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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시험 그리고 게임. 어디에도 말 못해본 이야기...

아이스크림집 |2019.05.13 01:13
조회 18,408 |추천 25

 스물일곱.

 뒷글자 시옷 들어갈때까지가 중반이라고 스물일곲이라면서 친구와 장난하던 올해가 반이나 지나오네요. 요즘 답답한 일이 많이 겹쳐 옛날 생각에 판에 들어와보고 처음으로 글을 써보려고요.

딱히 익명아니면 말할 용기도 없고 아무도 못알아보는 어떤 곳에 한번은 털어놓고 싶어서요..

 오랜만에 네이트판 들어와보니 주말에 기숙사에서 집에 오면 늦은 시간까지 네이트판과 네이트 뉴스보고 영화보면서 날 새던 예전 기억도 새록새록 나네요.

 

  고3때 서울 중경외시 라인의 대학을 턱걸이로 합격했지만 자신감만 넘치고 공부했던게 아쉬워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했어요. 스무살이 되던 그 때에 기숙학원 단체복에 새로나온 수능특강을 다시 보며 더 좋은 대학을 기약하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기숙학원 휴가 복귀날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기다릴때, 그 해 봄에는 버스커버스커 벚꽃엔딩이 유행이었는데 그 멜로디가 정말 서럽게 느껴졌습니다. 스무살이 된 친구들이 대학을 가고 한창 대학생활을 느끼며 다닐때 나는 아직도 수능공부를 붙잡고 학원에서는 단체 체육복을 입으며 있는 모습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져서. 지금은 벚꽃엔딩이 지겹다고들 해도 재수하던 그 때 들었던 멜로디가 저에겐 매번 애증처럼 들리네요.

 

 사관학교 시험에 같은 반 친구와 합격해서 같이 제복입고 다니자며 기뻐했었지만, 공무원이 되어 나랏일을 하고 싶었던 마음에 일반대학교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사관학교에선 군인말곤 다른 길이 없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현역때보다 그리 높진 않은 수능점수를 받고 고3때도 갈 수 있었던 지금의 대학과 다른 두 곳을 더 합격했지만 당시에는 재수하는 동안 부모님께 손벌린게 죄송해서 장학금도 있고 학비도 싼 국립대를 입학했습니다. 어차피 공무원시험을 준비할텐데 명문대가 아니라면 별 차이 없을거라는 마음에 크게 고민은 안했던 것 같아요.

 

 스무살을 재수로 보내고 스물한살에 대학에 와서는 알바와 과외,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재수하고도 욕심만큼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고 용돈받는게 부모님께 너무 죄송해서 알바에 그렇게 욕심을 냈었어요. 공강날이나 주말에는 택배상하차나 인력사무소에서 하는 건설현장 알바를 틈틈히 찾아했고, 문과지만 수학점수 잘나온 것으로 운이 좋게 수학과외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과외학생이 나보다 좋은 대학에 갔지만ㅠㅠㅠㅠ 알바를 구하지 못한 날에는 학교 도서관에 박혀있었죠. 1학년이라 그렇게 할게 많지도 않았지만 학과공부도 하고 나름 공무원시험 한다고 깔짝거리기도 하고요.

 행정고시를 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지방국립대생이 행정고시를 본다고 하면 괜히 객기부리는 것처럼 보일까봐 도서관에서도 구석에서 박혀서 몰래 피셋풀고 2차 책도 몰래보면서 조용조용 시험준비하면서 지냈습니다.

 

 친구들은 2학년이 되면서 군대에 가고, 어릴때 무릎수술을 했던 저만 군대에 가지 않았는데 이때 시험에 보탬이 될까하고 전과까지 해서 그런지 친구를 많이 두지는 못했네요. 그래서 대학친구가 몇 없어요. 연애는 항상 우연하게 했었지만 친구는 공부할때를 빼면 만날 상황이 잘 없어서 정말 친한 친구는 몇 없이 지내왔네요.

 

 스물두살 대학교 2학년에 학교에서는 시험관련된 과목만 신청해서 듣고 집 도서관에서 행시 1차 시험과 2차 시험과목을 준비하면서, 혹시 모르니 7 9급 시험에도 응시해보라는 고모부의 말씀이 잠깐 생각나서 심심하면  7 9급 시험문제도 떠들러보면서 시험준비에만 전념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던 해에 지방직 9급 시험일정이 있었고 과목은 원래 공부하던 5급과목에 수능과외했던 과목들을 섞어 시험을 봤고 덜컥 합격해서 기분 좋았던 때가 있었는데 이 때부터 틀어진 것 같아요. 그 다음의 내 20대가.

 그때도 지금도 드는 생각이지만,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게 사무관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큰 일을 하고 싶고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에요. 물론 어떤 공무원도 다 공직에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지만 당시의 저의 생각엔 준비하던 시험에 같이 한 번 쳐본 시험이 운좋게 된 느낌이라 원래 가졌던 목표가 아니기도 해서 별 미련없이 임용유예만 해두고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원래의 꿈을 쉽게 놓는다고 생각하실까봐 혼자만 기분 좋아했었어요. 같이 공부하던 친구는 떨어졌었는데 차마 그 친구에게 합격했다는 말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기억임에도 아무에게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뭔가 하나 얻어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임용을 유예하며 원래하던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스물세살이 되던 해, 1차시험을 봤는데 운좋게 1차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감이 생겨서 시험준비하는게 탄력받았던 것 같아요.

 1차시험에 합격하고 2차준비에 들어가려면 신림동 고시촌으로 가야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책과 옷만 싸들고 그동안 모아뒀던 알바비와 과외비로 원룸을 구하고 학원을 등록한 첫날, 아무것도 없는 원룸에 가지고 온 옷가방을 베개삼아 누워 천장을 보면서 느낀 두려움과 설렘, 그동안 지내온 날이 복잡하게 얽혔었습니다. 이렇게 공부할 날과 시간을 위해서 그동안 알바하고 공부해왔나 싶은 생각에 기쁨섞인 눈물이 나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험준비는 자신감만큼 넉넉하진 않았습니다. 첫 학원수업을 들어간 날 같이 공부하고 경쟁자가 될 여러 수험생을 보며 주눅이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학교에선 한두명 나올까말까 했던 소위 명문대 학생들이 몇몇은 과잠을 입고 친한 사람들끼리 수업듣고 시험얘기를 하는 것을 보며, 내가 과연 이 사람들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까, 넘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경제학과 행정법을 어거지로 꾸역꾸역 답안지를 써내면서 버틴 두달 동안 차츰 오르는 모의고사 등수와 쌓이는 내 실력을 보며 처음 느꼈던 두려움도 차츰 닳게 되고 자신감이 다시 올랐습니다. 다음 두 논문과목에서는 더 나은 성적을 받은 때도 더러 있어서 나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첫 2차시험이 지나고, 과락만 겨우 면한 점수로 탈락한 후에 다시 시험준비를 했습니다.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1차시험은 합격하고 2차시험은 조금씩 오르면서도 떨어짐을 반복하며 몇년이 지났습니다.

 

 스물다섯에 2차시험이 떨어지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은 늘고, 연락 종종하던 친구들도 연락이 끊겨가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고, 지금이라도 알량한 자존심 버리고 대학때 합격한 길로 돌아갈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시험끝나고 했던 게임을 한두달이 지나고도 놓치못해 꾸준히 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친구와 했지만 친구는 취직하면서 그만두고 저만 남아서 했는데, 그 게임안에서의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게임을 끊지 못하고 쭉 하게 되었습니다.

 오프라인 행사에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더 깊게 들어가버렸고요.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론 어딘가에 기댈 언덕을 만들어두려는 생각인지 9급시험은 또 봐두고..

 게임안에서 길드라던지 친목모임도 하고 그 사람들과 게임밖에서 정모를 하기도 하면서 더 게임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릴때는 그런 온라인상 만남을 오프라인으로 가져오는 걸 정말 이해 못하고 이상하다고도 생각했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게임속의 그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 주변에 있는 그런 사람이었던 걸 만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느라 연락 많이 못하고 지냈던 친구들보다 게임하면서 자주 만나는 형누나들 친구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까지 했고, 종종 밥도 사주며 잘해주던 사람들과 더 가까운 관계를 이어나갔습니다. 그 중 한분과 몇달 만나면서 연애를 하기도 했고.. 그런데 참....게임안에서는 여자분이 적어서 그런지, 그 누나를 만나는 내내 게임쪽지로 질투하고 비꼬는 욕을 많이 들었고 그땐 질투하는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게, 그 누나를 만나지 않은지 꽤 된 후에 오해가 생겨 다신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제대로 해명도 못하며 연락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게임안의 사람들과 선을 긋고 게임을 멀리하게 되었는데, 그동안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너무 허망했습니다. 공부한다며 지내왔던 시간이 있는데 갑자기 게임에 빠져 해오던 공부도 팽개쳐두고 게임에만 몰두해왔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게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도 불미스런 일까지 겪고 게임하던 사람들을 멀리하니 나에겐 남는게 없더라고요. 그냥 2년 가까운 시간을 버린 것처럼.

 

 휴학은 끝나고 복학을 해서 허망한 마음만 가지고 학교를 다닌지 서너달 되었네요. 작년까지 본 시험은 또 1차 합격과 2차 탈락을 반복했고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내고 있어요. 그전에 대학다니면서 모아뒀던 돈과 학자금 대출해서 쌓아둔 돈도 많이 남지 않았고, 두번째 합격했던 9급 시험 임용유예기간이 끝나 임용사유가 소멸되어버려 지금은 가진 것도 이룬것도 없는 때가 되어버렸습니다.

 

 친구들은 취업을 하고 이른 친구들은 결혼까지 생각하며 미래를 이뤄나가는데 나는 아직도 시험에 목매다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채로 남아있는게 허전하게 느껴집니다. 차라리 일찍 합격했던 그때에 바로 임용을 했다면 지금은 돈도 모으고 공무원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게임을 취미로 적당히만 했었다면 지금의 상실감은 느끼지 않았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오늘 꿉꿉한 마음에 밥도 하루종일 거르고 저녁에 산책을 갔다가 문득 이런 생각들이 겹쳐 길바닥에서 속으로 많이 울면서 집으로 왔습니다. 올해에는 취업준비로 돌릴까라는 생각도 처음 해봤지만 게임하느라 버린 시간이 아까워 마음잡고 한번만 더 시험을 준비하고 싶어졌습니다. 다음 시험을 다시 볼만큼 폼을 올리려면 또 한두달은 고생하겠지만 생각정리가 좀 되어 수월할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마지막이라고 다짐하고 한번만 더 도전해봐야겠네요. 여기까지 두서없이 이어왔는데 끝까지 읽어주신분 계시다면 감사합니다 .

 

추천수25
반대수11
베플ㅇㅇ|2019.05.14 14:36
제친구는 대학졸업하구 약 6년 간 일하다가..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며 회사를 때려치우고 32살에 3년 간 준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유럽일주 다녀온 뒤에 다시 원래 하던 일에 복직해서 30대 중반이 넘어 결혼도 하고 잘 지내요..가끔 물어봐요 그 3년이 안 아깝냐고..돈도 까먹고 시간도 아깝지 않냐고..그런데 그렇게 안해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그게 무서웟다고..세 번 이상 안되면 나는 안된다 생각하고 시작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40을 앞두고 있는 애엄마고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가끔 제 20대를 돌아오면 너무 허탈해요.. 단 한번도 내가 하고 싶어서 내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일이 없거든요..그냥 되는대로, 운좋게 이렇게 이렇게 흘러가버린 것 같아서 그게 어떨 땐 내가 너무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처럼 느껴져요... 그러니 힘내요. 인생의 큰 그림을 본다면 지금은 스케치작업중이라고 생각하세요 행운을 빕니다
베플이과장|2019.05.14 15:23
글쓴거 보니 결국에는 될듯한데.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해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글로써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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