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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남, 중간에서 넋두리

띠띠 |2019.04.21 23:24
조회 198 |추천 2

결국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고 마는구나.

 

 무심한 네 핸드폰 속에 있던 관계동영상, 전여자친구의 사진들, 만나던 안마방 여자의 나체 사진들.

그때 바로 끝내는 게 맞았지. 그런데 내 생각은 달랐어.

이미 다 해봤고, 다 겪어봤고, 수많은 안마방이나 원나잇이나 모두 다녀봤기 때문에 이젠 그런 떠있는 관계들에 공허함을 느꼈을 거라 생각했어.

 

너는 달콤한 말을하지도, 가식적인 행동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인걸 알아서, 그랬기에 나한테 했던 그 말들과 행동이 소중한 진심일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진심이었겠지.

 

너무나 어릴 때부터 혼자였어서, 냉대하는 외할머니 댁에서 그저 숨 넘어가기 직전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달라고 하지도, 외로움이라는 정의를 배우기 전에 그 모든 걸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너라, 자의에 상관없이 네가 얼마나 외로움을 그대로 맞아야만 했고 그게 또 얼마나 당연해진 사람인지.

그게 너무나 안쓰러웠다. 큰일, 고민이 있어도, 컨디션이 안 좋고 기분이 안 좋을때도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보다 혼자서 견뎌내는 너를 보고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 서운하면서도 그 모습이 마냥 안쓰러웠다.

 

왜 기대지 않지? 사랑해주는 건 분명한데 왜 곁을 내주지 않지? 왜 혼자 있으려고 거짓말을 하지? 라는 모든 물음을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어.

아, 너무나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게 너무 익숙한 사람이라,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곁에 있는 게 더 불편하다고 하는구나. 제대로된 가족과의 관계형성이나 연인간의 교감이라는 걸 배우지 못한 건가.

 

7살이나 더 어리면서도 나는 감히 그걸 가르쳐 주고 싶었다. 너는 네 말대로 삶에 의욕이 없어보였고, 정말 모든 걸 겪어왔고, 그 과정에 철저히 혼자였기에 그런 성향을, 성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 너무나 개인주의적인 연락방식에, 혼자 있고 싶어서 거짓말까지 하는 행동에, 육체적인 욕구를 정기적으로 풀기 위해 다녔던 단골 안마방,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막는다는 그 모든 가치관 아래 행해진 수많았던 원나잇들 심지어 내가 아는 언니들로. 그러나 이제 나를 만나 정착했고 피곤하거나 복잡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그 말들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렸했다.

 

모든 것들을 눈 감아 줄 수 있었어. 정말 그건 과거였고, 날 만날 때 그러지 않았으면 된 거였으니까.

 

 

 

그런데 너는 몰랐겠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까만 TV화면에 흐릿하게 보였었다. 어쩜 각도가 딱, 누워있는 너는 안 보이고 위에 있던 나만 보였는지. 그리고 내 뒤에서 날 찍는 그 모습을 본 순간 난 멈췄지.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너의 여태껏 보여준 행태들을 보며 나는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사실 마음의 준비는 이미 예전부터 하고 있었어. 너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날 너무 외롭게해서, 내가 너무 공허해져서 언젠간 헤어질 사람이라 생각하고 만났어 사실. 남자친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덜 외로워서 그렇게 생각하고 만났어.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게 내가 너무 좋은 너랑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또 웃긴게, 그런 마음으로 만나다보니 그것도 나쁘진 않더라. 너는 한결같은데, 내가 너에게 바라고 요구하는 게 없어지니 우리 관계가 오히려 평화로워지더라. 100을 바라고 10을 받는 게 아니라, 0을 생각하는데 10을 받으니 거기에서 느껴지는 10의 애정도도 난 좋더라.

 

그래서 생각했어. 아, 이게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가. 이게 최선을 다하는 거라는 너를, 그대로 받아들이니 또 그건 그거대로 괜찮더라고. 그러나 이전에 네 폰에서 봤던 합의되지 않아보였던 관계 동영상이나 능숙한 거짓말들은 아직 내 기억에 남아 나는 경계를 하고 있었어. 물론 네 성격상 그 영상을 유포하거나 최근 모 연예인처럼 단톡에 올릴 사람은 아니야. 그 영상 자체도 분명 너혼자 보고 지우거나 아니면 그게 네 폰 안에 있는지조차 까먹어버렸겠지. 그정도로 너는 무심한 사람이니까.

 

다만 내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래, 위에서 움직이는 내 모습이 좋아서 그걸 너혼자 보려고만 했더라도.

나한테는 그러지 말았어야지.

차라리 말을 하지. 차라리 물어보기라도 하지. 이건 범죄잖아 그냥.

 

날 버티게 해준 건, 네가 의미없이 관계했던 수많은 여자들과는 다를 거라고 했던 그 믿음, 그 생각 때문이었는데. 네 말대로 내 모습이 아무리 예쁘고 아무리 혼자 간직하고 싶었더라도 나에겐 그러지 말았어야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는 너를 뒤로하고 혼자 샤워하고 나왔을 때, 모르는 척하며 롤영상을 보고 있는 네 모습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는 모습을 힐끔거리며 신경은 쓰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모습엔 신물이 날 듯 했지만 그마저도 또 금방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 갈게.

어딜간다는 거야.

.....

...그래, 가.

 

나는 궁금하다. 결혼하자고 보채서 헤어졌다는 전여친 얘기를 하면서도, 나에게는 먼저 결혼 얘기를 꺼냈던 네가, 육아로 힘들어하는 동료를 보면서 절대 저렇게 안 살 거라고 말하고 다니더니, 나에게는 너 닮은 아이를 낳아달라던 네가, 나한테 마지막을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저게 최선이었나?

저 말이 최선이야? 그게 슬플 정도로 궁금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너만 보고 지울 생각이었다는 변명으로 이 헤프닝이 그냥 그렇게 지나갈 수 있는 일인거야? 대체 난 어떤 상식 밖으로까지 널 이해해야 하는 걸까?

마음정리를 이미 많이 해왔어서 그런가.

슬프지도, 눈물이 나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 욕도 나오지 않고, 그냥 착잡하기만 해.

씁쓸하고, 내 상식과 가치관을 넘어서는 너를 이해하고 싶었는데, 그런 나에게.

 

나 만나기 시작한 달부터 밀린 월급 때문에, 내가 널 걱정하며 했던 모든 것들은 생각나?

밥 해주고 거의 쓰러져 잤던 내 모습은 생각나? 끼니 거르지 말라고 반찬이며 밥이며 생필품이며 다 너에게 갖다주었던 내 모습은? 감기라는 말에 모든 거 다 제쳐두고 배,도라지,대추 차 끊여서 먹여줬던 건? 지금 허리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너 돌봐주려고 내 스케줄 다 미뤄두고 취소하고 가서 간병해준 건? 씻겨준 건?

내 생일날 결국 1초도 얼굴 못 본 건? 돈 없어서 내 카드로 재료사서 생일 밥상 차려준 건? 난 그것도 이해해주고 싶었어. 생활비 없어서 스트레스 받는 너한테 더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서.

 

아깝지 않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생색내는 게 아니라, 그때 너한테 그렇게까지 했었고 또 해주고 싶었던, 24,25살의 지금 내 모습이 전혀 후회되지 않아서 그래. 난 잘했어.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다 했어.

 

과연 무심한 네가, 복잡한 생각들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네가 지금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기대도 안 해. 

기대도 안하는데,

내가 그저, 그냥 이 마저라도 너한테 바라는 건, 저런 내 모습들에 대한 후회가 아니야. 사실 너 객관적으로 주변에서 다 말려. 너랑 오래 가지말라고. 왜 그렇게까지 만나냐고. 맞아. 사실 내가 생각해도 넌 남자친구나 남편으로서 정말 최악이야. 

 

그런데 그냥, 그런 거 다 뒤로하고.

네 진짜 숨겨진 외로움, 그저 외로움, 그걸 조금이나마 가르쳐주고 채워주고 싶었던 한 여자를 너의 그 쓰레기 같은 몰카짓거리 하나로, 네 생각없는 가벼운 행동 하나로 제대로 마음정리를 하게 한 것.

난 그냥 너가 그에 대한 정말 일말의 미안함. 일말의, 정말 실날 같은 후회와 아쉬움을 느끼길 바라.

 

난 그저 그것만 바라. 글쎄 아마, 너는 그러지 않겠지만.

 

사람공부 제대로 하게 해줘서 고맙다. 문란했던 너, 그리고 그게 너무나 당연한 네 주위 사람들, 너랑 쉽게 놀아났던 여자들을 보며, 내 주변엔 언제나 너무 예쁘고 바른 사람만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거든. 정말 남자공부? 남자보는 눈? 아니, 사람공부. 더럽게 사는 게 너무나 당연한 남녀 막론한 사람들 이제는 눈에 너무 잘 보여. 정말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음지 세계와 너희들끼리 사용하는 은어들, 생활습관으로 인정해야 되는 건가.....라고 까지 생각되는 더러운 행위들 진짜 너 하나 만나서 그쪽 세계 제대로 배웠다. 순탄치 않게 살아왔지만 열심히 살려고 했던 25살짜리가 마찬가지로 순탄치 않게 살아온 외로운 31살한테 배운 거치고는 너무 값졌다. 아, 너 처음 만난게 22살이었네. 비록 연애는 7개월 남짓이었지만 정말 이 동안 배운게 앞으로 내가 살면서 만나게 될 인연들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될 거란 건 분명해.

 

적어도 지금, 난 너에게 아쉬운 것 하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 했다. 정말 씁쓸할 정도로 홀가분하기만 하다니 난 정말 이 정도면 됐다. 정말 이정도면 된 거 같아.

 새삼 드는 생각이, 정말 별다른 말 없어 날 그냥 보낸 거...

그 자체도 여타 다른 여자들과 다를 게 없었구나 너는. 내가 간다고 하니까. 그냥 보낸 거구나...하는 생각이 드네. 너는 이미 복잡한 모든 문제들을 뒤로 하고 나를 놔버렸구나...하고 생각하니 조금은 슬프긴 하다.

 

다 이렇지 뭐.

남들이 보기엔, 친구들이 보기엔, 그 제 3자가 나라도 그럴거야.

몰카? 거기서 끝났어. 그런 쓰레기 새끼 왜 만나? 이걸로 결론은 났지.

그러나 여타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나만이 알고 있는 네 사랑스러운 모습들과 그래도 좋았던 순간들, 편했던 웃음들과 가족같았던 그 순간들이 추억을 조금은 더 돌아보게 만든다. 조금은, 그래도 그때 좋았는데. 여태 좋았었는데, 문제는 많았지만 잘 만나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든다구.

그냥 그 뿐이야.

 

정말, 일이 이렇게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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