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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라는존재는 무엇일까요

김윤제 |2018.10.20 14:41
조회 109 |추천 0
네이트 판에 글을 작성하는것은 처음이네요.

글이 조금 깁니다. 풀고싶은데 누구한테 풀어야되나 답답한마음에 글한장 올립니다

- 가족관계로는 집나간양반 엄마 형 제가 있네요
제가 태어난 년도는 95년도입니다.

사건의 발달은 90년도쯤 엄마가 결혼준비를 할때였습니다.

아빠가 도박에 빠져살아 결혼준비를 빚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엄마는 이미 뱃속에 형이 있어서 만삭까지 뼈빠지게 일하면서 빚을 꾸역꾸역 갚았습니다.

실수한번은 누구나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형이 태어나고 아직 젖도안땟을때 또 나갓다고하네요. 이번에도 올때는 빈손이아닌 빚을지고왔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형이조금크고 제가 뱃속에 있을때에도 또 나갓답니다.
항상그랬듯이 빚을지고 집에 왔습니다.

엄마는 그런 삶에 지치고 힘들어서 술에의존하기 시작했구요.

가정형편이 좋은것도아니여서 항상 빚에 치여살고 엄마가 술마시면 그날은 집이 초토화되는날이고 , , 아빠는 또 나가고하는 날들로 유년생활을 지내다보니 남들이 말하는 흔한 가정환경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초등학교다닐때까지 동화책한권 제대로 읽어본적이 없습니다. 읽어보지 못했다는게 맞는거같네요. 일주일중 세네번은 싸우고 집어던지고 어렸을때라 부모님이 싸우면 형이랑 울고그랬던 기억만 남습니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내고 가정형편이 어려우니 내 생활비는 내가쓰자! 하고 생각한것이15살 때였습니다. 아는 지인분 이모가 치킨집을 하여서 한두달간 서빙을 했엇네요

내 생활비 내가 벌어서쓰자고 일을해도 집에서는 꾸준히 집을나가 빚을들고 돌아오는 아버지때문에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학생때부터인가 집에서 부모님이 거의 매일싸우니 감정조절이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때당시에는 스트레스를 푸는방법이 물건을 부수든 하는거밖에 없어서 막 이것저것 집어던지고 부시고 깨고 하여 병원에서 수술도받고 꼬매고 깁스하고 그러하였네요

(지금은 중학교때 정말 너무 좋은 친구를 만나 그러는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정말 너무좋은 bu랄 친구입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에 치이면서 집에서 치이면서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어찌저찌 시간이 지나고 우여곡절끝에 군대를 가게되었습니다.

훈련소 들어갈때 엄마아빠형이 왔엇는데 엄마가 울것같은표정으로 잘다녀오라해서 정말 너무 울고싶었지만 전역할때 울어야겟다고 다짐하여 꾹 참고있었습니다.

훈련소생활중 엄마에게 온 편지를보고 너무나도 엄마가 보고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렇게 훈련소를 수료하고 수료식날 가족을 봤을때는 너무기뻣는데 엄마가 이상할정도로 너무 말라져있었습니다.

조수석 뒷자리에는 엉덩이쿠션이 있고해서 무슨일있냐고 물어보니까 치질수술해서 힘들어서그렇다고 말하였습니다. 설마 큰일이겠어하고 수료식을 마치고 자대에 도착하였습니다.

자대에 도착하고 가장먼저한일은 선임이 전화한통 하고오라해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는일이였습니다.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그러시더라고요.
니네엄마 어떻게하냐고, , 3기인데 어떻게하냐고 , , '할머니 3기가 무슨말이에요' 니네엄마 직장암 3기 판정받았다 어떻게하냐 , ,

전화기 바로 끊고 엄마에게 전화했습니다

왜 안알려주었냐고 나는 아들아니냐고 왜 말안해주냐고 세상에서 그렇게 울어본적은 처음이엿습니다.

아들 훈련소에있을때 걱정할까봐 일부러 말안하고, 수료식이 수술직후였는데 수료식날 와준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아무것도 할수없다는 무력감에 엄마랑 수화기너머로 이십분가량은 울었던거같습니다.

그렇게 중대장에게 얘기하여 청원으로 외출을 나가 집에왔는데 너무나도 태연하게 삼겹살을 굽고있었습니다. 배에는 장루를 찬 상태로, , 엄마가 그때한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엄마는 엄마니까 괜찮아 걱정마 아들"

부대에 복귀하고 같은소대 분대장이 중대장에게 얘기를 들었던지 같이 노래방에가자고하여 노래방을갔습니다

가족사진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태연하게 삼겹살을 굽던 엄마모습이 계속생각나는건지 꾸역꾸역 울지못하고 눈물만 미친듯이 흘렷네요

그렇게 전역을 할때쯤 아빠는 또 나갓습니다.

엄마 암환자이고 아들들 성인돼었으니 도박은안하겟지하면서 걱정하였는데 그냥 외박하고온거라 정말 다행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해 12월이였습니다 작년일이네요
말년휴가때부터 이자카야에서 일을하고있엇는데 일끝나고 집에가니 엄마가 만취상태로 울고있더라고요

그씨ㅏㄹ새끼 어디있냐고 물어보니 또 나갓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술먹고 뭐라해서 또 나갓다오는줄알고 다음날 뭐라하려고 기다렸는데 안들어오더라고요?

엄마는 또 만취가돼고,, 상황이 너무지쳐서 물었습니다. 이럴꺼면 우리 왜낳은거냐고, 엄마도 힘들었는지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형은 직장인이라 회사에가있고 엄마랑 둘이서 펑펑울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지나도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않았습니다.
참다못해 경찰서를갓는데 차위치 추적하는? 그런게있더라고요

집에서 삼사십분거리 아파트에 차가있다고 확인이돼어서 며칠동안 가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다보니 왠 아줌마인지 할머니인지 도박하면서 바람피고있더라고요 죽여버릴뻔했습니다.

그새끼가 즐겨놀던 삼개월동안 우린 삼백년같은 시간이였는데 말이죠.

엄마가 이혼은 못하겟다고 말하더라고요. 억울해서 못하겟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란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내가 당신때문에 직장암판정받았고 아직 암환자인데 사람새끼맞냐고, 빚다갚을때까지 가족들한테 말걸지 말라했습니다.

엄마는 그러지말라고 그래도 아빠라고 말하더군요

마지막으로 용서해주자고하는데 진짜 화가나서 그냥 바람쐬러갓습니다.

그렇게 어떻게 넘어가서 빚을 갚아야되는데 그 바람난년 이름으로 고소장이 날아오더라고요.. 차용증으로 빌린돈 갚으라고요 그돈으로 둘이서 희희닥꺼리 했을텐데 왜 다갚아야되는지 어이가 없더라고요

변호사를 선임하기엔 비용이너무비싸고 해서 그냥 갚자고 얘기가 나왔습니다. 빌린사람이 갚아야되는데 무책임하게 저희한테 떠넘기려고해서 짜증나서말했습니다.

왜 당신이 사고친거를 무책임하게 우리에게넘기냐고 하니까
화를내더라고요? 알겠다고 왜이렇게 들들볶냐고 하는데
만약 그자리에 엄마가 없었고 형이 있엇으면 사람 죽을뻔했을겁니다.

그뒤로 집을나가 아직도 들어오지않았고,

며칠전에 일끝나고 집에왔는데 엄마는 누워있으면서 의식이없규 테이블위에있는 a4종이에 "사랑해 미안해 엄마 사랑해줘" 라는 단어들이 삐뚤빼둘 써있으면서 수면제가 흩어져있었습니다. 빈 소주한병과 같이.

119에 신고했습니다. 엄마가 자살시도를 한거같다고 빨리 와달라고

사고친시점부터 우울증이 있었는데 유년기때한번 손목긋는걸 본적이있었습니다. 성인이되서 이러한걸보니까 정말 사람이 미치겟더라고요 아무것도 들리지않고 보이지않고

한사람만 죽이고싶은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수납을하는데 자살시도한사람들은 보험이 적용안됀다고 얘기하면서 수납하였는데 138만원가량 나왔습니다.

갚아야될빚이 더생겼네요. 돈을떠나서 사람이 이래도 되나싶을정도로 생각이 듭니다.

그새끼는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고요, 집에들어오면 어떤일 일어날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저에게는 우리 가족에게 무슨존재인지모르겠습니다.

답답한마음을 담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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