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5년 만난 연인을 두었던 20대 후반입니다.
정말, 네이트 판 혹은 페이스북 페이지 들에서나 보았던 일이 저한테 실제로 벌어지니, 이 곳에라도 익명의 힘을 빌려 털어놓고 싶어요...
요점만 말하자면, 남자친구 핸드폰에서 랜덤채팅 어플을 발견했고, 대화내용을 확인했습니다. 평소에 서로 폰을 그다지 터치하지는 않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말이 맞나봅니다... 대화내용을 본 이상 이 사람과는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만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이러한 상황을 겪고도 사랑이 남아있는 제가 미련스럽지만, 겨우겨우 끊어내고 있습니다.
제가 이 사람을 너무 많이 믿고 의지했다는 게, 헤어질 때가 되니 이렇게 저를 힘들게 만들 줄 몰랐네요... 남자친구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저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성격과 가치관을 알았다고 생각했고, 남자친구의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가치관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어요.
근데 그런 남자에게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제가 아는 남자친구라면, 랜덤채팅 어플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본인의 가치관과 신념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었을테니까요. 누구보다도 넓고 따뜻한 마음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이 멋졌던 사람이었는데...
5년 동안의 시간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입니다. 항상 든든하게 아무도 모르는 제 마음을 안아주던 저의 가장 큰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구요. 그 무너진 것에 깔려 숨조차 쉬기 힘드네요. 제가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아니 제가 멍청했던 걸까요 제 안목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던 걸까요. 아니면 그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걸까요. 제가 그 잘못을 절대 용서하면 안 된다는 것도, 용서하면 결국 다시 또 불행해 질 거라는 것도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은 왜 미련을 못 버리는 걸까요...
가끔 판을 보면 이십대 후반에 연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정말 더 나를 아껴주는 좋은 사람을 만났더라는 글들을 본적이 있어요. 정말 그게 가능한 건지, 이렇게까지 가장 믿었던 다른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오로지 그 내면을 믿었던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모든 신뢰를 잃었는데 어차피 이 세상 사람들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요. 제가 앞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믿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한 순간에 오년을 만났던 사람을 옆에서 떼어내려니 매 시간이 지옥같아요. 저 이 사람과 헤어지는게 너무 당연하고 맞다는 거 잘 알아요. 근데 너무너무 정말 매 분 매 초가 죽을 거 같이 힘들어요. 그래서 문득, 그냥 다시 한 번 이 사람을 믿어보면 안 될까 하는 바보 천치같은 생각도 들어요.
제가 사랑했던 사람도, 그 사람을 믿었던 저도, 우리가 꿈꿨던 미래도 모두 한 순간에 유령이 되었어요. 시간이 약이라지만 정말 그럴까요? 이 사람은 잊혀져도 제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느 누구에게도 왜 헤어졌는지를 차마 말할 수 없는 저의 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