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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중..

00 |2018.11.11 03:26
조회 2,072 |추천 4
십여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당시에 감사하게도 높은 연봉을 주며 돌아오라던 회사의 요청을 마다하고,쌓아왔던 직장의 내 자리를 마다하고.이것저것 안되던 남편. 변변한 직업이 없었던 남편.공무원 고위직을 정년퇴임한 시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자리를 잡고싶다하길래.그렇게 하라 했습니다.한국으로 돌아가자 했습니다.
급하게 남편면저 한국보내놓고, 홀로 살림 정리하니 10개월이 지났습니다.적은 생계비로 어렵사리 살다가.본인도 아버님이 주신 자리잡느라 어렵겠지.그래서 이렇게 연락도 못하고 힘들겠지 홀로 견뎌내다가.그렇게 아이둘을 데리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돌아왔더니, 남편은 집을 나갔습니다. 그나마 가끔 집을 찾은 남편은 핸드폰을 몇자리 특수문자를 넣은 비밀번호를 두고 주머니에 넣고 잠을 잤습니다.가끔 아이들을 만나고 일때문이라며 홀연히 떠났습니다.일때문이라고 했습니다.믿었고. 버텼습니다.낯선곳에 도착해. 남편이 없는 빈자리를 두고 혼자 그리고 오롯히 우리 셋이.가족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남편은 지방 출장이며, 세무조사며 마감에 바쁘다며 늘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
과거에도 몇번의 사업실패가 있었던 남편이었기에, 그때마다 책임을 회피하고 남탓으로 돌리고 신용불량자의 뒷처리를 해주시는 부모님이 있는 사람입니다.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내마음에 잔존해 있었습니다. 외국 살림 정리할 때 조차, 상의없이 투자비용으로 사용한 몇 억 메꾸느라 손에 남은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몰래 시어머니에게 빌린 투자금도 갚아드렸더군요. 그래놓곤 제 씀씀이가 헤펏다고 이간질해놓았습니다.
아직 젖을 찾는 둘째와 이제 한국에 막 도착한 우리는 오롯히 우리셋이 새로운 곳에 터를 잡아 나가야 했습니다.때때로 엄습하는 불안감과 우울감을 이겨내고 살아야 했습니다.밤엔 눈물로, 낮에는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가며 몇년을 지켜나갔습니다.
아빠가 바쁘다니, 늘 아빠가 없지만, 어딜가나 아빠엄마와 손잡고 놀고 먹고 하는 아이들보고도 아이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해야했습니다. 덜 먹였지만, 더 많이 데리고 다니고, 덜 사주었지만 더 많이 보여주고. 덜 입혔지만 더 다양하게 경험하게 해주고.더 많이 읽어주고, 아이게 맞는 좋아하는 일들을 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그 긴 시간들을 오롯히 우리 셋이 지나오고 있었습니다.
시시때때로 젖어드는 우울감과 불안감. 배신감을 이겨내야 했습니다.아이들을 밝게 해주기 위해 스스로 좋은 생각을 하려고 했고,밤마다 참 많이 울었던 그 만큼. 더 많이 노력 했던것 같습니다.
아빠가 없는 빈자리에 두 아이를 내내 매달고,
한편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와 젖먹이 아이를 키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자격증을 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그렇게 3년을 잘 이겨내었더니,

남편에게서 이혼소장이 보내져왔습니다.
남편은 내게 줄것이 아무것이 없으며, 이혼소장에는 경제,정신적 모든 잘못을 내게 있으므로,이혼을 요구했고. 아이는 내가 키우라고 했습니다.
1심은 기각되었습니다. 이혼의 귀책사유가 없는 제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주고,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에난 판결입니다.
이에 항소한 2심의 재판부는 이제 남편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 들어주었습니다.이미 깨어진 마당. 결혼은 무의미 하다는 판사의 이야기입니다.늘 밖으로 나가 돌던 남편의 외도는 증거가 없어 별거중 이중살림에도 속수무책입니다.그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어야 하고,이제 남편의 새 삶을 위해 우리의 자리를 비워달라고 합니다.
20대에 집나가 결혼을 한적이 있었다고, 그 여자가 이상한여자여서 멋대로 혼인신고를 했다며 상견례전날 돌싱남임을 고백했던 남자였습니다. 당황해 하는 나를 앞에두고, 내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어짜피 너도 몰랐을 것. 이라고 하던. 결국에 가족에게 말할 용기도 엄두도 나지 않아 덮어주었던 결혼이었습니다.
그랬던 남자가.이제 새 삶을 살아야 하니.전세비쥐어 줄테니(담보되지 않는) 양육비에새 일자리 찾아 벌어 보태어제가 아이둘을 키우라고 합니다.
전 남편의 많은 거짓말에 이력이 난 상태입니다.사소한 여러가지 거짓말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도 없고.대학부터 모든것들이 거짓이었습니다. 물론 주변사람들도 그에 대해 신용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는 오래된 변변한 친구들조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그러니 천만원을 준다 한들 양육비는 믿을 수가 있을까요.일단 내가 다시 경제적인 자리 잡을 때까지만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싫다합니다. 새여자와 아이들은 자기가 키우겠으니 저보고 그냥 나가달라고 합니다.
남편은 한국에돌아와 꾸린 벤처기업도 이젠 제법 자리를 잡은듯 보입니다.티비에도 나오고 뉴스에도 나오고 해외에도 진출한다고 SNS를 통해 소식이 들려옵니다.워낙에 그때그때의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라 사회에 나가서도 무리없이 좋은사람처럼 보이고 수완도 좋을 것입니다.
*******
아이들을 보내는건. 내몸의 장기를 마취없이 뜯어내 남편에게 나누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트라우마로 남겠지요.
그럼에도 그런 결정을 고민해야만 하는 것은.불안한 내 미래를 앞에두고, 두 아이들의 미래를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아빠의 무책임한 부재속에서 거의 십여년을 홀로키워냈지만,아이없는 그 기간동안 제정신으로 살아가기도 힘들겠지만,아이들이 아빠에게 보호받는 시간 동안, 맨손으로 다시 시작해서 경제적 자립을 해낼 생각을 하고있습니다.
당장 아무것도 없는 엄마보단.직업도 아직 없어 일정한 수입이 없고, 이제 사회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엄마밑에 있는 것 보단.
담보되지 않은 양육비로 불안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는.분명 아이들은 아빠가 더 보호받고 지원받고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재판에서는 그럼에도 아이들을 안고 양육비를 받아 키우라고 합니다.양육비 이행률이 30프로도 되지 않는상황에.이미 가정을 버린 사람의 말을 믿고,아이들을 전담하여 키우라고 합니다.
슬픔과 배신감은 남겨진 가족의 몫입니다.간통법도 폐지되어서 집을 나가도, 집을 나가 중혼을 해도. 몇번의 살림을 차려도.남편의 개인사고 그의 인생도 중요하니.이제 남은 인생은 셋이서 꿋꿋히 잘 살아가라고 재판부가 이야기 합니다.
뭐가 맞는 건지.제가 뭐가 틀린건지 혼란스럽습니다.
추천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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