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판에 처음으로 올리는 글이에요.
약 16년 전 일이기는 하지만, 저를 강간하려고 했던 사람에게 닿았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올리게 되었어요.
저는 2003년 여름, 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단지 내에서,
같은 신용산 초등학교를 다니던 남학생에게 강간당할 뻔한 경험이 있어요.
2003년 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살았던, 당시 신용산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마도 당시 13살이던 강간미수범이 이 글을 읽기를 바라요.
*이 밑부터는 제가 기억하고 있는 당시의 기억을 썼는데,
혹시 불편하실 수 있으니 읽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 돌아가주세요.
—
저는 1999년 신용산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2005년 2월 졸업했습니다.
2003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저는 한강맨션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강맨션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꽤 큰 아파트 단지에요.
큰길
11동
21동
31동
12동
22동
32동
13동
23동
33동
14동
24동
34동
15동
25동
놀이터
16동
26동
36동
17동
27동
37동
18동
28동
38동
여름 어느 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평소에 놀이터에 자주 보이던 6학년 남학생이 저에게 길을 묻더군요.
제 기억으로는 한강맨션에 사는 사람이 아니었고, 아마도 다른 단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37동에 가야 하는데 가는 길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말로 몇 번을 설명을 해도, 잘 모르겠다고 거듭 다시 묻더니, 건물 앞까지만 데려다 줄 수 없겠냐고 하더군요.
저는 평소 누군가 길을 물어도 말로 설명은 하되 절대 직접 데려다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는 있었지만,
평소에 자주 보던 사람이었고, 아파트 단지 안이었고, 건물 앞까지만 안내해주는 게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흔쾌히 안내를 해 줬습니다.
그런데 고맙다고 웃으며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제 팔을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군요.
한강맨션은 5층까지 있는 아파트고, 옥상과 5층 사이에 공간이 있었어요.
물론 cctv같은 건 달려 있지 않았고요.
거기까지 저를 끌고 가서 앉히더니,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자기 성기를 꺼내, 저보고 빨아보라고 하더군요.
당시 저는 성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성관계에 대한 것도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대체 그걸 왜 빨라는 건지 몰랐고, 무서웠고, 아무 말도 안 나와서, 싫다는 의미로 계속 고개를 저으면서 울었어요.
다행인 건, 억지로 할 만한 깡은 없었는지 한참을 그러다가, 제가 안 하니까 또 팔을 붙잡고 밖으로 나가더라구요.
저는 안 끌려가려고 버티다가 계단에서 몇 번을 넘어질 뻔했고, 밖에 나와서도 계속 버티면서 질질 끌려갔어요.
그 와중에 그 사람이 두리번거리면서 다른 장소를 찾는 듯 했던 기억이 나요.
그 때 같은 아파트에 살던 친구네 어머님께서 우연히 지나가시다가 절 발견하셨어요.
제가 억지로 끌려가는 듯이 보이니까, 이름을 크게 불러주셨죠. ‘00야!’ 하고요.
그러자 그 사람은 제 팔을 놓고 도망쳤어요.
친구네 어머님께서는 저희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주셨고, 저는 집에 돌아왔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달라고 하시는 어머니께, 저는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울기만 했어요.
뭔가 큰 일을 당할 뻔 한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고, 말하기는 부끄럽고.
그래서 결국에는 스케치북에 글과 그림으로 그렸죠.
아직도 그 때 그렸던 그림과, 썼던 글이 생각이 나요.
‘자기 고추를 꺼내서 나보고 사탕 빨듯이 빨라고 했어.’라고 썼죠.
어머니는 그걸 보시고 저를 꽉 끌어안으시더니 보듬보듬하시면서 ‘다행이다... 다행이다...’하고 중얼거리셨어요.
여기까지가 제 기억이에요.
아직도 너무 생생히 기억나요.
—
성인이 되고서야 들었지만,
부모님께서는 당시 아파트 단지 내의 cctv를 전부 돌려 보고 범인이 누군지 특정까지 하셨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고 처벌을 하려면 저를 다시 그 사람과 만나게 해야 하고,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게 걱정되어서 신고하지 않으셨다고 했어요.
제가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서요.
그런데 어떻게 잊겠어요. 이런 일을.
사실 성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을 때 겪은 일이라, 성에 대한 개념이 생기고 나서도 대학생이 될때까지 제가 당했던 일이 성폭행 미수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친한 친구들에게 나 사실 어릴 적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깨달았어요.
아, 나 그 때 진짜 큰일 당할 뻔 한거구나.
친구 어머님께서 지나가시다가 발견해주시지 않았다면 어딘가 끌려가서 강간당하거나,
어쩌면 (너무 한참 간 걸지도 모르지만) 살해당했을 수도 있겠구나.
어른이 되어서 생각하니, 아마도 초등학생이 어딘가에서 우연히 포르노 동영상을 보고,
실제로 해 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지 않을까 해요.
그치만 아무리 초등학생이었다고는 해도 범죄는 범죄죠.
같은 동네 살고 같은 학교 다니고 자주 얼굴 마주치는 여자애를 끌고 가서 그걸 해보려고 하는 정신머리가... 정상일까요.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은 했을지!!! 사실 못 했을 거라고 보지만요.
그냥, 저는 16년간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계속 간직하고 고통받으면서 살아왔고,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텐데.
그 사람은 뭐 하고 살까 생각하니까 ㅎㅎㅎ 솔직히 억울해요.
어릴 적의 실수라고 여기고 애써 잊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
자기가 했던 일을 무용담처럼 떠벌이면서 웃고 다닐지도 모르고
범죄의 소질을 크게 키워서 범죄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을 계속 갖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
천벌을 받아서 죽어버렸을 지도 모르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을지도 모르고(어쩌면 딸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사과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고, 사과하고 싶다고 해도 안 받을 거고요.
그냥 꼭 범인한테까지 제 글이 닿았으면 좋겠어요.
왜 이제 와서 이런 글을 쓰느냐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냥 갑자기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 싶은 말은요.
아마도 91년생
2003년 만 열두살의 강간미수범님.
당신이 한 일은 범죄랍니다.
당신이 어릴 적 호기심으로 저지른 일은 한 사람을 줄곧 고통스럽게 해 왔고 앞으로도 고통스럽게 할 거에요.
잊고 싶어도 저는 잊을 수가 없답니다.
세상이 처벌하지 않았어도 빨간 딱지만 안 그었을 뿐이지 당신은 범죄자에요.
잘 살든 못 살든 알 바 아닌데, 그냥 평생 잊지 말고 고통받으며 사시고요.
평생 죄책감 가지고 살고, 행복하지 마세요.
못된 심보같겠지만 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13살 초등학생이었던 강간미수범에게 꼭 이 글이 닿기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