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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VS 천주교

한 작은 단어, '오직'이 몰고 온 개혁의 바람

'믿음만으로! 은혜만으로! 성경만으로!

비장함마저 숨겨져 있는 이 구호는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부르짖은 사상의 핵심을 딱 꼬집어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철저히 복음 중심,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개혁이란 말의 의미가 원래의 것을 회복하기 위해 현재의 것을 새롭게 고치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학자 루터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놓쳐버리고 있던 그 무엇을 회복하기 위해 개혁의 깃발을 들었을까.

 

사실 루터 스스로 종교 개혁의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려 시도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시대적 요청에 그가 쓰임 받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당시 루터의 사상은 기세등등하던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권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경의 권위와 성령의 영감, 하나님의 은혜,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완전히 묵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루터의 신학사상이 급진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그가 부르짖은 한 작은 단어, '오직'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저 밑바닥에 하나님중심이 아닌 인간의중심의 종교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교황의 권위가 버젓이 자리하고, 은혜를 율법의 의를 쌓는데 도움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실한 믿음이 아닌 선행과 공로로 얻는 행위 믿음만을 그들은 강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루터는 그 사실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란, 하나님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죄인을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또한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만이 단번에 모든 율법을 성취하여 인간을 의롭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만이 신학과 교리의 최우선적 권위가 되어야 하며, 성경을 해석하는 교황의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빼 보라.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서 무엇을 더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루터는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성경의 일관된 주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설파했습니다.

복음이야말로 성경을 해석하는 표준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만이 구원을 얻는 오직 한 길이 된다는 '유일성'을 강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결국 천주교 세력은 복음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루터를 정신병자, 미친 사람 취급하며 이단으로 기소했습니다. 그로 인해 1521년 1월 3일, 루터는 공식 파문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황청의 추방 명령 이후 루터는 지방 제후의 도움으로 바르트부르크성에서 숨어 지내며 독일어판 신약 성서를 펴내어 지속적으로 말씀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루터와 함께 로마 카톨릭 교회와 맞서 복음의 유일성을 회복하고자 개혁을 시도한 전도자들의 행진은 계속되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 말씀의 사역자'라고 주장한 요한 칼뱅은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의 기독론에서 그리스도의 삼중직인 왕, 선지자, 제사장을 언급했습니다. 더불어 말씀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 증거, 초대교회의 말씀운동을 회복하고자는 운동을 계속해서 전개해 나갔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존 웨슬레는 올더스게이트 거리의 한 종교 모임에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접하고 신앙생활에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단 한 사람이 남아 있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위해 땅 끝까지 달려갈 것'이라 선포하며 현장에 나가 순수한 복음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는 50년 동안 지구 열 바퀴 이상이나 되는 거리를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선교 비전, '온 세계가 내교구'라는 말 속에는 영혼 구원을 향한 불타는 전도자의 사명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 영국 부흥의 무결을 이루는데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복음의 바통은 전도자 드와이트 무디에게 넘겨졌습니다. 무디는 거의 종일 현장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로 인해 일생 무려 백만 명 이상의 영혼이 주님께로 인도되었습니다. 미국 초창기 선교사 과반수가 무디 성경학교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말해 줍니다."설교에서 복음을 뺀 날은 설교가 틀린 날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유일성의 복음을 강조했던 무디는 일생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듯, 하나님은 복음이 희미해지고 교권이 강해질 때마다 복음의 유일성을 깨달은 전도자를 세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교회사적으로 큰 신앙의 발자취를 남긴 이들의 유일성 복음에 관한 사랑과 열정은 21세기, 새로운 영적 위기에 직면한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강력한 도전과 사명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안타깝게도 오늘날 현장에서 유일성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꼭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다원론多元論 사상이 버젓이 신학교 교과목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말인데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게다가 통일교, 증산교,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각 종교계에서 통합론統合論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함께 가자는 것입니다. 변화와 통합을 주장하는 시대적 흐름에 걸맞게 겉으론 참 그럴듯하고 매력있게 보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연합聯合이 아닌 혼합混合이기에 큰 문제가 됩니다.

이 말을 종교가 틀렸다는 뜻으로 곡해해선 안 됩니다. 종교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종교가 인간의 영적 어려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저주, 원죄문제를 해결하고 사탄의 세력을 꺾는 길은 되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만이 이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 아니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복음의 유일성이 대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계속해서 재앙이 일어나는 이유는 종교가 하나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영적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재앙으로 몰고 가는 영적 존재인 사탄의 세력을 꺾는 길인 오직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요, 예수만을 전파하라는 말은 결코 독선이 될 수 없습니다. 중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이 약을 먹어야 낫는다고 말하는 것, 불속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저 문으로 나가야 살 수 있다고 말해 주는 것이 어찌 독선이란 말인가.

그런데 더 가슴 아픈 현실은 복음 외에 다른 것을 강조하는 교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복음 외의 것에 괌심을 두거나,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성도 개개인은 체질적으로 복음이 희미해지고 결국은 아예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모든 교회는 '오직 복음'의 중심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성령 충만의 힘으로 유일성의 축복을 회복해야 할 분명한 사명이 있습니다

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가? (행 4:12)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됩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까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여러 개 있다고 가정한다면,

하나님을 쉽게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길은 오직 한 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도록 창조되었는데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생활이 불행을 가져다주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

성전 지성소의 커튼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성소는 하나님이 이름을 두시려고 특별히 정하신 처소이며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 하나님을 만나러 들어가던 성소안의 공간이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아직도 고해성사 즉 성직자를 통해야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하는가 보던데...

개신교는 언제든지 회개기도한답니다.

추천수2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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