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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생체실험 했던거 아시나요?

ㅇㅇ |2018.11.16 21:51
조회 158,789 |추천 1,028

최근 “출국”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는데 실화가 모티브입니다.
지금부터 실제로 있었던 오길남이란 북한 남성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남한에 살던 오길남이 마르크스사상에 빠져서
부인이랑 딸둘을 데리고 월북을 했습니다.
북한은 부인을 치료해주기로 약속했었는데, 부인은 병원에도 안 보내주고 계속되는 고문에 오길남은 자기가 속은걸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스파이 노릇하면서 다른 한국인까지 북으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부인이 절대 그러지말라고 당신만이라도 탈출하라고 해서, 오길남이 독일에 갔을때 망명 신청을 하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오길남은 탈북자들을 통해서 부인이랑 딸들이 요덕수용소에서 살아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남은 생을 가족을 돌려달라는 활동을 해 유명해집니다.(부인은 결국 병이 악화되어 사망했습니다.)

요덕수용소는 사진이 허용이 안되지만
탈북자들 증언으로 만든 그림이나 고문방식은 알려져있습니다.(밑에 링크 첨부)

“ 먹을것이 없어서 쥐랑 뱀을 잡아먹고
소똥에서 옥수수 골라먹는데 그것마저 들키면 토 할 때까지 배를 때리고 임신한여성은 씨를 말려야하는데 임신했다고 성기를 삽으로 찔러서 죽였다”

심지어 생체실험도 했습니다.
2015년에 북한 남자가 생체실험 자료가지고 유럽에 망명신청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02/0200000000AKR20150702198500014.HTML


아래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면 생체실험은 이미 중단되었고 북한이 그 증거도 없앴다고 나오는데,
다른 탈북자는 가스실 생체실험도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http://shindonga.donga.com/Library/3/01/13/109645/1

탈북 의사가 전하는 북한의 생체실험 기록

< 사람에게는 누구나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있지만, 어떤 이들의 기억은 다른 이들보다 끔찍하다. 1992년 탈북한 김소연씨에게는 1966년 늦여름 평양 인근 인민군 54사단 야전 군의소에서 겪었던 일이 그랬다. 마취도 없이 살아 있는 사람의 생체조직을 채취하고 주요 장기의 변화를 긴 시간 관찰했다는 평양의과대학 학부생 시절의 일. 한때 북한이 ‘노벨상을 받을 만한 위업’이라고 자랑했던 봉한학설을 입증하기 위해 감행된 일련의 생체실험은, 그러나 결국 연구 자체가 완전히 폐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든 ‘원죄’였다고 김씨는 증언하고 있다.
“가슴부터 배까지 개복을 한 뒤 외피를 펼쳐 실험대 위에 적절히 고정합니다. 갈비뼈도 일부 들어내고요. 그런 뒤 간을 절제해 현미경을 박아 넣었습니다. 장기가 마르지 않게 생리식염수에 호르몬을 희석시킨 가짜 체액을 계속 뿌려주었습니다. 전신마취를 하면 생리활동이 둔화되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국소마취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죠. 이름도, 신분도 알 수 없는 실험대상자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누워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일간 아무것도 먹이지 않고 장기 속 봉한관의 변화과정을 관찰해 시시각각 기록했습니다.”
가느다란 신음이 들려온 것은 실험시작 7일째 되는 날 오후 2시쯤이었다. 마스크를 쓴 연구진의 눈빛으로 복잡한 신호가 오갔지만, 이내 피곤한 나머지 들리는 환청일 것이라고 애써 딴청을 피웠다. 그러나 다음 순간 들려온 소리는 분명 “배고파요… 밥, 밥, 밥 먹고…”였다. 단순한 신음이 아닌 사람의 말이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가 만들어낸 그 한마디에 순간 하늘이 무너져내렸고, 그는 연구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침 들어오던 선배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생체실험을 진행하며 어느새 기계처럼 말라버린 감성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그날 그는 두 번 다시 메스를 잡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의 생체실험은 대략 300여 건에 달했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팔과 다리에서 조직을 떼어내는 경미한 수준이었지만, 세포재생에 관여하는 주요 장기나 난소·고환 등의 생식기, 뇌와 척추처럼 특수한 부위의 경우에는 직접 살아 있는 신체를 해부한 뒤 현미경을 꽂아 봉한관을 찾아내고 산알의 움직임을 추적해 기록하는 작업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마지막으로 참여한 작업이 서두에서 설명한 간에 대한 생체실험이었다고 김씨는 회고한다. 영양을 끊은 상태에서 더욱 명확해지는 봉한관과 산알의 움직임을 꾸준히 관찰해 시간대별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었다고 한다.

▼ 실험 대상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어떤 경로를 통해 실험대상이 된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요.
“실험은 평양에서 가까운 평남 강동군 승호리의 54사단에서 이뤄졌는데, 대상은 사단 군의소에서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공급해주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뭔지, 신분은 무엇이었는지, 왜 여기까지 끌려와서 실험의 대상이 됐는지는 물을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죠. 그런 걸 물을 분위기도 아니었고, 또 알게 되면 견딜 수 없으리라는 걸 암묵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막연히 중범죄자나 반역자일 거라고 추측한 정도죠. 처음에는 생체실험이라는 작업이 끔찍하게 느껴지지만, 수도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면 만성이 되는 게 인간의 특징이니까요.
특별관리대상으로 분류된 이 실험의 핵심 연구자는 김봉한 교수 본인을 비롯해 총 5명이었다고 김씨는 말한다. 현미경을 이용한 관찰 담당이 두 사람, 해부 집도를 맡은 사람이 세 사람이었다는 것. 실험자들은 ‘이건 일본 731부대가 저질렀다는 만행과는 다른 일이다, 살상을 위한 연구가 아니라 기초의학의 생물학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연구’라며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걸었다고 김씨는 기억하고 있다. 위법이라거나 인간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는 명시적인 인식도 거의 없었다는 것. 그러나 그렇듯 길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였고, 희미한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해 서로가 큰 소리로 연구의 성공을 다짐하고 격려하는 일이 잦았다는 회고다. >


https://www.youtube.com/watch?v=ckTegBFbs0I
북한 수용소 간부

https://www.youtube.com/watch?v=x-wfyjE1P-Q
북한의 고문방식

https://www.youtube.com/watch?v=Xyq_Ng1vAOg
요덕수용소에서 10년을 보낸 김영순씨 인터뷰

추천수1,028
반대수46
베플으앜|2018.11.17 09:23
어느 나라 대통령은 저런거 시키는 우두머리랑 친해지고 싶어서 알랑방구 엄청 뀐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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