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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자 대구 ....

우리의대구 |2007.09.18 00:00
조회 1,342 |추천 0
통일'과 '작은 통일'
나는 왜 tk 퍼주기에 반대하는가  -  공희준    
 
 
안티조선사이트 우리모두에 '부산개조단'이란 아이디로 활동하던 네티즌이 있었다. 당시 우리모두 관리자로 있던 측근의 전언에 의하면 2000년 총선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부산에서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의 비열한 지역감정 선동에 휘말려 낙선한 사실에 분격한 대구지역 네티즌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글 내용이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고 시의적절해 들여다보곤 했는데 읽고 나면 문득문득 허망한 소회가 들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렇게 뇌까리곤 했다. '부산이 개조면 대구는 창조겠네.'

'나는 tk에 무릎꿇지 않겠다'는 졸문이 작은 반향을 일으켰나보다.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체 하던 민감한 주제를 건드린 탓이다. 다 써놓고 선거 후에 공개할까 잠깐 고민을 했다가 유예와 연기는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tk지역에서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어떤 정당도 선거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선거 이전에는 tk가 뒤집어진다고 한껏 호들갑을 떨다가 선거가 끝난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냉소와 절망감을 표출하는 악순환은 그만 답습하자. 이왕 늘어놓을 푸념과 하소연 며칠 일찍 풀어놓는다고 대세가 바뀌지는 않는다.

사회 모든 영역이 공개적인 논의에 부쳐졌음에도 유독 공론화되지 못한 금기가 존재한다. 종교와 tk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벌집을 쑤셔놓을 수 있다는 염려로 전부들 쉬쉬하고 있다. 종교는 현세가 아닌 내세와 연관되므로 논의하기에 부적절한 이슈일 수 있다. 그렇지만 tk는 살아 숨쉬며 끊임없이 증식하는 현실이자 현안이다.

지난 세기 유럽을 골치 아프게 했던 '독일문제'와 마찬가지로 'tk문제'의 선결 없이는 한국사회의 정상적 성장과 총체적 도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좋은 게 좋다고 마냥 유야무야하다가는 진짜로 치유불능의 말기암 단계에 도달할 위험이 있다.

tk문제의 공론화에 있어서는 양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은 타이밍이다. 선거 이후에 하면 역정내기라 핀잔 듣고 선거 이전에 하면 본색 드러낸다고 지탄받을 게다. 그리고 주체의 문제다. 내가 문제를 꺼내기로 작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소위 영호남 프레임에서 벗어나 있음에 기인한다. 나는 충청도에서 태어나 서울서 자랐다. tk문제에 대해 지나친 몸사림이나 과도한 감정이입 없이 접근할 위치라고 믿는다. 동일한 문제를 호남출신이 제기하면 한풀이로 매도당한다. tk출신이 던지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쇼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서론이 길었다.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내가 tk지역을 차별하거나 소외시키자고 주장한다고 오해하시는 분은 없기 바란다. 정당한 지역발전요구가 있으면 중앙정부에서 예산과 인력을 공급해주고 대구경북 출신의 뛰어난 인재는 보쌈을 해서라도 요직에 등용해야 옳다. 지역개발의 차별과 인재발탁의 불이익으로 특정지역을 왕따하는 방법은 절대 반대한다. 그런 야비한 술책은 박정희나 전두환 부류의 군부독재자들이나 써먹는 수법이다.

tk문제는 여타 지역의 지역주의와 분리해서 조망해야 한다. 지역주의는 전국 보편적인 현상이다. 충청도의 '핫바지론'이나 pk의 '우리가 남이가', 민주당 철밥통들이 부추기는 '호남소외론'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층위의 지역주의는 항구적으로 극복 불가능한 대상은 아니다. 지역간 균형발전과 인사탕평책. 인재 지역할당제 등의 제도를 통해 중장기적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했듯 농부가 어찌 밭을 탓하겠느냐는 인내심과 참을성으로 대화와 설득 노력을 경주하면 능히 풀 수 있는 과제다.

tk의 지역주의는 경제적 개발욕구와 자연스런 향토애에 기반한 타지역의 조야한 지방주의(regionalism)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tk정서는 소박한 지방주의가 아니다. 그것의 성격은 우리만 할 수 있고, 우리만 해야 하고, 우리 아니면 안된다는 사이비 유사 인종주의(pseudo-racism)에 가깝다.

국졸이나 중졸학력의 tk지역 민초들이 일국의 대통령인 dj나 노무현에게 공공연히 표출하는 적개심과 우월감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는 출세한 흑인들을 향해 분출하는 백인 블루컬러의 폭력적 적대감정과 비슷하다. 너희가 아무리 승승장구해도 우리보다는 열등하다는, 우리는 너희와 근본이 다르다는 비뚤어진 특권의식이자 선민의식이다.

대구 서문시장 아주머니들이 '야당지도자' 이회창 총재와 최병렬 대표를 열렬히 환영하는 것은 단순한 지역패권주의의 발로로 규정해 흘려넘길 수 있다. 박근혜 대표 역시 촉망받는 차기 대권주자이자 최초의 여성대통령 후보로서 폭발적인 성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tk지역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보내는 환호와 박수가 '정치인' 박근혜를 향한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박정희의 딸'을 영매로 삼아 죽은 박정희의 영혼을 불러내려는 부두교적 신앙의식(儀式)이다. 시대착오적 배뱅이굿이다. 같은 전직 대통령의 자제라도 김홍일을 보는 목포시민의 싸늘한 시선과 김현철-부진한 지지율에 풀이 죽어 총선후보를 사퇴했다-에 대한 거제도 사람들의 무관심과 비교해 보시라. 노태우는 대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권력을 잡았다. 노태우의 아들 노재헌이 박근혜만한 환대를 구가하겠는가. 박근혜에 대한 tk의 기대와 성원은 김일성의 아들 겸 후계자인 김정일에게 북한 주민들이 보내는 맹목적 충성과 비슷하다. 개명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북한식 유훈통치가 시현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에서 남아와 여아의 출생 성비가 제일 벌어질 만큼 강한 남아선호성향을 보이는 tk가 여성 정치인 박근혜에 열광하는 이유다. 그들이 대통령 큰영애 박근혜에게서 목도하는 것은 치마 입고 환생한 박정희에 불과하다.

tk의 지역주의는 지방주의가 아닌 유사 인종주의라고 정의해야 한다. tk가 갈구하는 것은 타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놓은 생활수준이나 물질적 혜택이 아니다. 경제적 욕구의 실현이 아니라 심리적인 엑스터시의 충족이다. 대구경북에 대규모 지역개발예산을 쏟아 부어도 tk정서는 철옹성이다. 인종주의는 선민의식을 먹고산다. 대구에서 리어카 끄는 가난한 서민이 서울과 인천과 대전과 광주와 부산에서 고급 승용차 끄는 멀쑥한 중산층에게 느끼는 우월감의 뿌리가 여기에 닿아 있다.

선민의식은 역사적 소명감과 생득적 운명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tk는 이기적이지 않다. 처연할 정도로 이타적이다. tk를 짓누르는 시치프스의 바윗덩어리는 대한민국의 권력과 역사발전의 키를 반드시 자신이 쥐어야 나라가 흥한다는 강박적 책임감이다. 타지역에서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일거에 망한다는 편집증적 불안이고 애국심의 독점이다. tk의 우수성과 저력을 내외 만방에 과시해야 한다는 왜곡된 일등주의다. 싸우면 이겨야 한다는 승리지상주의다. 기필코 국가와 겨레를 구하겠다는 부풀려진 조국애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는 과대망상적 역사주의다.

잡초가 무성한 단순 지역주의는 개간해야할 황무지일 따름이다. 적당량의 비료와 꾸준한 제초작업이 상책이다. 사이비 인종주의는 통째로 흙을 바꾸든지 경작을 포기하든지 단안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아직 오염되지 않은 지층의 흙들로 옥토를 일굴 수 있다. 표층의 흙에다가 눈속임용으로 객토 살짝 뿌리고 뗏장 대충 얹어놓은 다음에 이제 희망이 보인다고 자위하면서 설레발을 떠는 행위는 정말 잔인하고 무책임한 짓거리다. 중금속과 침출수는 얕은 지표를 벗어나 깊은 심층의 토양으로 자꾸자꾸 파고드는 법이다.

우리는 tk의 미래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tk의 과거와 현재는 단호히 부인해야 한다. 어줍잖은 온정주의와 인정에 기대어 tk의 과거와 타협하고 현재를 용인하는 것은 tk의 미래를 두 번 죽이는 짓이다. 그 피해는 현재진행형으로 체현되고 한다. 무능하고 부패한 수구정치세력은 지하철방화 참사라는 끔직한 재앙을 불러왔다. 저 능력 없고 썩은 무리들의 손아귀에 대구경북에 살고 있는 수백만 동포들의 소중한 생명과 창창한 장래를 맡겨서는 안된다.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tk의 기성질서, 그리고 기존권위와 과감하게 절연하는 것이 대구경북에서 앞으로 수십 수백 년 동안 태어날 미래의 세대를 위해 긴요하다. 언제까지 그들이 현실세계의 불행과 고초를 가상공간의 우월감과 선민의식으로 대체하도록 방관할 셈인가.

tk의 유사 인종주의를 척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tk에 대한 퍼주기를 멈추는 것이다. 즉 어중간한 화합과 통합, 포용을 내세우며 본원적으로 훼손되지 말아야 할 도덕성과 역사의식을 퍼주지 말자는 것이다. 옥석이 뒤섞이고 옳고 그름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는 정당성 퍼주기를, 양비론으로 변질되고 사리분별을 뒤죽박죽으로 흐려놓는 정신적 퍼주기를 지양하자는 것이다. "알고 보면 너희들도 피해자야", "다른 지역 사람들과 너희하고 무슨 차이가 있겠어" 하는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수세적 대처야말로 유사 인종주의의 발호를 조장하는 기름진 자양분이다.

독일의 역사는 미래로 질주하고 일본의 역사는 과거로 돌진하고 있다. 겸허한 자기반성과 과거청산의 유무 여부가 낳은 중대한 차별성이다.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tk사람들에게 그들이 고집스럽게 껴안고 있는 특권의식과 우월감이 타지역 사람들에게 슬픔과 비극을 강요했음을 알려야 한다. 그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에 있음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자국민을 학살한 군부 독재자들과 그 후예들에게 벌건 대낮에 맨 얼굴을 드러내놓고 박수를 치는 것이 부끄러운 행동임을 인식하도록 일깨워야 한다.  이는 나 홀로 후진기어를 넣고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가고 있는 대구경북이 더 이상 변화의 무풍지대이자 동토의 왕국으로 남지 않도록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처방이다. 지역주의의 외투는 따뜻한 햇볕으로 벗겨야하지만 인종주의의 철갑은 도덕적 각성과 윤리적 깨달음으로 정면돌파해야 한다.

통상적인 의미의 지역주의는 최악의 경우라야 부패한 독재자 마르코스의 고향으로서 이멜다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필리핀 루손섬 북부의 일로코스 지역처럼 과거의 향수에 젖을 뿐이다. 그것은 불쾌할망정 극악하지는 않다. 반면 창궐하는 사이비 인종주의는 바이마르 공화국을 뒤엎고 전세계를 전쟁의 끔찍한 참화로 밀어 넣은 나치즘의 불온한 온상이었던 독일 남부 바바리아 지방의 초라한 아류로 tk를 이끌 것이다.

우리는 협소한 혈연적·지연적 동일성에 의지한 작은 통일이 아닌 보편적인 문화적 동질성에 기초한 큰 통일을 꿈꿔야 한다. 차후에 큰 통일과 작은 통일에 대한 내 견해를 본격적으로 피력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tk의 인종적 우월주의를 수수방관한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남북통일과 동아시아 협력시대에 연변조선족 동포들은 2등 시민으로, 북한주민들은 3등 시민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불가촉천민으로 괄시하고 박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안의 유사 인종주의를 혁파하지 못하고서는 우리 밖을 향한 인종주의도 깨부수기 힘들다. 적당한 얼버무림은 작은 통일만을 가져온다. 진실과 대면하는 용기가 큰 통일을 선사하게 마련이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더러운 편견과 오만을 떨쳐버리고 큰 통일의 염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대구경북의 사이비 유사 인종주의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당위적으로 분쇄되어야 한다.
 

이 정도면 언감생심 대구경북과 개인적으로 하등 척을 질 필요가 없는 내가 본의 아닌 tk 때리기를 감행한 동기를 총선판세를 의식한 정치공학적 발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음이 소명됐을 게다. 솔직히 나도 남들처럼 듣기 편한 덕담과 웃고 즐기는 미담만 소개하고 싶지만 내가 원체 성질이 괴팍해서 잘 안된다. 내 글을 읽고 상심했거나 갑갑함과 막막함, 그리고 답답함을 절감하셨을 대구경북의 많은 분들께 정중한 사과의 말씀과 더불어 힘내시라는 인사를 올리는 바이다.

목전에 임박한 선거가 시급한 관계로 국가개조의 화두를 궁구하는 숙제는 총선 이후로 잠시 미루고 4월 15일까지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위한 맞춤형 무료 정치컨설팅에 매진하도록 하겠다.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박근혜 생각 많이 하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공화당 허경영 총재님만 빼고.

한국일보 강병태 논설위원께서 기명칼럼인 '지평선' 코너를 빌려 내게 호된 꾸지람을 내리셨다. 강위원의 글에는 내가 동의하는 부분도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글쓰기는 링 위에 홀로 서서 상대와 맨몸으로 맞서야 하는 고독한 권투경기와 같다. 내가 남을 때린 만큼 나도 남에게 맞아야하는 것이다. 단, 링 위에서 일어난 일은 링 위에서 푼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진정한 복서는 링 위에서 맞은 매를 링 바깥에서 분풀이하지 않는다.

나는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하늘에 높이 올린 후에 갑자기 바닥으로 쿵 떨어뜨리고자 일부러 추켜 올리는 치사한 할리우드 액션은 하지 않는다. 나도 못 뜨는 판에 타인을 거짓으로 추켜 올릴 틈이 어디 있겠는가. 강병태 위원에 대한 내 존경의 마음은 진심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강위원이 이 땅에서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소신과 식견을 갖춘 몇 안되는 언론인 가운데 한 분임을 확신한다.       http://blog.naver.com/tmvlzjfmf/4002438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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