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36살 이고, 여러분들이 이야기 하시는 개독(기독교인) 입니다.
처음부터 기독교인은 아니었지요.. 저는20대때 안티기독교에서 활동할만큼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참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가 3살때 이혼을 해서
저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손에서 누나와 함께 자랐어요.
어머니는 정말 힘든일을 하시면서 저와 누나를 키우셨습니다. 그래도 기죽지 않게 하려고
하고싶은것도 어느정도 하게 해주시면서 키워주셨어요. 저는 어릴적에 아이큐가 150이 넘어서
학교에서 영재교육을 받으라고 했었는데 가정형편이 좋지않아서 그냥 어머니께 그 사실을
숨겼습니다. 빨리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싶었기 때문에 저는 경희대학교에 합격했으나
전액 지원 장학금을 받은 1학년만 다니고 자퇴를 했습니다. 그 후 운이좋게도 포스코 제1협력 업체에 입사하여서 정밀코일 만드는 기술을 배웠어요. 어린나이에 꽤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8년간
일하면서 집 전세금도 마련하고 현금으로 5천만원 정도 통장에 가지게 되엇어요.
그런데 그 행복이 오래가지는 않더군요. 어머니가 60도 안되셨는데 자궁암과 악성림프종으로
큰 수술을 두번이나 받게 되셨습니다. 보험 같은것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제가 모아둔 돈으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해야만 했죠..
그 시기에 또 저는 길가던 취객 6명에게 이유없이 폭행을 당하여
턱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잇몸을 철사로 묶고 수술을 받았으며 3개월을 먹지도
못하고 수액과 미음 단백질을 섭취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저는 원래 직장에서
나올수밖에 없었습니다. 라인을 잡아야하는 직업 특성상 장기결근은 곧 퇴사였기 때문이죠..
그 후 저는 스틸 파이프 만드는곳에 다시 취직을 합니다. 취직하고 얼마 안되서 어머니는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고 또 수술을 하시게 됩니다. 참.. 기구한 운명이죠..
그리고 저는 또 그 시기에 공사중인 건물 에서 여자분의 비명을 듣고 도우려고 하다가 여성을 성폭행하려던 남자 3명에게 폭행을 당하고 배에 칼을 맞아서 또 수술을 하게 되죠.. 다행인것은 칼이 장 을 통과하지 않고 지방층 깊숙히 찔려서 목숨을 건졌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상처가 크게 남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다 듯이 있어서 생긴 일 같습니다)
여러번의 고난으로 어머니와 저는 모아둔돈도 다 쓰고 전세집도 빼서 더 싼 집으로 옮기는
상황이 되었어요. 시집간 누나는 더이상 돈을 마음대로 쓸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어머니와 저는 경기도의 작은 변두리 빌라를 전세얻어서 그냥
요양한다 생각하고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머니는 디스크 수술 이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집에만 계시니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늘 일을 하시던 분이라.. 이사온 우리집 옆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 상태여서 교회에 한번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집 옆에 있는 교회를 가게 되었지요. 그 교회의 목사님은 정말 목사님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봐도 훌륭하신분 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교회에 대한 편견을 다 날려주셨지요.
교회에서 받는 사례금은 거의다 지역의 빈민 구제에 사용하시고 3남매를 키우는 양육비는 사모님과함께 과수원을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생활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늘 동네분들에게 친절하셨고 도옴이 필요할때는 다 도와주시는 그런 분이셨죠. 저와 어머니도 차츰 마음을 열고 교회에서
여러가지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평화롭게 믿음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제가 기계에 돈이 들어가서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병원에 또 입원을 하게 되었죠. 간단한것 같지만 손가락 접합수술이란데 그리 간간하지 않더라구요. 신경이 살아나지 않아서 여러번 재수술을 받고.. 피부를 이식하고.. 참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저는 하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저는 왜 계속 이런일만 생기나요? 그러니 그날 꿈에 제가 우리 교회의 목사님 처럼 좋은 목사님이 되어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목사님께 하니 그것을 소명 이라고 한다더군요.
저도 그 길을 가야 하는 일종의 계시 같은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30대의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고난으로 모아둔 돈도 한푼 없었지만 손가락을 잃고 받은 산재 보상금으로 등록금도 내고 기숙사비도 해결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머리는 좋은편이라서 그런지 몇년째 성적장학금을 받아서 수업료는 전혀 내지 않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교회에서 주말에 파트타임으로 전도사 사역을 같이 하면서 약간의 사례금을 받는데 그 돈으로는 지역에서 부모님 없이 경제능력이 없는 조부모님 밑에서 크는 아이들의 식비와 생활비를 후원합니다. 밥을 하루 에 한끼 먹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지 신학교에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학교식당에서 3000원짜리 밥을 늘 먹고 외식은 꿈도 못꾸고 옷도 거의 여러 교회에서 지원해주는 옷을 얻어입는 실정이지만 지금이 가장 행복한것 같습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의 위선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사는게 꿈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어도 몸이 아프고 안좋은일이 몇번 생기니 전혀 돈을 모을수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지금은 크게 수입이 없어도 신학교다니면서 어떻게 어떻게 살아나가면서 다른사람도 돕고 좋은일들을 직장생활 할때보다 더 많이 하면서 사는 제 모습을 보니 참 신기합니다. 제가 이렇게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된것은 소명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만난 목사님의 영향도 매우 큽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를 개독 이라고 부릅니다. 저도 그랬었지요. 네 정말로 욕 먹어야하고 벌을 받아야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목회자들 정말 많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말할것도 없구요. 그런데 정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음지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좋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이 늦은 나이에 이러고 있는거겠지요~^^ 저는 손가락 장애가 있어서 기타도 치지 못하고 턱뼈수술 이후에 턱에 철심을 박고 살고있기 때문에 발음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장애 투성이의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여 주시니 갑사합니다.
지금에서야 느낍니다. 아 행복의 기준이 돈이 아니라고 얘기하시던 분들의 마음을 이제는 많이
느낍니다.
점점 개인주의가 세상을 점령하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마인드가 세상을 지배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느끼기에 아직은 살만 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먼저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와 닮은 인생을 살아낼때 다시금 기독교가 존경받는 그 날이 올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으시는 분들도 세상에는 이런 좋은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아서 참 기족교인의 한 사람
으로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더 열심히 더 낮은 자세로 세상을 섬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는 꼭 제가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 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목사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믿음이 있는 기독교인들을 통해서 알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날이 꼭 올거라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