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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구리 소년의 진범이다.

쟈샤ㅡ |2019.10.09 08:35
조회 1,605 |추천 0

소년들은...


해는 어둑 저녘 무렵 이었다

개구리 잡는것도 별로였고...

그때 한 아이가 아이디어를 냈다

총알(탄두)을 주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찌그러진 총알을 줍는 것이었다

해당 주민들이 이미 수북히 쌓여있는 찌그러진 총알을 주어 재미를 봤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구리였기에 돈이 되었다

소년들은 사격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때 마침 야간 사격이 시작되었다

야간 사격은 일정 시간동안 무작정 사격이다

이후 소대원들은 철수하고 선임 하사가 사격 용지를 수거하러 갔을때

신음 소리..

소리에 달려가 보았지만 이미 손을 쓸수없는 상태

급하게 소대장을 불렀다

사건은 보고되었고

진급을 앞둔 그?의 명령에 따라 몇몇이서 비밀리에 사건을 수습하기에 이른다.

대대적인 수색작전이 시작되었지만 군 비밀 장소라 하여 아이가 묻힌곳은 수색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20년이 흐른것이다

이상 내가 상상한 추론이며 거의 맞을 것으로 사려된다


************************

총소리..
산을 넘으면 식별하기도 힘듭니다
당시 주위엔 민가도 그리 많지 않았구요
당시 와룡산은 첩첩 산골이었습니다

이러면 어떨까요?
영관급 장교들이 사냥을 나갔다면?
요즘은 모르나 당시엔 전방 같은 부대에선 m16으로 종종 사냥을 다녓습니다
사냥도 낚시랑 같아서..
한 번 맛 들이면 쉬~ 끊기 힘듭니다
전방 부대에서 전근 왔다면 더욱 그렇겠죠
소음기를 달았으면 총 소리 그리 크게 나지 않습니다
개네들 날마다 사냥 다녀서 사격 실력 정말 좋습니다

어둑한 식별이 어려운 저녘 무렵
짐승인줄 오인하고 쌌을수도 있지요

문제는..
5명이기에 한 명이 쏘진 않았다는 겁니다
필경 3~4명의 동행이 있었구요
엄청난 일을 저지른터라 둔기(큰 돌)로 머리를 내리쳐 확인 살인을 햇을 겁니다

군 사격외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촌 애들 정말 재 빠릅니다
산도 엄청 잘 타죠
한 두번 다녔던 장소가 아닌지라 길도 익히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숨는 장소 비밀 장소 다 있습니다

누군가 꼬임에 빠져 따라갔다고쳐도
5명을 한꺼번에 해 치울순 없다는 겁니다
누구라도 튀지..
어떻게 개네들을 다 처리할수 있었을까요?

군인외엔
사격외엔
그 어떤 설명도 안 됩니다

당시 군인들의 특권은 이루말로 형용할수 없던 시기이기였으니까요

3만을 동원한 대규모 수색도 그렇습니다
'군사보호지역 수색 불가'라면
당시 정보부, 대통령외엔 아무도 못 건드리는 지역입니다
잠잠해지고 시체를 옮길수 있었겠지요

유골 발견 모습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허술한데 어찌 3만 동원 수색시 발견되지 않앗을까요?
옮겨 놓앗기 때문입니다
군사보호 지역에 두었다가
나중에 옮긴 것입니다
*******
사격 기록은 삭제하면 됩니다
영관급들 사냥이라면 더욱 그렇겠네요
도룡농이던 개구리든 부모님들에게 핑계를 둘러댄게 분명합니다
다른 목적으로 산에 간 겁니다

***
이건 어떨까요?
앞서 글처럼 개구리든 도룡뇽이든 그건 부보님께 둘러댄 구실에 불가하다면 부모님을 속이고 산에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연 부보님이 반대하는 일이었고(부모도 알고 있는) 아무런 제제가 없었던 촌이라고 보면 필경 군 부대에 접근하는일 밖엔 없었을 겁니다
비단 탄피가 아닐수도 있습니다
몰래 군부대에 뭔가를 뺴내 팔아먹는 것일수도 잇구요
이를 오인한 장병이 사격을 했고..
암튼 어떤일이든 아이들에겐 익숙한 일이엇을 겁니다

촌 아이들은 재빠릅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지요
어른 하나가 아이 둘을 잡을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규모 어른들이 투입되어 아이들을 죽일수도 없는 문제이고 이일은 군인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

***
개구리든 도룡뇽이든 그것이 핑계일거라고 단정 한다면
아이들은 다른 목적으로 산엘 갔고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시키고 갈, 부모님들이 당시 못하게 할 그것만 밝히면 되거든요'
촌이라서 부모들이 못하게 하는게, 몇 가지 이내이고 아주 단순합니다
바로 군 부대에 접근하는 일이겠네요

나에게 수사권만 잇다면 밝힐수도 잇겠습니다


**************

어느 골빈넘이 유골 조사 결과 총에 맞은 흔적은 없다던데..

화장터에서 어른을 태우면 어른은 유골이 고스란히 남지만 아이는 뼈조차 남질 않고 다 타 버린다

현 유골이 남아 있다면 해골뿐으로 이미 뼈까지 다 썩은 상태에서 총에 맞았는지 진위는 확인할수 없다


또한 아이 사체를 4~5년후 범인들이 이장을 했다면 물론 총 맞은 부위는 다른 흉기로 위장하든지 도려 내었을 것이다

거의 섞어들어가는 해골에 총 자국이 있으면 망치로 살짝치면 망치자국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군사보호 구역에 매장후 후임에게 이장을 지시했을지도 모른다


***

유추해가면 쉽게 문제를 풀수 있다

앞서 밝혔지만

초등6, 중1~2의 촌 애들을..

어른 2~3명이 전부 제압할수 있을까?

천만에

촌 애들은 날 짐승처럼 재빠르다

나두 어릴적 수박서리에 따라가 보았지만

야산에서 튀는데 수십간에 사라지고 없더라

내 생각엔 어른 5명이 한 명씩 제압에도 두, 세명은 놓칠것 같다

그렇다고 칼 따위에 위협을 받을 애들도 아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유혹하여 동굴 같은곳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군사시설이면 모를까 당시 와룡산엔 동굴 같은곳은 없다(나두 많이 다녔음)


결론적으로 총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 사건이다


다음은 연쇄살인마를 생각할 것인데

연쇄 살인마가 떠거리로 무리지어 산에 오르는 일은 인류말까지 없다


더구나 아이 유골이 발견된 이상 납치, 인신매매 실패 또한 사절이다


이 모든것을 종합해 볼 때,

군인이 아니고서는 답이 없다.


91년이라면,

당시 최곳점을 찌르던 군권력이 김영삼 눈치를 보며 한참 몸을 도사릴때다

군 지휘관 모두 이런 엄청난 사건이 터져 군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위협을 감수하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군인들은,

자신보다 군 전체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명령 체계의 살인은 하나의 명령으로 보지 절대 살인이라 여기지 않는다

죄책감에 대한 애기다




더구나...

아이들이 그렇게 애기했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

어쩌면 개구리 소년 실체는 모두가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일수도 있다

진정 의도적은 아니었고 사고임엔 틀림없지만 생각보다 사건이 거대하게 커졌고

진실을 캐기엔 군사적,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컷을수도 있다


군 간부층, 김영삼 정부 모두가 합작일수 있다

그러기에 인원 3만명 수색이라는 해프닝 쇼도 가능햇을지도 모른다


와룡산은 그리 크지 않다

한 명이 10평만 수색한대두 3만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그저 길가에 묻힌 유골을 발견하지 못햇다는 사실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이는 이장이 필수이며 와룡산에 다시 묻엇다면 몇가지 유추할수 있다

사체가 발견지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

충분히 사체가 썩은후 이젠 식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서니(약 3년 이상 추산)그렇게 허술한 곳에 묻어버렸다는것(아님 산속 깊숙이 사람 통행이 불가한 곳에 묻엇을 것이다)

그렇게 장기간토록 가매장지를 숨길수 있는곳은 군사보호구역 밖에 없다는것


물론 군사보호구역이었던곳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이장을 햇을수도 있다

추천수0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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