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 : 35 ~ 45
{천국의 초대권 섬김}
주품이 큐티 ^ ^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원어사전
종;dou'lo"(1401, 둘로스)
노예, 종 slav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둘로스는 데오(devw: 묶다)에서, 아니면 델로(delw: 올가미에 걸다, 생포하다)에서 유래했으며(참조: Vanicek p.322), '노예,종'을 의미한다. 둘로스에는 자기 자신이 자율을 파기하고 다른 사람의 뜻에 자기의 뜻을 복종시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둘로스는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의지에 내맡긴 자로서, 자기 자신에 속해 있지 아니하고 어떤 다른 사람에 속해 있는 것이다. 대체로 노예의 삶은 집안일이나 공무에서 노동과 봉사가 강요되는 삶이었다.
②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인 것은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둘로이(종들)이고, 따라서 그들의 생명이 부활하여 승귀하신 주님께 바쳐진다는 사상이다. 특별히 바울은 이런 사상을 대표한다.
# 35절,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가 뭔가 느끼시겠지만 이상함을 느낍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종인데 하나님 들으시오 마치 자신들이 주인인양 자신의 요구를 들어 달라합니다. 처움부터 둘의 모습은 거만함이 느껴집니다. 먼저는 하나님 앞에 실수를 범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36절, 예수님은 그럼에도 인자한 모습으로 대합니다. 말해 보거라 하시는거 같습니다. 떠오르는 정치적 구호가 있지만 나라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해 주기를 바라기를 생각하라
미국 채플을 없앤 믿음 약한 케네디의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얻기를 바라기 전에 하나님께 무엇을 먼저 드리기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사실 성구에도 있지요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11 35 36
오히려 받기를 바라는 자보다 주님께 드리기를 먼저 생각하는 자들이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먼저 받는 것입니다.
제 핸드폰의 바탕 화면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주님, 백억보다 하나의 영혼을 더 돌아보겠습니다.
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주식 비트코인같은 유사성 도박이 있습니다.이것을 하면 망하는 이유가 이들의 창업자가 무한대적인 주식과 코인을 가지거나 무한대적인 발행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부나 개미들은 이들의 주식과 코인을 비싸게 사면 그들 창업자는 자신의 호화 생활과 회사 유지를 위한 천문학적 건물비용과 천문학적 노동공급 비용이 필요하게 됩니다 또한 그들에겐 딸린 식구과 친척 이웃이 있기에 그들에게도 퍼붓기 마련이고 광고비용과 기업 이미지를 위한 수없이 기부를 하게 됩니다.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죠 예 다 그들의 주식과 코인을 산 거부들과 개미들의 주머니에서 나가게 됩니다. 무한대적인 주식과 코인을 이미 가지고 있는 창업자들은 그 유지비용을 위해 팔아 버립니다. 팔아도 아무 흔들림 없죠 수없는 발행권이 그들에게 있으니깐요 한번만 그러겠습니까 아니죠 회사가 존속하는 한 계속 팔아 댑니다. 그러면 주식과 코인의 값어치는 떨어지고 거부와 개미는 저점이라고 다시 사서 끌어 올리고 창업자들은 계속 팔아서 돈을 먹어대고 거부와 개미는 계속 빚을 내서 사대고 창업자는 계속 팔아대고 거부와 개미는 저점이라고 좋아하고 계속 사대다가 결국 망하고 거지되거나 자살을 하게 됩니다.
굉장히 무서운 투자가 주식과 코인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는 계속을 돈을 써대고 누구는 계속 돈을 바보같이 댑니다. 이것이 주식과 코인의 위험성입니다. 창업자는 계속 거짓 기사를 거부와 개미에게서 갈취한 돈으로 흥보를 합니다. 그러면 거부와 개미는 속아서 또 호구가 되어 삽니다. 그것도 기대감에 기뻐하며 삽니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망하는 이유입니다. 자신의 손목아지를 잘라도 끊지 못하고 자살하여 도박의 인생을 종치게 됩니다. 거짓과 살인의 마귀의 최고의 미끼가 도박과 유사성 도박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잠14 15
마귀는 거짓 사람으로 믿게 하여 비극적인 종말을 있게 합니다.
이러한 시험이 들 때마다 저는 이런 돈의 욕심보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제하고 돌보는 것을 오로지 하겠다는 것이 제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직업 사이트에 들어가다가 보니 평일 날만 사역하는 곳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주일만 봉사를 하는데 멀어서 이겠죠 이곳은 평일 날만 봉사하며 도움을 또한 제게도 주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주일과 평일 사역을 최근 하게 된 겁니다.
주님의 의를 구할 때에 하나님 은혜를 주신 것을 봅니다. 또한 이 도움 전에 제가 배가 너무 나온거 같아 일주에 3번 씩 저녁 금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께서 축복하신거라 여깁니다. 열심히 은혜롭게 주말과 평일 사역을 감당하여야겠습니다. ^ ^
37절,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좌우편 자리를 원합니다. 이것이 금생인지 이생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고의 권력을 원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이 최고의 클라이막스의 인기의 때이기에 금생일 수도 있고 아니면 위험한 예루살렘을 향하는 분위기도 있기에 순교하여 주님의 좌우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인을 다스리고 권력을 구가하는 자리입니다. 참으로 주님과 다른 제자들 입장에서는 당돌할 거 같습니다. 주님은, 나를 위한 헌신을 다짐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제자들 입장에서는 뭐야 내가 너의 종이 되라고 중얼 될 것입니다.
38절, 예수님들 너희들이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그 자리를 너희 들이 원해서 얻는게 아니야 내가 너희 들 종이냐 그 길은 나의 잔을 마시고 예수님과 같이 세례를 받아야 하는 거라십니다. 주님의 잔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고 제자와 백성들을 섬기는 잔인 것입니다.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길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높아지려는 마인드를 중심에 가지고 있지만 주님은 잘못된 마인드를 고치십니다. 먼저 낮아지려는 마음 중심부터나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받는 세례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열심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중심의 섬김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 열심을 인증하시는 인치심의 세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둘기 같은 성령을 받으시며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시고 권세를 부여하시었습니다. 야고보 요한아! 너희는 섬김의 자세로 바꿔 그리고 성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참된 섬김의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39절, 둘은 동의 합니다. 그래 너희들이 동의 한거처럼 그 섬김의 길로 나아가 하지만
40절, 그 인정하는 좌우편 자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해석이 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계획 하시기에 성부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 자리의 권세 부여는 성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일 것입니다.
41절, 다른 제자들은 화를 냅니다. 내가 너의 종이 되야 겠어 이때 주님의 중재가 필요한 시점인거 같습니다. 12제자들이 서로 누구 더 높냐고 우열을 가리면 논쟁의 기운이 감돌기도 합니다.
42절, 불러다가 이르시는 것을 보면 중재자 몰래 지들끼리 사고치려 불러 모이는 군대의 집합같은 분위기 같습니다. 군종전도사 시절 병사끼리 누가 더 높냐고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벽시간에 자기들끼리 모입니다. 그때 저는 매우 부족한 전도사이지만 중재자가 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속히 다툼이 없이 해산 시키고는 하였지요 주님도 제자들이 자기들 논쟁이 시작되려는 찰라에 그들만의 모임을 해산하고 이리와서 제대로 섬김이 무엇인지 들으라는 거 같습니다. 곧 그들만의 집합은 해산이 되고 예수님 앞에 예배가 됩니다.
43절, 세상은 서로 높은 자가 되고 서슬퍼런 권력의 싸움을 마치고 난 후에 상대를 종으로 부리는 것이 이치에 합당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정 반대가 되어라 하십니다. 이생도 마찬가지 같고 금생에 확실히 그러하라 명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라고 보입니다.내가 사는 이곳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끝이라면 이 땅에서 부와 사치 권력의 끝을 보아야 합니다.
끝이 아니면 무엇이죠 선하신 하나님의 앞의 시험장이 바로 금생입니다. 천국에 초대되어지는 사람은 불신자같이 하나님 없이 사는 자도 아니요 믿는 다면서 교만하면서 군림하는 자도 아니요 선하신 하나님 앞에 선하신 백성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 선함은 섬김으로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 섬김으로 시험에 합격이 된 자 하나님께서 인정된 자가 하나님의 천국에 초대되어지고 아름다운 황금 집과 영생 과일을 선물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금생의 합격은 영생이 됩니다.
44절, 종이라는 것이 나 중심이 아닌 상대방의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상대방의 의지에 맡기는 것입니다. 상대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법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웃의 편의를 위해 이웃의 인도에 따르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한계점은 어디 일까요 바로 목숨을 다하는 것이 목표의 도달점입니다.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죽기까지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포함 누구나 생각이 멈춰지는 순간입니다. 나는 진정 그래 왔는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1서3 16
이웃을 위해 죽는 거는 아닌거 같아도 분명 주님이 명하십니다.이웃을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라 하십니다.
45절, 예수님 가신 길은 십자가에 죽기까지의 섬김입니다. 그 방향점이 죽기까지의 사랑입니다. 그 목표점을 잠시 묵상하며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그렇게 내 삶의 방향을 정하며 살아왔나 나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한 것이 먼저 였는데 하나님을 대하여는 나의 인도하심의 순종이 먼저 였는데 이웃에 대하여는 나를 위한 선택이 먼저 였는데 깊은 고민에 잠겨 봅니다. 어찌할꼬...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개입하시고 섬김의 길로 모두 인도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모두를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늘 제가 생각하는 못된 양의 삶을 산거 같습니다. 제 원하는 방종함의 길도 제가 선택하여 왔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시고 지난 날의 잘못을 밝히 드러내시고 주님의 길만을 향하고 결코 돌아서지 않케 하여 주소서 어리석고 헛된 것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주님의 모든 것, 주님의 시간을 도적질 하며 살았습니다. 제 삶을 파헤쳐 주시고 부정함을 제하여 주옵시고 새롭게 하여 주시고 정결하고 늘 남들에게도 은혜를 끼치는 삶 살게 하여 주소서 주님과 이웃을 향한 참된 섬김의 도를 알고 실천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 근심을 드리며 남을 아프게 하며 살아 습니다. 용서하여 주소서 우리가 가는 그 길에 생명 골짜기가 되어 우리를 전도의 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과 참된 회복의 길 알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