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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개인적인 사감 몇자 적어봅니다.

ㅇㅇ |2018.10.19 21:00
조회 205 |추천 3

과거 2012년도에 수원 오원춘 사건을 바라보며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에 글을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
불과 6년이 지난 이 시점에 또 다시 이런 글을 적게 된 것에 몹시 통탄스럽습니다.

 

얼마 전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으로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중에 특정 연예인이 해당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는 기사를 얼핏 스치듯이 보았습니다.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강력범죄 사건들 중에 언론의 조명을 받고 국민적 관심으로 지켜보는 사건들이 몇이나 될까요?
그저 대수롭지 않게 가볍게 넘겼습니다. 여느 살인사건과 다름없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과 사고들. 모두 관심갖고 신경쓰기는 분명히 어려운 일입니다.
누군가가 관심을 촉구한다고 해서 그 사건이 더 무겁고 중대한 사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접한 저는 결국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누구 하나라도 꼭 이 사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요청해야 한다고요.

 

이제 갓 세상의 민낯을 마주할 어린 21살의 들풀같은 어린 청년은 무참히 살해당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세간의 많은 관심속에서 꾸준히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시점에 제 생각을 적어보자면, 아직 부족합니다. 우리는 조금 더 이 어린 청년의 죽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아무 죄 없이, 성실히 열심히 자신의 생을 살아나가던 어린청년이 개죽음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이름 또는 얼굴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유영철, 강호순, 조두순 같은 사회를 떠들석하게 했던 범죄자들은 어찌 지내고 있을까요?
아직도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 있겠지요.
하물며 조두순은 어떠합니까? 한 어린아이의 미래와 인생전체를 짓밟은 그자는 아마도 머지않아 자유의 몸으로 이 사회에 풀려나오겠지요.

 

조두순 사건이후로 주취감형 폐지 청원으로 인하여 주취감형이 논란됐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강서구 PC방 사건으로 심신미약 범죄자에 대한 사안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지요.
피해자의 담당의였던 분이 올려주신 글을 저도 보았습니다.
하루 종일 눈물이 흐르고 손이 벌벌 떨려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하루 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선도 존재하고 악도 존재할터입니다.
인간 성악설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어둠과 악의 일부분을 품고 살지만 모두가 그것을 겉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혹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강력범죄들을 보다보면 '묻지마 살인'이 거론되고는 하며,
그 사건의 이유로 심신미약이 종종 등장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심신미약]
-시비를 변별하고 그 변별에 의해 행동하는 능력이 상당히 감퇴되어 있는 상태.
라고 사전적 의미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조금 우울하거나, 날씨가 조금 안 좋아도 심신미약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가정의 불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혹은 직장생활에서의 힘겨운 상황들. 그 사소하고 단순한 상황에서도 심신미약에 얼마든지 놓일 수 있습니다.

 

심신미약.
전문가의 진단을 받은 심신미약상태니까 감경을 해줘야 되는 사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심신미약상태를 겪습니다. 경중의 차이는 존재하겠지요.
결국 모두가 그 자신을 제어하고 다독이며 살아갑니다.

 

한순간 우발적으로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헤칠수야 있겠지요.
하지만 아무런 원한없이 다른 타인을 칼로 수차례 해하는 것은 쉽사리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부모죽인 원수정도여야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잔인하고 극악무도하게 타인을 살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건의 뉴스기사들을 접해보면 충분히 사과하고, 일처리를 하려고 했던 어린 학생이 그런 잔인한 죽음을 당한 이유는 그 무엇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사, 그런 이유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타인을 그렇게 살해할 그 어떤 정당한 이유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마음이 아프고 우울증을 겪고 심신미약에 시달리는 이가 한 둘이 아닐 것입니다. 그 모두가 잠재적 살인마입니까? 그 모두가 타인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칼로 쑤실 수 있는 무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까? 심신미약은 잔인한 살해의 근본적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법의 처벌망 속에 나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오히려 범죄자들에게 감형을 위한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주고 있을 뿐입니다.

 

얼마 전 세간을 떠들석하게 했던 이영학 사건에서도 심신미약에 대해 언급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23명에 대한 사형 집행 이후로 현재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기에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그들의 심신미약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습니까.
그들이 심신미약이 있기까지에 아무 죄없이 선량하게 살아가던 피해자들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가해자의 심신미약 때문에 왜 아무런 죄없는 피해자는 개죽음을 당해야 합니까?
그 심신미약이 피해자의 탓입니까?
심신미약을 겪는 모든 이들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고 살해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아픔과 상처를 왜 모든 사회가 이해해주고 감싸주어야 합니까?
그렇다면 피해자의 아픔과 잃어버린 생명은 누가 어루만져 주느냐 말입니다.

 

이전에 오원춘 사건때에 글을 적었을 때도 했던 말입니다만,
피해자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인권이 사라졌고,
살아있는 가해자는 인권이 남아있기 때문에 인권보장을 해줘야하는 것입니까?
한 사람의 인권과 생명을 짓밟은 처벌은 어디에서 누가 해주는 것입니까?

 

모든 사람이 술을 마셨다고 음주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불우한 가정환경을 거쳤다고 해서 연쇄살인마가 되지도 않습니다.
술을 마셨다고, 몸과 마음이 불안정하다고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그 개인이 아프고 힘든 것이 타인을 해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 타인에게 칼로 그만한 위해를 가했다는 것이 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심신미약상태로 인하여 타인에게 그렇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저 그 개인의 사정이자, 잔혹한 악함일 뿐 입니다.
사회가 그 개인의 잔학함에 대해 이해하고 인정해주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명의 존엄성에 견주어 빗대어 질 만한 그 개인의 사정과 정당성이 존재합니까?
그런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무엇도 이세상에 존재하는 고귀하고 존엄한 생명을 해할 가치와 명분을 가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대한민국에 현시점을 살아가는 국민중 30대 여성중에 한명일 뿐입니다.
제가 만약 결혼을 하게 되어도 자녀는 낳지 않을 것입니다.
자녀를 출산하게 된다면,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를 붙여 줄 것이고, 놀이터나 수학여행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아르바이트를 시키지도 않을 것이고, 밤 늦게 길거리를 다니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무엇으로도 내 자녀의 안위를 지켜줄 수 없는 것이 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어디서부터 근원하는지 알 수 없는 타인의 악의로부터
죄없고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자로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일을 얼마나 더 지켜보아야 할지.
그 말도 안되고 이해할 수도 없는 그들의 상황을 얼마나 더 이해해주어야 하는지.
그럴 수도 없고, 그리 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할 그 보호적 장치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가해자의 상황을 이해해주어야 하는 이 현시점에서
그 누가 자식을 낳아서 힘겹게 기르고 선량한 어른으로 키워낼 수 있겠습니까?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 가해자에게 인권이란 우스운 이야기일뿐입니다.
선량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고 생명을 소멸시킨 자에게 인권이라니 그저 우스울 뿐이지요.
그들에게 더이상의 인간의 취급, 존엄성을 존중해주어야 할 그 어떤 명분도 필요치 않을 뿐입니다.

 

조두순 사건으로 대두되었던 주취감형과  심신미약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알 수 없는 개인의 사정으로 인하여 제기되는 사회문제를 이해해주어야 할 필요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21살에 제대로 세상을 마주보지도 못한 어린 아이가 잔인하게 살해당해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것을 사회 구성원 중 누가, 상처를 치료해주고 보상해 줄 수 있단 말인가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입니다.
어린 생명의 희생으로써, 그것으로써, 우리는 또 사회를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다시는 죄없는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그 희생이 아무런 의미없는 개죽음이 되지 않도록 사회를 바꿔야 합니다.

 

담당의 선생님께서 적어주셨던 글을 오랫동안 여러번 읽어보았습니다.
그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은 이러한 일들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길을 가던 사람도, 밥을 먹던 사람도, 고객을 응대하던 그 어느누구라도.
특정하게 타인에게 원한을 갖게 하지 않은 선량한 사람이라도.
그 누구도 우리는 특정한 이유나 원한없이 발생하는 강력범죄로부터 안전할 수 없습니다.
어느 시대를 지나치더라도 미치광이는 존재하겠지만, 미치광이들로부터 우리의 삶을 보호받을 제도적인 안전장치 안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타인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범죄자들에게 그 어떤 사유도 감형이유가 될 수 없으며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의 악함에 대해 그 작은 무엇이라도 이해해주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발, 부디, 간절히 바라건대.
가해자의 인권보다 피해자의 인권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억울하게 생명을 빼앗긴 피해자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의 인권이 가장 우선시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죄를 지으면, 그에 응당하는 엄격한 형벌이 내려진다는 그 간단한 진리가 실행되는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살인에 대한 보상은 무엇으로도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없는데, 그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부디 가장 최소한의 보상, 타인의 생명을 앗아간 잔악무도한 범죄자들에게 그 어떤 사유로도 감형이라는, 작은 희망의 빛도 비춰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피해자가 부디 좋은 곳으로 떠났기를.
이 세상에 많은 미련과 원망을 품지 않고 좋은 곳으로 떠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부디 다음생에는 못다한 생을 원없이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저 안타까워하고 기도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이겠지만,
조금이라도 이 세상을 바꾸어나갈 노력이라도...
헛된 개죽음이 되지 않도록, 언젠가 또 발생할 다른 선량한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끈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더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 나갈 수 있도록 잊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얇팍한 지식에 근거해, 개인적인 사견을 적었습니다.

하루종일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이 아파 두서 없이 적은 글입니다.

반드시 심신미약 감형이 폐지되어 흉악범들에게 그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기를 기도합니다.

더불어 꼭 사형집행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추천수3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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