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반말하시는데 대체 몇 살이세요?”
“나? 팔오.”
“그래요? 나도 팔온데. 빠른 팔오. 1월생.”
김래원은 공효진의 빠른 팔오란 대답에 당황한다.
그는 이 팀장이다. 작은 회사라 그런지 회사 대표를 형이라 부르며 큰소리도 막 지른다. 가족 같은 회사. 수평적인 문화. 이런 회사에 공효진은 입사, 부사수로 들어와 사수인 김래원과 대치한다.
김래원은 회사 누구에게도 막 대하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막 들어온 사원에게도 막 대한다. 이를테면 술 먹고 밤늦게 전화 걸기.
가족 같지 않고 수평적이지 않은 관점에서는, 아무리 술에 취하고 제정신이 아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용납되지 못한다. 아무리 최근 파혼당하고 정신적인 충격이 크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해받지 못하며, 아무리 회사의 팀장이며 사수이고 대표이사에게도 막 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정당화되지 못할 행동이다.
그러나 그처럼 딱딱한 잣대가 촌스럽다고 사원들은 비웃는다. 단톡방에서 바로 앞 지척의 동료를 싸잡아 흉보고 욕하고 짓밟는다. 경계는 때론 용납되고 때론 용납되지 않는다. 어쩌면 경계마저 모호하다. 김래원이 출근할 때마다 사원들은 아침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김래원은 팀장이고 간밤에 술을 많이 마셨고 상처가 있는 몸이라 그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저 유유히 통과하여 구석 자신의 자리에 털퍼덕 앉아 자신이 보고 싶은 사람만 쳐다본다.
공효진은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김래원에게 도도히 냉정하게, 이 여자에게는 뭔가가 있다, 하는 미소를 풍기고 묘한 궁금증을 흩날린다. 김래원은 궁금증에 궁금하지 않으려 굳세게 참으려 하지만 밤만 되면, 술김에 빗장이 풀려 카톡을 날린다. 궁금하다. 좀 알려주세요. 궁금해요. 벌써 자요? 술 마시지 않고 커피만 한잔하면 안 될까? 기어이 비굴하다. 문득 김래원의 부은 눈이 보인다. 간밤에 술을 마시고 잠을 잘 못 자서 피곤하여 그런 건지, 단순히 나이가 들어 그리 보이는 건지, 혹은 영화 속 제정신이 아닌 장치적인 모습인지 여하튼 그의 부은 눈을 보자니 슬픈 동질감이 느껴진다.
얼마 전 모처럼? 내 무릎을 베고 텔레비전을 보던 아내가 밑에서 위로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한마디를 던졌다.
“당신, 눈이 왜 그리 튀어나왔어? 투투 같아.”
여기서 투투는 개구리 왕눈이에 나온 생물이다. 어떤 생물인지는 모르지만, 더 알고 싶지도 않다. 아마도 개구리겠지? 어쨌거나 단언컨대 한번도 눈이 튀어나왔다고 인지한 적이 없었다. 나로선 최근 거울 볼 때마다 더러 느끼던 터다. 어젯밤 잠을 잘 자지 못하여 그런가. 술을 마셔서 그런가. 피곤해서? 설마 늙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아무튼 그 말을 듣고 하하하, 웃으면서도 가슴이 저렸다. 다른 건 다 극복해도 눈 튀어나오는 건 극복을 못 하겠는데 손으로 눌러 집어넣을까. 세수할 때 지그시 눌러줄까. 얼음찜질을 해야 하나. 잠을 푹 자면 괜찮겠지, 수술은 없나? 검색하는데, 영화에서 김래원의 눈을 본다. 처음엔 영화적 설정인 줄 알았으나 정면 샷이 아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의 눈은 다시금 들어갈 줄을 모른다. 김래원. 정이 가는 배우다. 예부터 잘생겼다고 여겼는데 내 눈에 잘생긴 넌 지금도 여전하구나 하는, 객관적이기를 떠나 나만이 공감하는 그러한 동질감이 생긴다.
공효진은 역시나 뭔가를 가졌구나. 뭔가를 가졌기에 그처럼 뭔가를 가진 궁금증 유발 가루를 흩날렸지. 여기서 뭔가는 보통의 흔한 남성이 보통 흔하게 넘어가는, 흔하지 않은 여성의 매력이다. 흔하지 않은 그 매력은 객관적이라기보다 보통 발견한 남자만이 알아채는 것인데 알게 되면 저만이 그것을 안다는 점에서 흔히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라 여긴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면 취할 때까지 마시고 두 얼굴을 보여준다.
입만 벙긋하는 게임. 지극히 입술에 집중한다.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찌릿찌릿, 누구도 알 수 없는 신호를 나만이 독점하는 쾌감에 지지직, 전기신호가 온다. 못 할 말이 없다. 젊은 남녀가 둘이서 할 수 있는 궁극적인 대화. 옆에 견제하는 이가 없을 때 할 수 있는 최후의 언어. 둘이서만 나누기에 서로를 위해 새어나갈 리 없는 비밀을 만들고 공유한다. 둘이서만 마주 보며 속삭이는 비밀은 둘 사이를 보다 돈독하게 만들어 미증유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호기심은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되어 밤늦은 시간, 술 마시고 나서 잠들기 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게 한다. 잠시 망설이다 기어이 카톡을 보내거나 통화를 시도한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서 너도 그런 생각을 할까? 하는 궁금증.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귀는 쫑긋, 눈은 튀어나온다.
결국 대답이 없는 밤이 지나고 아침까지 속은 바싹 마른다. 예컨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미증유의 호기심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뭉개져버린다. 아침이 시작되고 밤이 오면 다시금 공기가 차오른다. 호기심으로 눈이 튀어나온 김래원은 공효진의 벙긋거리는 입을 보고서 비로소 웃을 수 있다. 술 마시기 전까지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오지 않던 답신. 처음부터 사수로서 반말이나 팀장이란 직함으로 부사수의 포지션을 명확히 하고 눈만 부라리며 거느리려 했다가, 나도 팔온데, 그것도 빠른 팔오, 에서 마침내 나랑 같은 궁금증을 가진 가장 비슷한 생물이 너구나. 그래서 이처럼 끌리는구나.
이런 게 가장 보통의 사랑일까. 하고 카톡을 보낸다. 입은 술 먹을 때 필요하고 말은 카톡이 한다. 답장 없는 메시지는 답장 있는 메시지에 비교해 그 간극이 엄청나다.
내가 볼 때 휴대폰은 가장 보통의 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