지켜볼 뿐이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허무하게 앉아 있던 남자는 신부님의 부축을 받고 겨우 일어났다.
“오늘은 약속했던 날 일 뿐이지, 그 약속이 영영 사라진 건 아니야.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고, 그 다음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가? 당장 오늘만 해도 버스 두어 대가 더 남았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신부님께 다시 뭔가를 보여주려 하다가 그냥 반절을 하고는 상심한 표정으로 본인의 집이 있는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신부님은 그를 잡아서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지만, 혼자 놔두는 것이 더 나을 거 같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신부님은 누군가 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제 왔던 노인 중에 한 명이었다.
“큰일 났어요!”
노인은 숨이 벅찬지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신부님은 그가 뛰어온 쪽을 바라봤다. 그사이 어디선가 시끄러운 사이렌소리가 울렸다.
‘설마?’
신부님은 아무렇게나 옷을 껴입고 젊은 남자의 집이 있는 쪽으로 열심히 뛰어갔다.
모퉁이를 돌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바닥에 어떤 물체가 있었고, 그 물체 위에 하얀 천이 올려 있었다. 신부님은 사람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죠?”
“그 총각!”
“어제 그 새신랑 있잖소. 그 사람이 빨간 다라이 시멘트 속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있는 걸, 우리 바깥양반이 발견했대요. 그 옆엔 빈 그라목손 병이 두 개나 굴러다니고 있고... 작정을 했나? 요즘엔 쓰지도 못하는 그걸 어디서 구했는지!”
마침 경찰 한 명이 그의 집 안에서 봉투 하나를 들고 나왔다. 파출소장이 그 봉투를 열자 오만 원짜리 육십여 장과 만 원짜리와 천 원짜리 각각 십여 장, 그리고 유언장 하나가 들어있었다.
유언장에는 ‘빈털터리로 귀농을 와서 마을에 큰 피해만 끼치고 떠나가는 저를 용서해달라는 내용과 비록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마을을 위해 써 달라’는 내용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신부님은 뭔가에 크게 얻어맞은 충격으로 하얀 천을 바라봤다. 잠시 후, 다른 경찰이 그곳에서 오십 여 미터 떨어져 있던 짚더미에서 남자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액정이 깨져 산산이 금이 가있었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있었다. 감식반이 핸드폰을 켜봤다. 그 안에는 상대방이 받지 않은 수십 통의 발신전화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게 뭐지?”
감식반이 카톡방에 들어가 문자를 확인했다. 그러자 그의 약혼녀에게서 일주일 전에 도착한 문자 하나가 있었다.
[ 내 돈까지 몰래 가져다 망하다니, 당신 같이 무능력하고 어리석은 사람 싫어. 결혼을 한다고 한 것도 죄다 거짓말이었어. 날 찾으려고 하면 그냥 콱 죽어버릴 테니, 날 찾지 말아줘. 영원히... ]
그 문자 뒤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연락을 시도하는 문자가 수십 개가 넘게 있었지만, 그 모두를 읽지 않았다는 표시인 ‘1’자가 딸려있었다.
그랬음에도 남자는 결혼을 약속했던 그날까지 묵묵히 집을 수리하고 그녀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 계속
Yuri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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