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3년, 동거 1년 후 결혼 10년차.
경제적인 이유로 먼저 살림을 합했고 1년후에 결혼해서 10년 되었어요.
연애때는 가부장적인 남자라 무뚝뚝하고 자기 할말만 딱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밖에서 데이트할 때 팔장이라도 끼려면 질색팔색하며 그런 낯간지러운 짓은 못한다며 펄펄 뛰었어요. 타지에서 누가 우릴 알아본다고.
생일이고 기념일이고 저도 원래 잘 안 챙기는 편이고 남편은 더 하고요. 축하한다 말 한마디 없이 그냥 쓱 지나가는데 잊어버리진 않더라고요. 뭐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는 날짜긴 해요. 생일이 같으니.
결혼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동거를 하다보니 서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사는 걸 상상하지 못하게 되었고여러가지 제반 상황을 고려해서 혼인신고부터 했어요.
결혼 초기엔 그렇게 무뚝뚝하고 개인적이더라고요. 저도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긴 한데 명함도 못 내밀 수준. 제가 없으면 혼자서 밥 차려 먹고 치우고 혹여 자기가 많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그냥 도시락을 사와서 먹고 치우더라고요. 맞벌이라 제가 번거로울 것 같으니까 그랬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좀 서운하더라고요.
집안 일은 나서서 하진 않지만 제가 하고 있으면 옆에서 거들더라고요. 제가 살림에 별 취미 없어서 대충하고 사는데 딱히 불만 표시는 없고요. 이래도 되나 싶은데 아무말 없는 걸 보면서 우리 가정에 별 관심이 없는건가 싶기도 했어요.
결혼해서 한 3-4년까지는 좀 남남같은 느낌이 들고 서로 예의차리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원래 다 이런건가 이 사람이 무뚝뚝해서 그런건가 좀 헷갈리긴 하더라고요. 저는 애교 많이 부려요.애교도 많이 부리지만 간섭도 해요. 외출할때 남편 입을 옷, 이 옷이 예쁘다 저 옷이 예쁘다 정도요. 그렇게 말해줘도 남편은 자기가 입고 싶은 거 입고 나가요. 제 말 안 들어요. 그래도 그려려니 했어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니까 하고요. 내 눈엔 테러지만 지 맘에 들면 됐다 싶기도 하고요.
그렇게 사이좋은 남남처럼 지내다가 한 5년차 되니 이제 싸우더라고요. 서로 제법 익숙해졌고 예의 지키던 마음이 좀 사라져서그제서야 서로 좀 편해진 거였죠.
그렇게 내가 나간다 니가 나가라 몇 차례 크게 싸우고사이가 어땠을 것 같나요?점점 사이가 멀어졌을까요?아예 남남 처럼 살게 되었을까요?
여러분들은 얼마나 남편과 시간을 보내시나요?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때까지 한 1시간 30분 계속 쫑알쫑알 떠들고퇴근해서 집에와서는 같이 장보러가고 같이 밥먹고 일주일에 3번 남편은 골프연습하러 가고 그 사이에 저는 좋아하는 유뷰트 보고요. 주말엔 같이 골프치러 가거나 가까운 곳에 드라이브가요.
그렇게 남남같고 개인적이더니 한 10년 지나니까 지금은 오히려 껌딱지가 따로 없어요. 어딜가나 둘이 세트로 움직이니 동네에선 소문이 자자하고요. 이제 중년 나이라 까딱 잘못하면 불륜으로 비춰질 정도로 사이가 좋아요. (그만큼 살가운 부부사이가 별로 없나봐요. 사이가 좋으니 불륜이려니 어림짐작)
같은 세월을 보내는게 이런 거구나. 부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하는 거구나.그런 느낌이 듭니다.
부부 합쳐 연봉 8000만원에 자가였던 싸구려 집 팔아 재테크에 몰어 넣고 현재는 남편 사택에서 관리비만 내고 삽니다. 둘 다 워라밸 확실히 지켜주는 직장이라 6시면 집에 도착합니다. IMF시절에 졸업한 세대라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어도 열심히 살다보니 이젠 좀 숨 돌려지네요.
남편과 사이가 좋으니 걱정거리가 없어요. 돈이 없어도 고민되질 않아요. 마음이 긍정적이니 일이 계속 잘 풀려요. 아주 밑바닥에서 시작했더니 더 밑이 없어 불행해지지도 않아요.
무일푼으로 시작해서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고지금도 재산이 많은 건 아니지만좋은 날도 있고 힘든 날도 있고 그런 게 인생이려니 싶은데.
요즘 젊은이들이결혼이란 출발점부터 모든 걸 다 갖추어드라마처럼 완벽하게 셋팅된 상태에서 출발하려는 걸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