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동성친구를 짝사랑해왔다.(스압)
간장치킨
|2019.09.06 23:41
조회 6,536 |추천 18
너를 처음 만난 건 고1이였다.
친구의 친구라며 가끔씩 얼굴을 마주보던 너의 얼굴이 왜인지 모르게 살갑고 호감형으로 다가오더라.
그때까진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내게,
그저 남들에 비해 여자에 대한 성욕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동성애자 일리가 없다고 자신을 부정하고 있던 나에게,
많아야 일주일에 두어번 얼굴을 마주치던 너는 나의 모든 마음을 빼앗아 갔다.
눈웃음이 귀여운 대형견을 닮은 너의 얼굴이 너를 볼 수 없던 내 주말 낮을 가득 채웠고,
낮고 굵은 목소리를 가진 너의 목소리가 내 주말 밤을 가득 채웠다.
아닐거야, 아닐거야, 끝끝내 부정했지만 결국 나는 너에게 대한 내 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내 휴대폰 인터넷 검색기록에는 동성애자, 그리고 짝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채워져갔다.
밤에 휴대폰을 붙들며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고,
공부에 흥미가 없던 나는 너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야자를 신청했고,
주말에는 밖에 나가기도 싫어했던 나는 너가 주말에 야자를 한다는 이유 그 하나로 내 주말의 모든 시간을 학교에 쏟아부었다.
방과후에 야자실에서 내게 웃으며 인사를 하던 너의 그 눈웃음이 지루하던 학교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였고,
주말에는 너와 밥을먹고 운동장을 거닐며 얘기를 하는게 내 삶의 낙이였다.
귀갓길에 너와 한 마디라도 더 하려 나는 너가 집에 가는 시간에 맞춰 내 공부 스케줄을 짜고.
너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려 너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복도에 나섰다.
하굣길에는 학교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타던 너와 버스가 빨리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너와 대화하고,
가끔씩 나와같이 버스를 타지 않고 집으로 걸어가주던 너를 보며 행복해하며,
자기전 침대 위에서 카톡을 잘 보지 않던 너와의 몇 줄 안 되는 카톡을 읽으며 행복해하는게 나의 하루의 끝이였다.
내 하루의 모든 것이 너로 채워져갔고, 어쩌면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이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내 머리의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아갔다.
주말 밤 학교 운동장 벤치에서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다고 수줍게 고백하던 너의 말은 그런 이기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지 3일도 되지 않아 들을 수 있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 했고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였지만.
항상 하던대로 웃으면서 너의 어깨를 두드렸다.
심장은 망치로 짓겨지는 기분이였지만 절대 티를 낼 순 없었다. 평생을 연기하더라도 너와의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았던 나였으니까.
하루에도 수십번씩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고,
너에게 거짓말로 나를 꾸미던 내게 혐오감이 일었으며,
나의 진실을 알고 나를 혐오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너의 얼굴을 상상하며 화장실에서 휴지를 적셨다.
비록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너가 아니였지만. 그 누구보다도 네게 친절하게 굴던 나에게 너는 너의 속 깊은 이야기까지 들려주었고.
내게 많이 의지하였으며, 그런 너를 보며 나는 이렇게 가장 친한 친구사이로도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고3이 되었다.
나와 같이 내신을 말아먹은 너는 으레 공부를 별로 하지 않던 고3들이 그러듯 정시파이터! 수능파이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하였고,
주변에 별로 없던 정시러들 덕분에 너와 나의 사이는 더욱 더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다.
허나 6월이 지나고, 오르지 않는 성적과 목표대학과의 괴리감에 스트레스를 받던 너는 나에 대한 관심이 식기 시작했다.
온종일 짜증이 나 보였으며,밥을 먹고 나와 운동장을 걷는 대신 자리로 돌아가 인터넷 강의 영상을 틀었으며,
야자 중간중간 내 자리를 찾아오며 힘들다고 찡찡대며 근처 백다방을 가자던 퍽 귀여웠던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런 너를 보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저러다 잘못된 선택을 하진 않을까?, 반 얘들이 많이 시끄럽던데 자습시간에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을까?
너에 대한 모든 걱정과 근심이 나를 가득 채웠다.
나에게 관심이 퍽 식은게 보이는 너를 보며 괜스레 서운하고 미운 감정이 들 때마다 가끔씩 내게 웃음을 보여주던 너를 보면 그런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이러다 너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건 아닐까, 차라리 커밍아웃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일었으며 그 때마다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너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퉁명스러워진 너의 말 한마디에 그날 밤 내 이불은 눈물로 적셔졌으며,
가끔씩 기분이 풀려 내게 웃어주던 너의 얼굴 하나로 그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수능 전날이 되었고, 나의 시험 보다도 너의 시험을 응원하던 나는 정시로 내가 목표로 하던 서울의 나름 이름있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너는 끝내 수능을 망치고야 말았다.
내가 대학에 붙은 기쁨보다도 너가 수능을 망쳐 슬퍼하는 사실이 내게는 더 절망스러웠다.
그 슬픔을 나와 나누지 않고 주변과 연락을 줄이고 재수학원에 들어간 너에게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시간을 쪼개며 한 알바로 돈을 벌어 너에게 종종 재수학원 근처 카페의 커피와 피자,치킨, 음식점들의 기프티콘을 보내고, 너의 생일에 운동화와 옷을 사주며 힘내라는 말을 전하는 거 외에는 할 수 없었다.
가끔씩 재수학원으로 찾아가 밥을 사주었지만, 혹여나 나 때문에 공부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하진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거마저도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무사히 수능을 치룬 너는 꿈에 그리던 대학에 합격했지만, 대학이 갈라진 너와 나는 고등학교 시절처럼 같이 시간을 보낼 순 없었다. 그런 점이 또 나를 아프고 아쉽게 했다.
지금도 가끔씩 얼굴을 보고 너와 시간을 보내지만, 나는 더이상 이렇게 너와 지낼 순 없을거 같다.
더이상 너로 인해 아파하기 싫고,
더이상 너를 속이기엔 나에대해 혐오감이 일기 때문이다.
혹여나 이 글이 유명해지면, 유명해져서 페이스북 같은 sns로 퍼져나가면 페이스북을 자주 하던 너가 이 글을 보고 진실을 알 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나는 이미 너와 연락을 끊고 살고 있겠지만, 혹시라도 내게 할 말이 있더라도 나와 같은 생각일리는 없으니,
연락하지 말아주라 친구야.
고맙고, 미안했고, 사랑했어.
더 좋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너에게 느꼈던 그런 감정들을 느끼진 못할 거 같아.
미안하다. 잘 지내. 행복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