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시나리오
한동안 집안 구석구석을 이 잡듯 뒤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거실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주저앉으며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분노한 십여 명이 한꺼번에 떠들어대는 목소리는 실로 엄청난 소음이었다.
“어찌되었든 너희 아버지 올 때까지 우린 여기에서 절대 못 나간다.”
“암, 당연하지! 여러분, 그 양반 나타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립시다. 요 앞 편의점에서 도시락도 팔겠다. 이참에 아예 눌러 붙자고요.”
“요 쥐새끼만한 계집애가 누굴 물로 보고 있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심장고동소리는 앞에서 지껄이고 있는 사람들의 그것보다도 더 큰소리로 뇌리를 쥐어짰다. 손가락질을 하는 그들에게 겨우 말했다.
“아버진 진짜 안 계세요. 정말이에요. 저도 어디에 계신지 모른다고요. 집에 안 들어오신지 정말 오래되셨어요. 믿어주세요. 네?”
***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곤경에 처한 것은 지난겨울의 일이었다. 각종 신문지상에 아버지의 독특한 IT사업 시스템이 기사로 전해지면서, 우린 금세 부자가 될 것만 같았다. 물밀 듯이 들어오는 각종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 및 동업 문의로 시끄러웠던 당시의 거실의 분위기는 그 반대의 이유로 북적거리고 있는 지금의 거실의 모습과 흡사했다.
아버지는 꽤 알아주는 대기업 본사 전산실의 본부장이었고, 어머니는 같은 회사 본사 기획실에 팀장으로 근무하고 계셨다. 유능한 두 사람의 결혼은 그 회사 전체에서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사내커플로 결혼에 골인하여 어머니는 날 낳으면서 그만두셨고, 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까지도 그 직장에 다니셨는데, 2년 전에 갑작스럽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께서도 돌연 회사를 그만두셨던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인터넷 벤처사업’을 시작했다. 잘 다니던 꽤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 이유는 어머니의 갑작스런 사망에 대한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했던 것이라고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래된 사내커플이었으니 회사 복도를 걸을 때나 혹은 직원식당에 갈 때도 늘 생각날 수밖에는 없었으리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어야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는데, 그 직장의 곳곳에는 추억이 너무나도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휴게실에 있는 낡은 휴지통만 봐도 함께 자판기커피를 마시던 추억이 떠올라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고 들었다.
어쨌거나 그런 아픈 사연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지만,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4차 산업 붐을 타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리기 시작하더니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게 된 것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이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힘든 아버지였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희망으로 그 아픔을 조금씩 치유해갔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 가끔씩 미소를 짓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맘이 놓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아이템의 핵심부분을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 빼돌려 그것을 경쟁사에 팔아버리고 잠적을 해버린 것이었다. 백에 구십칠은 아이디어의 싸움인데, 경쟁사가 아버지보다 먼저 그 사업을 착수해버렸으니, 아버지의 꿈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 것은 물론이었다. 개척자들이 대부분 공통으로 느끼는 것처럼, 그것에 대한 질서를 잡을 제도나 법은 늘 뒤에 처져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법적인 대응을 하는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으나 그것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따른 상처를 일로 달래고 있던 아버지인데, 그 일까지 사그리 사라져버리게 되니 흉과 아픔이 두 배가 된 것이다.
그 날 이후로 아버지는 최소한의 거동도 하지 않고 칩거했다. 음식도 잘 잡숫지 못했다. 그러다가 기어코는 화병으로 몸져누우시기에 이르렀다. 어머니의 죽음에다 사라진 일, 더욱이 다른 사람도 아닌 친동생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까지 당하는 삼중고를 겪게 되니 그 충격이 엄청나게 컸던 것이다. 그런 이후로 아버지에게 투자를 했던 투자자들이 전과는 완전 다른 얼굴로 집에 찾아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
그러니까 오늘도 그들이 찾아와 한바탕 난리를 치고 있는 중이다. 밖에서 아버지를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그 새끼와 짜고서 우리 돈을 다른 곳으로 몰래 빼돌린 것 아니야? 우리가 누구를 믿고 그런 큰돈을 투자했는데...”
“그러게! 당장 이 집이라도 뜯어가고 싶지만, 이건 또 미국에 있는 지 누이 소유라며? 아주 치밀하군. 치밀해.”
“맞아! 일부러 그런 것이 분명해! 양아치 같은 새끼!”
나는 몰래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흐느꼈다. 소리 내어 울 수만 있다면 금방 그칠 것도 같은데, 소리를 내지 않고 울려니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마치 심장에 우물이라도 파진 것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문득,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까지 이러면 안 돼!’
신문지와 옷소매로 눈물을 대충 닦아내고는 서랍에서 저금통을 털어 사두었던 빵 한 봉지와 우유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거실의 눈치를 살피며 창문을 열고 뒷들로 나가 한쪽 구석에 숨겨져 있는 철문을 열었다.
- 과거 일본 사람들은 전쟁에 대비해 건물 밑에 지하공간을 파 놓았다고 한다. 지금 내가 들어가고 있는 곳이 바로 그 곳이다. 우리 집은 일제 때 지어진 고옥이다. -
거실 마룻바닥 틈새에서 빛과 함께 투자자들의 욕설이 웅얼거리며 들렸다. 나는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삐거덕 거리는 현관 문소리와 함께 어떤 남자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이 집 딸년, 금방 저쪽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담배를 피우려고 밖에 나가 보니 그 방 창문이 열려 있어서 이상하다 싶어 들여다봤어. 그런데 그 안에는 아무도 없던데?”
“그래요? 이런 맹랑한 계집애 같으니라고... 도망간 것 아니야? 그 앙큼한 계집은 분명 지 애비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혹시 제 아빠한테 간 거 아니야?”
“그럴 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고년을 잡아야 해!”
“맞아, 맞아. 어린애가 갈 때가 어디 있겠어.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나가서 한번 찾아보자고... 그 계집앨 발견하면, 들키지 않게 뒤에서 몰래 미행을 하라고... 그 아버지의 소재를 반드시 알아내야 해.”
“그래, 오히려 잘 됐어. 그래야 바로 찾을 수 있지.”
악에 바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겁이 덜컹 났다. 숨을 죽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꾹 참았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몇 분쯤 참고 있자, 위에서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더니 웅성웅성하는 소리도 사라졌다. 지하 출입구 쪽을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몽둥이를 들고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기란 ‘열다섯’이라는 내 나이가 너무도 어렸다.
그렇게 삼십분은 더 주저앉아있었을 것이다. 다들 나갔는지,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빵과 우유를 다시 확인하고 지하실 모퉁이를 돌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 썩은 퀴퀴한 냄새가 더욱 심해졌다. 콧속으로 곰팡이 가루가 섞인 먼지가 들이쳤다. 머리가 아팠다. 구토와 기침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소리를 낼 순 없었다. 나야 바깥출입을 하지만, 이런 곳에 숨어 나오시지 못하는 병든 아버지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을 해보았다. 흘러나오는 눈물을 삼켰다.
아버지가 누워있는 곳은 부엌의 조리대 쪽과 연결되어 지하실에서 그나마 가장 많은 빛과 가장 맑은 공기가 들어오는 곳이다. 벽을 더듬거리며 실 빛이 반짝이는 곳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갔다. 아버지의 얼굴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속삭임이 들렸다.
“선은이니?”
“네, 아빠. 몸은 좀 어떠세요?”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구나.”
난 마른 장작 같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아니에요. 아빠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안되겠다. 내가 저 사람들을 만나봐야겠어. 그렇게 하면 우리 선은이가 지금보다는 덜 힘들 거야. 모든 고통은 이 애비 몫이야.”
“절대 안돼요. 몸도 성치 않아 잘 걷지도 못하시면서 또 무슨 봉변을 당하시려고 그러세요?”
나는 빵과 우유를 꺼내 아버지께 내밀었다. 아버지의 뺨으로 무엇인가 반짝거리는 것이 흘러내렸다.
“숨겨놓은 돈이라도 있으면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을 텐데...”
“너무 걱정 마세요. 방법이 있을 거예요.”
아버지를 안정시키고, 지하실에서 빠져 나와 미국에 있는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고모에게 연락하는 것을 한사코 반대하셨지만, 친척이라고는 미국에 있는 고모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없는지 자동 응답기가 돌아갔다. 나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음성을 남겼다. 하지만 쏟아지는 눈물은 참을 수가 없었다.
“고모, 한국에는 언제 오세요? 보고 싶어요. 오세요. 영훈이도 데리고... 흑흑...”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당황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울음소리를 들었으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 울음을 참지 못했던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집안에 쌀도 거의 떨어져갔고, 찬거리도 완전히 바닥났다. 저축해 놓았던 돈도 다 찾아 쓴지 오래다.
채권자들이 찾아와 노란딱지를 군데군데 붙여놓았기 때문에 집안에 팔 수 있는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학교는 벌써 2주 째 결석을 했다. 핸드폰은 물론 집 전화도 끊겼다.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내 자신도 자신이지만, 지하실 한쪽 구석에서 병고에 시달리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라도 지어드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무 약이라도 사드려야 했다. 병이 더욱 심해지셨는지 이제는 말씀도 하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돌아 다녔지만, 이제 열다섯 된 중학교 2학년짜리 여자아이를 아르바이트로 선뜻 써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루하루 더욱 지쳐만 갔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채권자 중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나는 그 아저씨를 보자마자 겁을 먹고 거실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 뜻밖에도 그 아저씨는 마치 자신의 손녀에게 말하듯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아르바이트 구하려 다닌다고?”
약간 의아하긴 했지만 사정이 사정이니 만큼 그 아저씨의 목소리에 귀가 솔깃해졌다.
“네가 일거리를 찾아다니더라고, 누가 그러더구나.”
“네”
“내가 비록 네 아버지에게 돈을 뜯기기는 했지만, 어린것이 무척 딱하구나.”
평소에 나만 보면 앙칼진 얼굴을 하고 아버지를 소재를 다그치며 물어보았던 아저씨였다. 이상한 노릇이었다.
“더 이상 아버지 계신 곳이 어딘지 물어보진 않으마. 그리고 내 약간의 생활비를 보태 줄게. 많이는 주지 못하지만, 어린 네가 배는 곯지 말아야 하니 않겠니?”
“정말이에요? 고, 고맙습니다. 그,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아저씨는 나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올렸다. 그러면서 음탕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내가 손해를 많이 봤는데... 그냥은 어렵고... 대신 내 말만 잘 들으면 된다.”
갑자기 몸이 사시나무가 떨리듯 움직였다. 아저씨는 남아있는 나머지 한 손으로 이제 막 멍울이 들기 시작한 어린 가슴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통증이 밀려왔다.
“떨지 마.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니까...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야.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허허, 녀석 벌써 가슴이 볼록하네.”
“저, 아, 아저씨.. 이런 것은... 제발요.”
나는 그 아저씨를 밀쳐내고 앉은 자세로 뒷걸음을 쳤다. 그 아저씨는 나의 반응에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어댔다.
“하하하하... 녀석 참 귀엽구나. 앙탈부리지 말고 이리 오련.”
나는 아저씨를 피해 부엌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닫고 잠금쇠를 내렸다. 그리고 그 앞에 재빠르게 식탁의자를 걸쳐놓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밖에서 아저씨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렸다.
“너 굶어 죽고 싶니? 돈이 필요하지 않아? 매일같이 아줌마 아저씨들이 너한테 찾아와서 아버지 있는 곳 물어보는 것이 좋아?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하던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아저씨는 계속해서 쿵쿵대며 문을 두드렸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로 누워있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나는 손을 뻗어 의자에 의지해 간신히 일어났다. 그리고 잠금쇠를 올렸다. 동시에 아저씨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작 그럴 것이지. 왜 힘을 빼게 만들어. 그 나이에 벌써 남자랑 밀당하는 방법을 터득한 거야?”
아저씨는 억센 힘으로 나를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는 내 옷을 하나하나 벗기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래도 잘못 판단했다는 생각에 온힘을 다해 그를 밀쳐내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도중 마지막 남은 팬티까지 우악스런 손아귀로 벗겨져 내려갔다. 순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쳐내며 속삭이듯 말했다.
“대, 대신... 여기 말고.. 다, 다른 장소요.”
“무슨 소리야. 어딘들 어때.”
“제.. 제발... 부탁...”
“괜찮아. 처음에는 다 그런 거야. 이 시간만 지나면 다 나아질 거야.”
“아, 아저씨 제발... 소, 소리가...”
그가 채권자인 이유로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그 다음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겨우 2~3센티 남짓한 두께의 이 마룻바닥 바로 밑에 누워 계신다.’라는 것을...
잠시 후 다리 사이로 거칠고 딱딱한 것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여리고 여린 살이 쭉 찢어지는 아픔에 입이 벌어졌다. 흘러나오는 눈물과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는 신음소리는 처녀혈흔과 함께 마룻바닥에 뚝뚝 떨어져 스며들어갔다.
‘아빠..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
그가 돌아가고 난 후, 나는 방문을 잠그고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다리 사이는 무척이나 쓰리고 아렸다. 욕실로 달려가 평소보다 열 배는 더 비비적거리며 그곳을 닦아냈다. 닦으면 닦을수록 쓸린 부분이 더욱 아팠다. 그래도 닦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닦아내고 또 닦아내도 그 불쾌하고 이상한 기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부엌으로 향해 식탁 위, 그가 휙 던지고 간 오만 원 권 지폐 두 장을 들고 훌쩍거리며 시장으로 향했다. 아버지께서 평소 좋아하시던 반찬을 사기 위해서였다.
시장에 다녀와 오래간 만에 아버지께 드릴 풍성한 음식을 차렸다. 거의 씹지도 못하시기 때문에 거실에 꽂혀있는 요리 책을 보고 '미음'이란 것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께 가지고 가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속으로 ‘편찮으시기 때문에 위에서 ‘그 소리’를 못 들으셨을 지도 몰라.’라고 몇 번이나 다짐하면서 지하실로 향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지하실에는 곰팡이 냄새가 더욱 심했다. 빠른 시간 내에 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다행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께 정성껏 음식을 먹였다. 아버지의 눈에서 한줄기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아버지의 가슴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나 어, 어쩔 수가 없었어요. 살기 위해서는... 아빠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너무 어려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죄송해요.”
채권자들이 들이닥친 것은 그 몇 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밖에서 들리는 아우성거리는 소리에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거실 쪽에서 아주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하다니까! 이 근처 어딘가 그 놈이 있을 거야. 내가 좀 전에 여기 와서 딸내미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눈치가 그렇더라고... 밥도 굶는 것 같아 불쌍해서 내가 무려 삼십만 원이나 주고 나왔는데...”
“돈을 줬다고? 왜?”
“불쌍한 어린애 밥 사먹으라고 준 거지. 내가 평소에 얼마나 봉사를 많이 하는 줄 몰라?”
그 짐승 같은 아저씨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번에는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맞아. 분명해. 여기 봐. 누가 죽을 쒀 놨어요. 자기 애비 먹이려고 그랬겠지. 지가 처먹으려고 이런 걸 끓였겠어? 이쪽에는 시장을 봐온 흔적도 있네. 그릇이 따뜻한 것으로 보아 끓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아.”
“이것들 멀지 않은 곳에 있네. 불쌍해서 돈까지 줬더니만, 이렇게 뒤통수를 치네?”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찾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어린애를 강간하고 짐승처럼 농락한 그 강아지가 약속을 어기고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직 그 약속 때문에 더러움을 참아냈는데... 이 배신감과 설움을 참아내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아버지 미안해요. 잠시 나갔다 올게요. 아버지가 여기 계신 것은 절대로 말 안 할게요.”
밖으로 나가기 위해 지하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저기다.”
내가 나오는 것을 누군가 본 모양이었다. 나는 서둘러 지하실의 문을 닫고 구석에 숨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서너 명의 어른들이 이미 지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곳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곧잘 숨어 있었군. 누가 경찰 좀 불러요. 사기꾼 이 안에 있는 것 같아.”
나는 아빠가 누워 계신 곳으로 재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몸을 최대한 가리기 위해 아버지를 __안았다.
사람들이 라이터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왔다.
“오호! 여기 계셨군. 사기꾼 나으리... 그리고 저 맹랑한 계집!!.... 넌 저기로 비켜!”
***
한 사람이 중학생 딸의 팔을 잡아 당겼다. 딸은 팔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그 사람의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여자애가 안고 있는 사람은 얼굴에 구더기가 돌아다닐 정도로 부패되어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썩은 사람의 시체였기 때문이다.
***
다음 날...
누군가 신문을 보다가 그것을 탁자 위에 툭 팽개쳤다. 그 한 쪽 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짤막하게 실려 있었다.
[인터넷 사업을 벌이다가 사기 혐의로 경찰에 수배되었던 최모씨가 어제 오후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 시체를 발견한 채권자 김모씨에 따르면 당시 숨진 최씨의 집 지하실에서 최씨의 딸인 최XX양이 최씨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있었다고 전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하면 시체는 사망한지 한 달 정도 지나 심하게 부패되어 있었으며, 그 옆에는 최양이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이는 음식이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일단 최양이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채권자들이 자주 찾아오자 그에 의한 충격으로 한 달 동안이나 사망한 최씨를 방치한 이상행동을 보인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 신문 밑으로 같은 기사가 실려 있는 신문들 몇 개가 잔뜩 쌓여있었다. 신문을 탁자에 던진 사내가 앞에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이제 깨끗이 다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간단하게 말이지요. 정말 완벽한 시나리오였습니다. 하하하. 골칫덩이 선은이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구실도 생겼군요.”
“정말 다행이네요. 수고하셨어요.”
“제가 뭘, 수고까지야... 덕분에 경쟁사로 팔아넘긴 그 아이템으로 새롭게 상장될 법인의 주식을 20만주를 챙겼는데요. 그나저나 선은이도 없어졌으니, 이제 모든 상속은 사장님께서 받으시겠군요. 한국 최고의 여성 부동산 재벌 탄생!”
“20만주도 꽤 큰돈이잖아요?”
“당연하죠. 하지만 사장님이 상속받을 서해안 고속도로 부지 주변에 길쭉하게 뻗어있는 300만 평의 땅에 비한다면 애들 과자 값 정도 되겠지만요. 하하하. 말이 300만평이지, 하루 종일 걸어가도 다 못갈 크기잖아요?”
긴장했는지 여자는 침을 꼴깍 삼킨 후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에 부모님이 오빠이름으로 어마어마한 부동산을 남겼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그것을 오빠에게 숨기기 위해서 급히 미국으로 갔던 건데...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부자가 되는데, 형제자매가 무슨 필요인가요? 하하!”
“돈이 원수군요.”
“원수가 아니고 최고죠. 지상 최고의 것!”
“참!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시체를 그 자리에 감쪽같이 눕혔나요?”
남자는 씨익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마어마한 돈이 달린 문제인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20만주 생각하면서 아주 죽을힘으로 뛰고 또 뛰었죠.”
“하긴, 돈 앞에 불가능은 없죠.”
“역시 일본 놈들이 벙커는 잘 지어놓는단 말이야. 장소가 정말 좋았어요. 지하실이 꽤 넓고 잘 꾸며져 있어서 그 시체를 한 달 동안 반대편 구석에 무사히 숨겨 놓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도 선은이가 그걸 발견하지 못했고요. 참, 고민 끝에 한 채권자를 매수해 선은이를 성폭행하도록 시켰습니다.”
여자의 얼굴이 굳어졌다가 이내 평상시 얼굴로 돌아왔다.
“성폭행도 했어요? 정말 심하군요. 이제 열다섯 살인 애인데...”
“왜 이제 와서 조카 생각해주는 듯 말씀하시나요? 그래야 애가 확실하게 미쳐버릴 거 아닙니까? 사람은 충격을 줘야 미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미치지 않는다고 해도,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해서 병원으로 가겠지만...”
“훗, 잔인하네요.”
“쳇! 그런가요? 어쨌거나 저는 채권자들이 지하실을 발견하기 바로 직전, 원래의 시체를 그 자리에 눕히고 숨어 있다가 기회를 봐서 도망쳐 나왔어요. 내가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이 일을 처리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아니에요. 아주 잘하셨어요.”
“성형수술까지 받고 지하실에 누워 지 아빠인척하며 한동안 지냈던 것이 얼마나 어렵던지... 나중에는 밥도 굶어가면서 살까지 뺐습니다.”
여자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남자에게 들키지 않게 부들거리는 손가락을 겨우 진정시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빠가 지하실에 숨어 들어간 건, 오빠가 우리의 비밀작업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나 봐요.”
“맞습니다. 때문에 그자를 죽이기도 아주 쉬웠습니다. 선은이가 가져온 음식에 청산가리를 약간 섞는 수고를 했을 뿐이니까요.”
여자의 동공이 놀란 듯이 커졌다.
“그럼, 우리 오빠... 자연사가 아니었나요?”
“사람이 그리 쉽게 죽습니까? 그리고 죽을지 안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미쳤다고 성형수술까지 합니까? 다 이런 시나리오까지 생각한 겁니다.”
“시나리오라...”
“그래서 더 무서웠다니까요. 제가 죽인 그 시체 가까이에서 몇날며칠을 지내려니...”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 소름이 돋는군요. 어쨌거나 수고했어요. 그리고 성형수술... 말인데요. 밝은 곳에서 봐서는 우리 오빠하고는 살짝 달라 보여요. 어찌되었든 우리 오빠 얼굴이 잘생겼으니, 수술도 괜히 한 것은 아니네요?”
“그건 그렇군요. 하하하하... 광대도 깎고, 쌍꺼풀도 넣고...”
“어찌되었든 윈윈이네요. 이제 축배를 들자고요!”
여자는 웃고 있는 남자 앞에 놓인 잔을 만지작거렸다. 여자의 길쭉한 손톱 안에는 미세량의 분말이 묻어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잔을 전해주고는 웃으며 말했다.
“다 시나리오잖아요? 멋진 시나리오...”
“네네, 사장님. 우리가 짠 멋진 시나리오.”
건배를 마친 여자가 남자의 옷깃을 보며 말했다.
“20만주 서류는 가지고 오셨나요?”
남자가 잔에 든 술을 한모금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그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인감이랑 주민증 다 같이 가지고 왔습니다. 소개시켜주신다는 변호사님은 오후에 오시나요?”
“네, 그래요. 오실 거예요. 곧!”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