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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님과 자란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옥중서간 |2019.01.16 21:25
조회 74 |추천 0
저는 지금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가정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괴로움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 처음으로 제 얘기를 꺼내봅니다.
부디 들어주시고 조언 부탁드립니다.
몇달 째 자해를 하며 자살 계획을 세우는 저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며 적어봤습니다.




저는 9살까지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10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이 계신 도시로 이사왔습니다.
조부모님과 지내던 환경은 자연 그 자체였어요.
시골이었거든요.
배가 고픈 때가 있긴 했던 거 같은데 행복했습니다.
조부모님은 밭일을 하셨고
할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셨습니다.


유치원생 때까지는 상할아버지와 이모도 함께 계셨습니다.
상할아버지의 구박은 심했습니다.
제가 여자이고 가문이 다르다는 이유로 눈에만 띄면
구박을 하셨고 저는 저를 지켜주는 이 하나없이
그 구박을 다 들어야 했습니다. 
정말 서러웠습니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대로
상할아버지께 예쁨받을 행동을 했습니다.
처음엔 반응도 없었지만
매일같이 그 작은 손으로 칼질을 해 과일을 갖다주고
요구르트도 가져다주는 제 모습에
조금씩 다정해지시다가 끝엔 저를 정말 예뻐하셨습니다.

상할아버지께서 노인정에 가시면 꼭 제 먹을 것을
챙겨다주시고 저에게 마음을 표현해주셨던 걸
생각하니 감사해서 눈물이 나네요.

상할아버지 외에도 조부모님,
명절 때 오는 외가 가족들 중 어른들은
알게 모르게 사촌동생들과 저를 차별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차별을 다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하도 마음고생을 하다보니
눈치만큼은 대단했으니까요.
아직도 기억 나는 차별 중 하나, 작은 할아버지께서
저와 한 살 차이나는 사촌동생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 아이한테는 선물을 여러 개나 주고
저는 주지 않았던 게 생각나네요.

하지만 그 아이와 작은 할아버지와 함께
식당에 갈 때마다 음식을 먹으며 할아버지가 사주셔서 더 맛있는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라는 둥
생글생글 웃으면서 표현했고 음식의 양이 많더라도
억지로 다 먹으려 노력했습니다.

그 아이는 퉁명스럽게 행동했고 깨작거렸고요.
그땐 예쁨받고 싶은 것보다 어린마음에
할아버지께서 저 아이의 행동을 보고 상처받으시면
어쩌지하는 걱정스런 맘에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저만 할아버지와 등산도 같이 갔습니다.
이런 게 반복되자 나중에 가서는 작은할아버지께서
저를 많이 보고싶어하셨고
전화, 카톡에 시간을 내어 3~4 시간 걸리는 거리를
차를 타고 와 저를 보러오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작은할아버지를 봤을 땐  보고싶었다고 안겨서 우는 사이까지 발전했습니다.


상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모는 다른 지역으로 가고
조부모님과의 생활이 시작되고 나서 할머니께서는
자살시도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
조부모님의 부부싸움도 봤구요.


여러 번의 자살시도에서 농약을 마시려고 하셨고 마당에선 옷가지들을 불살랐습니다. 하루는 저도 약을 먹이고 죽이려 하셨죠. 아직 기억납니다.
저는 그때 울면서 고분고분 약을 먹으려 했어요.


어머니께서 죽으려고 하시는 모습을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봤죠. 저에겐 세상의 전부니까요.
조부모님께서 아프실 때 저는 마음이 찢어졌고 자살시도를 하실 때는 세상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유대가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 애착이 생기던
어린시절을 조부모님과 함께 지냈던만큼
저는 조부모님으로부터 화목한 가정의 아이들이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과 정서를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조부모님은 저에게 부모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밭일 때문에
새벽에 나가 저녁이 되어야 집어 들어오고
고추를 말릴 때면 기계가동을 밤에 하셨는데
그 무서운 밤을 홀로 상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큰 집에서 버텨야 했습니다.
많이 울었어요.
전화도 안 받고 밖은 어두컴컴하고 공포 그 자체였죠.


아무래도 함께 지내던 시간이 적었으니
조부모님께는 죄스러운 말이지만
그때 제게 필요했던만큼에는 사랑과 애정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다 커가는 지금도 제 마음이
항상 허한 것을 보면 그렇네요.


아버지 말씀으로는 원래 12살이 되면 저를 데려와
함께 지내려했는데 어느 날, 30분거리인 조부모님댁에 저를 보러 잠시 들렸을 때
끼니를 제때 못 먹어서 계속 굶주리고 지내는
저를 보곤 얼른 데려와서 같이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으셨답니다.


부모님과 살던 첫 집에서 일 년정도 함께 지냈는데
같이 지내는 동안 부모님이 알코올중독자라는 걸 알게 되었고 매일 식당일이 끝나면 밤마다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오시는 어머니에게
술에 취한 채 화를 내고 가끔은 손찌검까지 하시는
아버지를 잠결에 본 게
제 공포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때 꽤 지낼만 했습니다.
그저 갑작스레 할머니를 떠나게 되어
할머니께서 또 자살시도는 하지 않으실까
많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때 이미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투병 중이셔서
할머니께서 혼자 사시는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할머니 걱정에 미칠 거 같았습니다.
제 부모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가뜩이나 외로워하는데 저까지 떠나버리면
할머니는 어떡합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상가상으로 암투병 중이셨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새벽에 소식을 듣고 울면서 옷을 입고 울면서
차를 타고 병원에 갔습니다.
...제 아버지가 돌아가신거죠.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입니다.
믿기지 않았고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만 나네요.
화장을 한 후 할아버지의 뼈를 봤습니다.
아, 정말 끝이구나 이게 할아버지구나했죠.


아직도 투병 중이시던 할아버지,
비교적 건강하셨던 할아버지,
돌아가시던 마지막 모습의 할아버지 모두 생생합니다.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많은 혼잣말을 하며
울면서 지냈습니다.
매일같이 죄책감과 슬픔에
할머니 잘 지켜줘 미안해 할아버지만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4학년이 되던 해에 이사를 갔습니다.
지하였고 집에 곰팡이가 많았습니다.
벽을 뒤덮을 정도였죠.
이제와서 곰팡이가 원인인 줄 알지만
호흡기가 약했던 저는 그때 당시
호흡곤란이 심했습니다.

아버지께 숨쉬기가 힘들다다고
아무 원인도 모른 채 말해봤지만
병원에 데려가기는 커녕 혼만 났습니다.


그 집에서는 거실에 밥상이 있었고
그 밥상에서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주로 지식에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정말 그때까진 괜찮고 좋았습니다.


몇 번 할머니께서 그 집에 주무시고 간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께선 정말 싫어하시더군요.
그것마저 저에겐 아직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께서
저를 혼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가 없고 힘든 일을 하시던
아버지의 신세한탄과 화풀이였던 거 같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화풀이를 매일같이 들어줘야 했고
그 시간은 평균 2시간이 훌쩍 넘어가
어머니께서 퇴근하기 직전인 밤 10시까지 늘어났죠.


그 즈음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교우관계도 정말 힘들 때였습니다.
못된 아이의 시기심에 왕따를 당했거든요.


아버지와 밥 먹는 시간이 너무 괴로웠고
저는 점점 겉과 속이 다른 아이로 변해갔습니다.
부모님은 아직도 그때 제가 왕따를
당했는지 모르실겁니다.




너무 긴 것 같아 다음에 나머지 얘기를 올릴 생각입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하고
제 생명의 은인이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가내 두루 평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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