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마지막으로 쓴 게 여름이었나요?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이럴 때 감기 조심하시고, 독감주사도 꼭 맞으시고요.
저희는 이사를 했습니다. 제 가출이 다소 충격적이었던 건지, 저희 집으로 W가 절 찾으러 왔던 날 이후 언젠가 W가 밥을 먹다가 그러더군요. 이사갈까.
그 전에 이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던 터라 적잖이 놀랐습니다.
갑자기? 왜? 하고 물었죠.
그냥, 좀 더 넓은 집으로.
라고 하기에, W의 집에서 둘이 지내기에 약간 불편했던건가 생각했죠. 전혀 좁은 집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면 밤에 잘 자는 저와 달리 예민한 W는 자다가 종종 깨기도 하는데, 그래서 각방을 쓰고싶은건가 생각하기도 했고요.
각방 쓰려고? 하고 물었죠.
W가, 음.. 아니? 라고 답하기에 안도했습니다.
니가 원하면 그래도 돼, W가 말하기에, 그럴 리가. 하고 답했습니다.
W가, 너 못 나가게 하려고. 라고 말해서 전 처음에 농담하는 줄 알았어요.
앞으론 말도 안하고 안 나갈게, 약속했잖아. 라고 대답했죠. 근데 정말 그것 때문에 이사생각을 했나보더라고요.
너네 집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나간 거 같아서.
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W를 보면서 제대로 말해야 되겠다 싶었죠.
너가, 같이 있는 걸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나간거야. 말했다시피 화나서가 아니라. 그렇지만 앞으론 그런 일 없을거야.
W가 그러더라고요, 너와 같이 있어서 힘들 일은 없어.
웃음기 없이 그렇게 말해줘서 기분 좋았습니다. 그리고 상세하게는 모르지만 그 때의 W는 당시 집안문제 여자문제 뭐.. 그런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아직도 해결은 안 된 것 같고요. 잠시 소강상태.
어쨌거나 저희는 이사를 했습니다. 방도 하나 더 생겼고요. W의 허락을 받고 방 하나는 운동기구로 채우고 있습니다. 헬스장을 만들 셈이냐고 하더라고요. 약간 그럴 셈입니다. 아파트 내에 헬스장도 좋긴 한데 또 제 로망도 있는 터라. 저는 피규어수집이나 게임같은 별 다른 취미생활이 없는데 운동기구 욕심은 좀 있어서요. 헬스장 완성되면 사진으로 슬쩍 보여드리겠습니다.
집 구하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어요. 위치도 전보다 더 좋아졌고 전망도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W 집은 생각보다 처분이 잘 됐는데 제가 살던 집은 처분이 쉽지 않아서 그 것 때문에 약간 애먹었네요. W는 신경쓰지 말라고 하기에 그 능력에 또 한 번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남자한테 질투했던 건.
예전에 강릉에서 만났다던 김군 기억하시나요? 저희가 셋이서 자주 어울리는 편입니다. 김군이랑 그 때 사귀고 있던 최군은 헤어졌습니다. 셋이서 어울리다가 김군이 종종 자기 친구들을 부르기도 하는데 동성애자 친구들도 있고 이성애자 친구들도 있습니다. 동성애자 친구들을 부를때면 항상 미리 말을 했어요. 이번에 오는 애들은 어떤 애들이라고.
그 때도 셋이서 술 먹다가 친구들이 근처에 있다고 불러도 되냐기에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들어온 친구가 남자하나 여자하나였죠. 너무 다정해보여서 저는 당연히 둘이 사귀는 사이인줄 알았고, 남자도 이성애자인 줄 알았습니다. 미리 말을 안해줘서.
당연히, 김군도 자기 친구들이 동성애자라고 해서 저희 관계를 먼저 말하지는 않아요. 김군의 친구들하고 잘 맞는다 싶으면 저희가 먼저 말을 한적도 있기는 합니다만 굳이 물어보지 않는데 나서서 말하는 편은 아니고요. 눈치채면 거짓을 말하지는 않지만 또 눈치챌만큼 티나게 행동하지도 않고요. 밖에서는 굉장히 조심합니다. 괜히 시선 받기 싫어서요.
구구절절 서론이 길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때 왔던 김군의 친구 중 남자가 W 옆에 앉았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는 주의긴 하지만, 어쨌든 굉장히 화려한 친구였습니다. 좀 노는 느낌이랄까. 타투도 많고 귀랑 목이랑 팔에 악세서리도 많고요. 얼굴에도 뭘 바른거 같았고요. 화장 같은거. 그 타투친구가 알바로 모델일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떤 모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 모델 말하는 건지 아니면 쇼핑몰 모델인지.
같이 온 여자친구도 굉장히 화려했고요. 모델느낌나는 커플이었습니다. 다같이 술 마시면서 서로 알아가는 와중에, 그 여자분이 W에게 손한번 보자고 하더라고요. W가 손을 잠깐 펼쳐서 보여주고 이내 접는데 그 타투친구가 W 손을 잡아서 당기더라고요. 둘이서 W 손을 만지작거리고 보다가 여자분이 손이 왜 이렇게 크고 예쁘냐고 손모델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W가 웃으면서, 난 그런 거 몰라, 하고 손을 거두려는데 그 타투친구가 W 손을 깍지를 껴서 잡더라고요. 그 때부터 제 심기에 괜히 거슬리더라고요. 그럴 이유가 딱히 없는데도. 물론 W는 금방 손을 빼긴 했어요. 더워, 라고 말하면서.
그 뒤로도 타투친구가 W에게 좀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처음보는 사람이 W에게 그런 관심을 보이는 게 보기 드문 광경은 아니라서 그러려니 했죠. 근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관심이 좀 더해지는 것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였죠. 아닌 척 자연스럽게 W를 만지작거리는것도 계속 눈이 띄고요.
W의 어떤 농담에 그 타투친구가 멱살을 잡으면서 죽을래, 라고 말하는데 그러고도 목을 감싸고 안 놓더라고요. 그냥 행동 하나하나가 다 거슬렸어요. 옆에 여자친구도 있는데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게 웃기다, 마인드컨트롤을 하려고 애썼지만.
모델여친의 뭔가 재밌는 말을 했는데 W가 웃지 않은 때가 있었어요. 딱히 억지로 웃어주는 성격은 아니어서. 그 모델여친이 W에게, 야 재미없어도 좀 웃어주라.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W가 응, 하면서 살짝 웃으니까, 너 왜 그러고 웃어 사람 설레게?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타투친구가 W 얼굴을 자기 쪽으로 돌리더니, 그러게. 사람 설레게 웃네. 라고 하더라고요.
저런 말을 커플 둘이서 하는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원래 장난스럽고 쿨한 커플인가보다 했어요. 다른 남자한테 설레게 웃는다고 말하는 여자나, 그 여친말에 맞장구 치는 남자나 저한텐 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러다가 그 모델여친은 다른친구 온다고 해서 가버리고 김군, 타투친구와 저희 이렇게 자리를 옮겼죠. 앉다보니 W와 타투친구가 나란히 앉고 저와 타투친구가 마주보고 앉게됐죠. 옮긴 술집은 좀더 어두웠는데, 어두워서인지 술에 취해서인지 친해졌다고 생각해서인지 아까보다 더 대놓고 W를 만지더라고요. W의 뺨을 쓰다듬기도 하고 W 팔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요.
신경쓰였지만 모르는 척 하고 있었는데 W가 가볍게 말하더라고요, 근데 너 왜 이렇게 만져. 타투친구는 장난으로 대답하더라고요. 아 미안 그냥 내 습관이야, 라고. 그러다 김군이 잠시 자리를 비웠던 적이 있는데 그때인가, 타투친구가 묻더라고요. 너넨 애인 있어?
물론 지금 읽다보면 눈치채실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엔 저도 W도 전혀 눈치 못 챘어요. 먼저 간 여자가 당연히 여자친구인줄 알았고요. 눈치를 못 챘기에 저흰 저희 관계를 말할 수 없었고 둘다 사귀는 사람 없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타투친구가 저한테 여자소개해줄까 묻더라고요. 아까 간 애 예쁘지 않아? 하기에, 그냥 뭐. 라고 대답했죠. 걔 친구들도 예쁜 애들 진짜 많아, 하기에 제가, 아니 난 그런거 어색해서.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했죠. 저를 보고 여자들한테 인기 많겠다 너, 라고 말하면서 W한테는 그런 말을 안하더라고요? W한테, 넌? 넌 여자한테 관심 있어?. 하더라고요. 무슨 질문이 저렇지, 생각했어요. 전 이미 신경이 곤두서있었던 거 같아요. 오히려 생각보다 W가 무신경해서 좀 답답할 지경이었고요.
W가, 왜? 물으니, 넌 별로 여자한테 관심없어보여. 하더라고요. W가, 난 아무한테도 관심 없어. 라고 말하면서 화제를 피하더라고요. 사실 더 신경 거슬리는게 많았는데 시간이 꽤 흘러서 더 다는 기억이 안 납니다. 김군 오고나서는 그런 얘긴 더 안 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김군 다른 친구들이 더 오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뭐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W에게 친구 이상의 관심을 보였던 건 사실이었고 뭐.. 그 모델여친이랑은 사귀는 사이는 당연히 아니었고요.
다음날엔가 제가 W에게 물었죠. 이젠 괜찮아? 했더니 뭐가? 하고 되묻더라고요.
제가 말했죠.
다른 사람이랑 닿이는 거.
싫어. 싫은데, 예민떨기 싫어서. 라고 하더라고요.
좀 정신병자처럼 보일까봐. 라는 말도 덧붙여서.
생각보다 과격하게 대답을 하길래 제가 아무말 못하고 있었는데 W가 그러더라고요.
김군은 알잖아. 라고.
제가, 뭘? 하고 믈으니,
너랑 나. 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제가, 그래서? 하고 다시 물었죠.
나는 너랑 만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까칠한 사람처럼 보이기 싫어.
제가, 실제로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신경 써. 하고 말했죠.
W가 그러더라고요.
나랑 만나는 게 힘들어보인다고 할까봐. 그런 말 듣기 싫어서.
몇 번인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엇던 건 사실입니다. 김군이나 김군 친구들에게나. W 만나면 마음고생 많이 하겠다, 맞춰주기 힘들겠다. 바람안나게 단속해야겠다 뭐 등등등. 그게 신경쓰였나보더라고요. 그 말을 하는 W가 문득 너무 귀여워서 제가 W를 끌어안고 마구 키스를 해댔습니다. 전혀 힘들지 않아, 라는 말과 함께요.
내 피해의식같은 거야, 라고 말하더라고요.
대체 피해의식 같은게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뒤로도 뭐 타투친구랑은 몇번 더 얽히긴 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저희가 사귀는 사이라고 바로 말할걸 그랬어요. 제가 전에 질투했다고 했는데 막상 써놓고 보니 너무 별거 아닌거 같아서 굉장히 속좁은 인간 같네요. 문득 반성하고 갑니다.
올해가 가기전에 올게요. 또 봅시다.
그때까지 무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