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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1

1. 천주교와 개신교의 분열

종교개혁시대의 상황을 보면 1500년대의 가톨릭교회는 구원으로 이르는 길은 성사(聖事)에 있다고 하고, 특히 죄의 속죄는 거기에 상응하는 선행의 보속으로 얻어지는데 그것은 면죄부(免罪符) 같은 것을 사는 것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선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515년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의 성 베드로성당 건설을 위하여 면죄부 판매를 고시하고, 독일에서도 면죄부의 판매가 성행했습니다.

이런 교황청이 발부한 면죄부는 <상자 속으로 던져 넣은 돈이 짤랑하고 소리를 내는 순간 구원을 받는다>고 까지 선전되어 마구 팔렸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이런 성경의 내용에 위배되는 “사람들이 면죄부를 구매함으로써 모든 벌과 죄책으로부터 해방되며 확실히 구제된다고 믿는” 사실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인지(認知)하고 크게 종교적 위기를 느꼈습니다.

금전에 의한 면죄부의 구입이라는 안이한 태도와 행위로 인해 <회개>라는 그리스도신자의 기본적 행위가 완전히 무시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 당시 비텐베르그 대학의 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의 반박문(1517)을 게시하게 됩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는데 여기서 루터는 로마 교황청에 의한 독일의 재정적 착취를 문제 삼았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카톨릭교회의 신앙의 오류와 성경의 바른 신앙원리를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구원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어떤 선행과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루터는 이 논제의 제36조에서 "진실한 회개가... 벌과 죄책으로부터의 완전한 사면(赦免)"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제28조에서는 "하나님만이 구원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사람은 단지 믿음에 의해서만 의롭게 되며(義認說), 그 믿음의 근거는 성경밖에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21조에서는 교황이 면죄함으로 인간이 모든 형벌로부터 해방되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으며 27조에서는 헌금함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죽은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라고 말하며 연옥의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36조에서는 어떤 크리스챤이든지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해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부 없이도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고 했으며 51조에서는 면죄부 사느라 돈을 빼앗긴 사람을 위해서라면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을 팔아서라도 그 돈을 되갚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79조에서는 교황이 사용하는 십자가상이 그리스도와 똑같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했습니다

 이 95개조 반박문을 루터가 계시한 것은 로마 카톨릭교회의 개혁을 시도한 것이었으나 루터는 결국 이런 주장으로 인하여 로마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결별을 선언 당하게 됩니다.

 루터는《독일의 그리스도교 귀족에게 고함(1520)》이라는 기고문에서 "모든 그리스도교인은 진실로 그리스도 교회의 한 부분인 지체된 신분에 속하며 서로간의 직무상의 구별 이외에 어떠한 차별도 없다"고 하여 신과 인간의 중개자로서의 특별한 신분과 특권을 가진 성직자 계층의 존재를 부정하였습니다.

이러한 근원적 주장은 가톨릭교회 체제(敎階制度)의 토대를 무너뜨리려는 것이었습니다.

1519년에 가톨릭신학자 에크와 가졌던 라이프치히 토론회에서 루터는 교황의 교의상의 권위와 공의회의 무류성(無謬性)을 부정하였고, 20년에는 교황의 파문 협박장을 공공연히 태워버렸으며, 21년 보름스국회(제국의회)에서는 황제 카를 5세의 면전에서 행한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신앙의 정당성을 주장하므로서 제국추방 처분형을 받았습니다(보름스칙령).

이런 처벌로 인하여 루터는 캐토릭교회 내에서의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카톨릭교회로부터 파문되었으며 그 후 루터가 죽은 후에 그의 추종자들과 다른 개혁자들에 의하여 개신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주교회와 교인들은 천주교가 정통교회이고 개신교회는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간 열교라고 칭합니다

그러나 개신교인들은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천주교가 예수님의 복음을 인간중심으로 변질시키고 내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원래의 초대교회의 예수님의 복음의 생명력을 찾자 즉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회귀운동의 결과로 개신교회가 탄생한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개신교회가 예수님의 초대교회에 가장 가까운 교회로서 예수님의 정통교회이고 천주교회는 교황의 무오교리나 마리아의 신격화 신부의 사죄권등으로 예수님의 위상과 예수님의 복음의 생명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고 성령의 개개인을 향한 역사도 가로막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회칠한 무덤과 같은 인간의 단체로 전락하고 만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개신교회에서는 지금의 천주교회는 예수님에게서 온 종교가 아니고 700년대에 로마황제가 로마주교에게 교황이라는 왕관을 씌어 주고 그에게 명실상부한 교회수위권을 줌으로 인해 생긴 인간중심의 종교(성경에 없는 교황무오교리, 신부의 사죄권, 마리아의 신격화등)로 변질된 비정통, 이질교로 보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기독교(개신교)는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으로 생긴 교로서 그 역사가 490년 밖에 되지 않고 루터라고 하는 사람이 만든 종교라고 합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볼 때에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개신교사상은 루터대에 와서 불붙어 올라서 꽃피우게 되었지마는 그 이전에도 루터와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종교개혁운동을 시도한 사람은 여럿 있었습니다 (체코의 얀 후스, 영국의 존 위클리프,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등)

그러나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살아져 버렸으며 루터 대에도 루터 혼자서 종교개혁운동을 한 것이 아니고 같은 시대에 조금 늦게 칼빈이나 존 낙스나 즈윙글리 같은 개혁자가 나타나 스위스와 영국에서 종교개혁운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처음부터 개신교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개신교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단지 그는 그 당시 부패하고 예수님의 복음의 본질에서 떠나 변질된 천주교를 새롭게 개혁해 보고자 궐기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루터의 그런 개혁운동을 배격하고 핍박하며 루터를 파문시켜 버려서 어쩔수 없이 루터는 자기의 신앙을 지지하고 따르는 무리들과 같이 모여서 예배드리며 전도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의 제자들이 이런 개혁가들이 죽은 후에 자기들의 모임을 루터교다 혹은 개혁교회다 장로교회다 그렇게 이름을 붙여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발전하여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신교의 개혁운동에 불을 붙여 올린 사람이 루터인 것은 맞지만은 개신교는 루터 한 사람에 의해 되어진 것이 아니고 여러 하나님의 종들의 공동노력으로 개신교교회가 생기고 개신교신앙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크신 경륜과 계획 가운데 이루어 진 것으로서 뿌리되시는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천주교라는 줄기를 돋아나게 하셨으나 이 줄기가 병들고 시들게 되니까 개신교라는 새줄기를 돋아나게 해서 열매맺게 한 것이 개신교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곧 개신교는 그것이 겉으로 나타난 역사는 490년 밖에 안되지마는 그러나 개신교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한 회귀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종교이기 때문에 개신교가 바로 예수님이 새롭게 세운 초대교회에 가장 가까운 참교회요 진정한 의미에서 개신교의 역사가 2000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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