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 그땐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자기한테만 신경이 쓰이더라. 다들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도 자기 말에만 귀 기울이느라 귀에 쥐가 날 지경이었어.자기도 그랬잖아. 이상하게 나한테만 시선이 가더라고. 그래서 내가 웃을 때마다 콧잔등을 찡그리는 거, 생각이 많아서 말을 느리게 한다는 거 이야기해 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그 동안 너무 외롭게 살아서 하늘이 자길 보내줬다고 기뻐했지.
우리 사귀기로 한 날, 그랬지? 누가 뭐래도 우리 둘만 믿으면 상관 없다고. 우리가 했던 말, 우리가 느꼈던 마음, 그것만 진실이면 된다고. 그렇게 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했잖아. 그렇게 서로 믿으면서 모르는 거, 궁금한 거 알아가자고. 매일매일이 기대되게 사랑하자고.
“무슨 음식 좋아해?”, “어디 가고 싶어?” 이렇게 묻던 자기의 물음들. 언제부턴가 “어제 어디 갔었니?”, “전화 온 남자 누구야?”, “날 사랑하는 거 맞아?”라고 묻기 시작할 때 난 서서히 숨이 막혀갔어.
처음에는 황송할 정도로 감동적이던 자기의 관심이 선을 넘기 시작할 때, 우리가 맞지 않는 건지 아님 정말 자기 말대로 내 사랑이 변한 건지 나조차 헷갈렸어. 자기 시야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온갖 의심을 하고, 이제는 자기 옆에 있어도 내 마음과 내 사랑까지 의심하잖아.
내 주위 남자들, 자기 만나기 이전부터 알고 지내오던 선후배와 친구일 뿐인데 자긴 그것도 싫어했지. 그리고 자기를 믿고 말했던 내 과거연애지사도 꼭 도마 위에 올라 내가 바람둥이인 것처럼 몰아붙일 땐 나도 어떡해야 할 지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해야 믿어줄 거야? 힘들고 지치지만 그래도 난 자길 사랑해. 자길 떠나고 싶지 않아. 내 마음 그렇게 몰라? 자기가 날 사랑하기 때문에 관심을 주고 의심까지 하는 거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사랑의 관심은 그런 게 아니라고.
너처럼 잘 웃고, 잘 우는 여자는 못 만나봤었어. 니가 웃고 있으면 마치 나만을 위해 웃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더 말을 많이 했지. 그거 아니? 나 사실 말이 많은 편도 아닌데 니가 날 보게 하려고, 날 보며 웃게 하려고 열심히 떠들어댄 거.니 미소와 눈빛은 마치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마법 같았어. 너무 중독이 강해서 난 널 위해서 라면 무엇이든 하겠노라고 매일을 결심했지. 친구들은 날 보고 그러더라. 물에 물 탄 듯, 술에 물 탄 듯 밍밍하게 살아오던 놈이 갑자기 불처럼 타올랐다구. 그래, 사실 나도 이런 내 모습 몰랐었어. 널 만난 이후로 내 인생은 180도 달라진 거야.
널 만날 때마다 더 알고 싶고, 내가 몰랐던 너의 어린 시절부터 날 만나기 전까지의 모든 생활이 궁금했고, 떨어져 있을 때는 뭘 먹고 뭘 하고 누굴 만나는 지 모든 것이 알고 싶었어.
물론 처음보다 내 관심이 너에겐 부담이 됐을 거야. 처음엔 그저 궁금하기만 하던 것들이 나중엔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이상 화가 나고 의심이 가게 됐어.
그때마다 넌 뭐라고 그랬니. 넌 날 이상하게 몰아만 가고 거리를 두고 싶어했잖아. 너의 입은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너의 눈은 지친 빛을 띠는데 난 뭘 믿어야 할까? 솔직히 내 마음은 그래. 내 의심이 갈수록 짙어지는 거 알아. 하지만 널 믿게 너도 노력해줘야 하지 않니? 왜 난 항상 의심 많은 남자여야 하고, 넌 자꾸 도망가려 하는 거니.
너의 자의든 운명이었든 내 마음을 빼앗아가고 날 변하게 만들었으니 너, 날 책임져야 해. 이제 와서 너의 사생활을 존중하라고, 사랑한다는데 왜 못 믿냐고 한다면 아직 우린 같은 방향을 보지 않는 거야. 나도 노력할 테니 너도 제발 니 사랑을 보여줘. 나처럼 아니어도 돼. 내게 관심을 주고, 날 신경 써 달라고. 이건 투정이 아냐. 아니 투정으로 봐도 좋아. 우리 둘 다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니니?
사랑이 당연한 이유일 땐 어떤 행동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사랑이핑계가 될 땐 어떤 행동이든 독이 된다. 서로에게 사랑의 방법을 강
요해선 안 된다.
사랑해서 나도 모르게 의심한다는데, 사랑하면 왜 믿지 못하냐고 반
문한다. 말의 앞뒤를 바꿔보자. 의심하는 건 사랑이라고? 믿지 않아
도 사랑이라고? 결국 둘다 핑계를 대고 있는 건 아닐까? 서로를 위해
다가서려면 이해가 100%는 아니다. 그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좀더 쉽게 생각하자. 의심하고, 거리를 두고, 그러다 보면 이별은 당
연지사.
서로를 위해 오픈툴을 만들어 보자.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무조건식
자유를 주고,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1분 1초까지 보고해 주는 건 어
떨까?
작은 부분만 양보해도 사랑은 더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