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올렸던 외국인 친구가 한국에 와서 같이 놀아주는동안 본 영화 '킹아서'.
처음에는 그냥 영어공부 한다는 생각으로 별 생각없이 봤는데, 점점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하게 되면서 '아서'가 최근의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최근에는 영화를 볼 때마다 나 자신을 주인공에게 보다 깊이 투영해서 보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여튼, '아서'는 사창가에서 자라난 청년으로, 길거리에서 싸움을 익혔고, 거의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상태에서 왕이 되려고 하는 인물이다.
이 점에서 뭔가 맨주먹으로 성공을 꿈꾸는 나 자신과 아서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진짜 감명깊게 봤던 것은 그런 아서가 한계를 극복해내는 과정이였다.
'아서'에게는 왕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강력한 검인 '엑스칼리버'가 있는데, 검을 잡을 때마다 어렸을 적 자신의 아버지가 비참하게 살해되던 장면이 눈앞에 떠올라 고통에 시달리고, 제대로 무술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힌다.
'아서'는 검을 집을때마다 생겨나는 고통이 너무나도 심해서 번번히 왕이 되는 것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력자인 여자 마법사가 나타나 '아서'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서'는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왕이란, 고통을 회피하고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이 아닌, 그 모든 어려움들과 마주하고 그것을 지배해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관상가로부터 나는 완벽한 관상을 지니고 있으며, 최고의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즉, 과거에 태어났으면 충분히 왕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라는 얘기인데, 그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또한 '아서'와 같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들과 어떻게든 맞서 싸울 수 있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현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시간이였다.
오늘도 쏟아지는 일들과 빗발치는 연락들, 그리고 나 자신의 목표와 본능적인 나약함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고 '적당히'라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어차피 내가 어떤 생각을 하든, 매일마다 직면하는 어려움과 각종 유혹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그것들은 '힘들다'고 생각되기보다는, 내가 지배해야할 대상이자 나 자신의 운명이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왕이 될 사람이다.
이것은 허영심 가득한 개소리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정하는 능동적인 목표이다.
단지 영화와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스스로 '아서'도 되어야 하며, '마법사'도 되어야 하고, 충성스러운 '베디비어'의 역할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걸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왕관을 쓰기 위해서는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흔들리는 나 자신을 바로잡으며 목표를 향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뎌 본다.
출처 : 행복한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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