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엄마랑 연을 끊으려 합니다

|2019.04.15 04:24
조회 14,060 |추천 83
길고 재미없는 글이 될 거 같네요. 어딘가 하소연을 하고싶어서요.

저는 해외거주 중인 30대 중반 여자입니다. 제목처럼 엄마와 연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제가 고 1 때 이혼 하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 태어나 4살 차이가 나는 오빠가 있습니다. 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편애가 심한 엄마 밑에서 자랐는데요, 집에 돈이 있다보니 먹는 거 입는거 같은걸로 차별 받은 적은 없었어요. 학원이나 과외도 다 시켜주셨구요.

오빠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한다고 기숙학원 들어가기 전 까지 거의 맨날 맞고 자랐어요. 4살 차이가 나다 보니 전 반격도 못하고 진짜 맞기만 했습니다. 어릴 땐 엄마한테 가서 오빠가 이유없이 때린다, 내 물건 다 뒤진다, 괴롭힌다 말했었는데 그럴 때 마다 항상 이유없이 왜 때리겠냐며 너가 잘못을 했겠지, 엄마 바쁜데 귀찮게 하지말고 오빠 말 좀 잘 들어라 하셔서 어느 순간 부터 포기하고 맞았습니다. 아빠는 이혼 전에도 집에 오시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셔서 집에서 뭔 일이 나던 관심이 없으셨을거 같네요. 그리고 엄마는 제가 무슨 말을 할 때 마다 너는 말을 참 재미없게 하는 재주가 있다고 사회생활 나중에 어떻게 할래? 이가 친구는 있냐?는 식으로 제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발언을 수시로 하셨습니다.

그렇게 바쁘신 분이 오빠랑 같은 반 친구 친하든 안 친하든 이름을 다 아셨고, 어머니회에도 열성적으로 참석하셨지만, 저랑 초중고 다 같이 나온 제일 친한 친구 이름은 기억하지 못할 뿐더러, 초등학교 졸업식 이 후로 아무런 행사에 오시지 않으셨죠. 입학식, 졸업식 때 마다 꽃 들고 부모님이랑 사진 찍는 애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제가 친 딸이 아닐거라고 생각한 적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봐도 엄마랑 저랑 좀 심하게 닮아서 도대체 이유가 뭘까, 왜 오빠는 저렇게 사랑하면서 나랑은 말도 섞기 싫어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본인이 스스로를 싫어하셔서 본인이랑 꼭 닮음 제가 싫었던 거 같네요.

오빠에게 맞을때는 억울은 했어도 참을 수 있었는데 엄마가 말로써 상처를 주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어요. 저는 점점 더 조용한 아이가 되었고 음침해졌고, 친구도 점점 없어지고,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며 공부에만 집중했습니다. 수능은 평소대로 봐서 문과 전교 11등 이였고, 그 당시엔 수시가 약간 시작 단계라 대부분 정시로 대학을 갔었고, 서울 상위권 대학에 원서를 넣었는데 3개다 추가 번호 받고 떨어졌습니다.

자만감이였는지 솔직히 3개 다 붙을 줄 알았는데 충격이 컸습니다. 2월 말까지 추가합격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어요. 오빠는 공부 못했고 지방대 3개 썼다가 하나 불었었는데 자기는 서울 가고 싶다며 재수시켜 달라고 할 때 엄마가 ‘우리 아들이 이제 정신을 차려서 공부를 하려는구나’, 하시며 한 달에 이백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기숙학원을 보냈었는데 성적이 더 떨어져서 이름 한번 못 들어본 대학에 겨우 들어갔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한테 근처 광역시에 있는 수학 단과 학원만 보내 달라고 하니 안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니가 공부를 제대로 안해서 떨어진 건데 운을 탓하지 말라며, 한 번 떨어진 거 담에는 또 안 떨어질 거 같냐고, 그리고 이제 성인이니까 너 밥 값은 알아서 하라고. 그 말 듣고 이 주는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밥도 거의 안 먹고 있는데 볼 때 마다 비아냥 대시더라구요. 밥은 넘어가냐, 백수 꼴 보기 싫다, 천지에 쓸 데가 없다 이런 식으로요. 그 때 이 집을 나가야 내가 산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 1 이 후로 뵌 적이 없는 아빠를 찾아가서 돈 좀 달라고 빌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실 때 모든 재산을 엄마가 가지시는 대신 아빠는 양육권을 보내지 않는 걸로 합의를 보셨었어요.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으셔서 재혼을 하셨습니다. 아빠가 이야기를 들으시고 참 황당해 하시더라고요. 그리곤 전적으로 도와주고 싶지만 새 가정도 있으시니까 한달에 50만원 씩 보내 줄테니 고시원 같은 곳에 살면서 알바 해가며 공부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감사하다 하고 그 날로 짐 싸서 엄마한테 이 세상 욕을 다 먹으며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평생 등 따시게 살다가 눈곱만한 고시원에서 공동 화장실 샤워실 쓰면서 눈물은 나는데 더 이상 날 멸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실감이 나면서 후련했어요. 다행히 카페 알바를 빨리 구해서 낮에는 알바 가고 저녁에 일주일에 세번 수학 단과학원 다니다가 7월에 갑자기 아빠가 돈을 안 보내 주시더라고요. 전화를 며칠 안 받으시다가 문자로 미안하다고 새부인이 돈을 보내는 걸 알게 되었다고, 이제부터 엄마한테 받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엄마한테 이제 시간이 좀 지났으니 혹시나 하고 전화를 해보니 역시나 였어요. 모아둔 돈으로 9월 까진 근근이 살 수 있을것 같긴 했는데 불안해져서 주말 편의점 알바를 구했습니다. 그리곤 수능 전날까지 알바를 하다 봤는데 망했었어요. 공부 할 시간이 별로 없었으니. 그래도 수리는 1등급이 나 온 걸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단과학원비 값은 한거 같아서요. 원서를 쓰려고 보니 고 3때 썼던 것들은 쳐다도 못 보겠더라구요. 나한텐 공부밖에 없었었는데 참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어쩌다 대학등록금도 내가 벌어야 할테고 별로인 대학에 갈 바에 그냥 쓰지 말까? 하고 몇 날 며칠을 고민을 하던 중에 엄마가 오빠 제대 기념으로 차를 사 준걸 알게 되었습니다. 외제차를요.

그 때의 분노는 정말.. 알바 중에도 눈물이 계속 나더라고요. 점장님이 따로 불러서 주의를 줬는데도 정말 제어를 할 수 가 없었어요. 그때 한 9개월 정도 일 했어서 다행히 잘리지는 않았어요. 위 에 깜빡하고 안 적었는데 재수하는 내내 엄마가 이틀에 한 번씩 전화 하셨습니다. 어떨 때는 일 얘기, 어떨 때는 제 욕, 아빠 욕, 또 제 욕. 오빠 차 얘기도 엄마가 참 해 맑게 얘기 하시더라고요. 오빠가 참 보는 눈이 높아서 독일 차만 차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그 당시 돈 때문에 속이 문드러졌는데. 아무튼 그 때 집만 떠난다고 벗어날 수 있는데 아니구나, 한국을 아예 떠야겠다고 마음먹고 일년 동안 알바 미친 듯이 해서 돈 모아서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왔어요.

여기 오고 나서 부터는 운이 정말 좋았어요. 첨에 카페에서 일하다가 매일 오는 손님이 어디가도 일 잘하겠다고 회사 리셉션에서 일하다가 회사에서 비자 제공해줘서 몇년 일 하다가 영주권 따고, 또 시민권 따고, 대학가서 공부하고, 정말 착한 남편 만나고, 시댁 식구들이 저 가족이 여기 없다고 정말 잘해주시고, 생일이면 시할머니까지 전화 주시고, 시누이들이랑은 완전 친한 친구같고,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가족애를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엄마한테는 생사확인 차 삼개월에 한 번씩 전화드리구요.

제가 결혼 준비 할 때 결혼식 날짜 잡는 것 때문에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자기는 8월 말곤 휴가 못 낸다 하셔서 좋은 날씨는 포기하고 맞춰서 날짜를 잡았는데 결혼식 일주일 전에 못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해 봄에 오빠 부인이 둘째를 낳았는데 산후조리 도와준다고 한 달 휴가쓰셨다데요? 왜 빨리 얘기 안 해줬내고 물으니까 깜빡하셨답니다. 서운할 게 남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하긴 결혼 당시 제가 여기에 온지 10년이 되었었는데 그 동안 여름마다 유럽이다 동남아다 이 곳 저 곳 놀러다니시면서 단 한번도 빈 말이라도 보러오시겠다고 하신적이 없으셨지요. 뭘 바랬었던지.

결혼식 이 후 정말 마음을 백프로 비웠고 지난 몇 년 꽤 평화롭게 지냈어요. 그러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어제 어쩐 일인지 전화를 하셔서 제가 어떻게 사는 지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라고요. 왜 그러냐니까 가족이 시민권자면 이민이 쉽다고 하시더라구요? 이게 뭔 소린가 해서 뭔 말이냐니까 본인이 정년퇴직을 하면 (환갑이 넘으셨는데 출생신고가 꽤 늦게되셔서 아직 이년이 남으셨다 하십니다) 여기에 와서 집 짓고 여유롭게 같이 살고 싶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영어도 하나도 못 하시는 분이 환갑이 넘으셔서 편한 자기 나라 놔두고 굳이 여기에 오는 이유가 뭐냐니깐 손주들 키우는거 도와주고 싶데요. 전 자식이 없는데. 본인이 이민을 안 오신다쳐도 오빠가 어차피 조카들을 (첫 째가 이제 초등학생) 보내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제가 힘들테니깐 아주 넓은 아량으로 본인을 희생해가며 이민까지 해서 ‘저’를 도와주실거래요. 정말 욕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제가 계속 부정적인 대답을 하니 외국에 오래 살아서 제가 한국 정서를 잊었다네요? 키워준 은혜를 잊고 배은망덕하다고 욕을 한 십분 정도 먹었어요. 그래서 이제 다시는 연락할 일 없을 거라 하고 전화 끊고 곧 번호 변경할 계획입니다.

후련 찝집 합니다. 혹시 부모님과 연을 끊고 나중에 후회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후회는 안 할 거 같은데 나중에 돌아가시면 죄책감이 크지 않을까 싶고... 아무튼 어딘가 하소연 하고파서 글 남겨봅니다. 스마트폰이라 오타가 상당할듯. 철자 자동고침이 이렇게 짜증나는 기능인지를 한글로 글을 써보고 알았네요.
추천수83
반대수8
베플허걱|2019.04.16 08:44
엄마한테 독한소리 못하고 그냥 징징징
베플ㅇㅇ|2019.04.16 09:04
저와중에 3개월에 한번씩 생사확인 전화했다는 말 듣고 말문이 막힘 ㅋㅋ 쓴이는 좀 더 당해야했음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