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서 모났다는 말도 못들어봤습니다.
외모도 그냥저냥 괜찮다는 소리 많이 들었고 성격나쁘다는 말도 못들어봤고 꿈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고 마음이 있는 그냥 한명의 사람입니다.
제 기억은 유치원때 부터입니다.
매일이 비교였고 차별이였습니다. 저는 밖에서는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집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아니였습니다.초등학교에 들어가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한글을 쓰는 것도 서툴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생일파티를 했는데 아무도 안왔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가 성격이 그러니깐 그러지"
반면 누나는 저와 달랐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성경을 읽을 정도로 말하는 것과 글이 익숙했고 수학도 잘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이런말을 들었습니다."니 누나는 잘하는데 너는 왜..."받아쓰기 시험 같은걸 볼때마다 맞았습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친척들도 모자란애라고 저를 무시했습니다. 어느날은 친척동생이 저를 너무 무시하며 깐죽거렸습니다."니까짓게?"이런 뉘양스였습니다. 저는 그 애를 때렸고 한참을 더 많이 맞은 저는 역으로 혼났습니다. 그때부터 시골에 가면 방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는 남자가 소심해서 못쓰겠다. 남자답지 못하다. 공부도 못한다. 매일같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저 칭찬한번이 듣고 싶어서 항상 학교에 남아 공부를 했습니다. 담임선생님 옆에 앉아 하염없이 책을보고 공부를 했습니다. 결국 모든 과목에서 100점을 맞았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니 누나는 항상 100점이였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100점은 당연한거야."저는 전학을 갔고 또 다시 왕따를 당했습니다. 왜일까요. 제가 만만해 보여서 다들 저를 따돌리는 거일까요. 부모님한테 이야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습니다."남자새끼가 되가지고 그런거는 니가 해결해야지. 맞지만 말고 너도 때려."심지어 초등학교 영어선생이 따로 있었는데 제 발을 밟고 정강이를 차면서 무시했습니다. 말해도 해결되는것은 없었습니다.(2019년 교도소 갔다고 한 기사봄)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지역에서 가장 빡센 중학교였죠. 첫 시험을 봤고 저는 118등이 나왔습니다. 총 인원 362명입니다. 저는 이게 낮은 등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때 저는 문제 하나를 맞추면 잘맞춘 편이였고 노력을 해서 받은 등수였으니깐요."니 누나는 전교 10등안에 들고도 혼났는데!"또 맞았습니다. 저도 노력했다고 말했는데 오히려 더 맞았습니다. 저는 공부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때부터 만화를 그리거나 소설을 썼습니다. 검도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중학교 때도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2학년때 인생친구를 만나 나아졌지만 다른 애들은 대놓고 왕따를 시켰죠. 초등학교 6학년때 잠염에 걸렸는데 염증이 터지기 전까지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결국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며 실려간적이 있습니다. 그 탓일 까요 저는 하루종일 화장실에 가게 되었습니다.중3 마지막이 될때 저는 고등학교를 골라야했습니다. 검도 금메달이 2개였고 은동메달이 1개씩 있었습니다. 그림은 모두가 잘그린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소설은 모르는 애들도 찾아볼 정도였습니다. 저는 제 재능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검도, 그림, 문예창작, 베이스기타. 제가 꾸준히 했던 것들이 저의 재능이 되고 앞으로 나갈 주춤돌이 되었습니다."그딴걸로 돈도 못벌어 먹고 살텐데, 공부나 해라."싫다고 했더니 이러더군요. 그 발언, 표정 분위기가 모두 기억이 납니다."내 집에서 나가.""xx고 못가면 내 자식도 아니다. 남자새끼도 아니야."결국 xx고 갔고 똑같은 애들한테 따돌림 당하고 성적은 바닥을 기었습니다.반대로 예체능 쪽은 항상 1등급. 고등학교 3년 내내 엎드려서 잠만 잤습니다. 성적이 너무 답이 없어서 미술학원을 보내줬는데 당연히 먼저 시작한 애들보다 못합니다."너 재능 없으니깐 돈도 안되는 거 그만하고 공부나 더 해라."미술학원 못가게 되었습니다. 검도도 못하게 합니다. 베이스기타? 그거 사준거 10년이 지났는데도 뭐라합니다. 누나? 인서울 붙었는데 아버지 욕심때문에 재수합니다. 맨날 술마시고와서 누워있고 뒤치닥거리 제가 합니다."니네 누나 재수하니깐 너가 고생좀 해라. 넌 남자잖아"무시당하는게 싫어서 한번 공부를 빡세게 한적이 있습니다. 등수는 기억안나고 올 3등급 나왔습니다. 당연하지만 혼났습니다. 그딴 성적 들고오냐고. 다시 공부안하고 수능 올 8등급나옵니다.(법과 정치만 1등급 죽을거 같아서 공부함.)누나 재수 실패. 당연합니다. 원래 인서울이였는데 1년 내내 갈구고 감시했으니깐요. 자기한테 왜그러냐니깐 죽이려고 하길래 문 잠갔더니 망치로 문 부셨습니다.저도 대학갈 때가 됬는데 당연히 성적안됩니다. 저는 지잡대라도 상관없으니 디자인이나 문예창작학과를 가고싶었습니다. 어림도 없었죠. 항상 듣던말 들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니 이때 그냥 막노동하더라도 집나와서 살았어야 됐네요.원하지 않은과 지잡대. 좋은건 집에서 나와 자취한다는점?(손벌리기 싫어서, 빛지는게 싫어서 공부 개 빡세게해서 수석으로 전액장학금 받고 다녔습니다.) 학교 다니는 내내 학과 생활보다 밴드부에서 음악하고 검도부에서 검도했습니다. 21살때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전과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림도 없죠. 다시말하지만 이때 집 나와야됬습니다. 학교에 있을때는 검도대회상금이나 밴드, 힙합 공연비로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집에만 가면 니네 누난 공부해야되니깐 너가 일하라고 너가 뭐가 힘드냐고 그럽니다.22살 군대갔습니다. 가자마자 차이고 관심병사 등록됩니다. 자대가서 적응하려고 했지만 열이 39도 이상을 계속 유지했고 많이 상해있었던 하체가 행군으로 완전 망가졌습니다. 근무서다가 열때문에 쓰러지고 불침번됬는데 수면제 먹고 쓰러졌습니다. 네 폐급이죠. 저도 이런제가 너무 싫었습니다. 결국 첫휴가(신병휴가)써서 집에 갔는데"남자새끼가 허약해서 그렇게 운동좀하고 성격좀 바꾸라니깐."진짜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결국 무릎부상이랑 환청 환각 증상이 심해져서 전역합니다. 한참을 정신치료를 받고 물리치료를 받았습니다. 당연하지만 이때도 일시켰습니다. 심리치료하는데 원인이 아버지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집가면 진단내용 물어봅니다. 약먹고 있는데 니가 나약해서 약에 의존하는거라고합니다. 치료중단하고 약 중단됬습니다.결국 학교 때려치고 글에 관련된 과가 있는 학교로 재입학합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손벌리기 절대 싫어서 수석 유지했습니다. 여자친구도 다시 생겼습니다.학교 졸업직전까지 뭐..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거 같네요. 그나마.이제 아버지가 아버지로 보이지도않습니다.머리스타일 옷스타일 공부 과제 여자친구 동네친구 학교친구 말투 성격 돈까지 다 자기스타일로 맞추려고합니다. 은행에 돈을 좀 모아놨었는데 다가져갔습니다.대학졸업하고 여자친구하고도 헤어졌습니다. 저보고 그러더군요 1년동안 하고싶은거 하라고 터치안하겠다고.지금 1년 거의 다갔는데 1년 내내 돈안버냐고 직장안구하냐고 가게일하라고 뭐가힘드냐고 합니다. 지적질은 여전하고요. 참고로 1년동안 공부했습니다. 자는시간 줄이고 작업했고요.결국 이번에 대판 싸우고 아무직장이나 구해서 안보고 살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도 남편,아버지 자격없다면서 전에 가져갔던 돈 돌려준다고 그걸로 자취하라고하네요.20년동안 칭찬한마디 듣고싶었는데 믿음 하나 얻고싶었는데 결국 상처만 남고 가네요.너무 답답하고 이야기할 곳은 없어서 끄적였습니다.
쓰다보니 두서없이 적었는데
20년동안 자기 실패한 인생이라고 자식을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다가 실패하니깐 실패작취급받았다는 내용입니다.
남들은 아버지랑 싸우면 나중에 후회한다. 이해해봐라 하는데 죽어서도 원망할거같네요.매일 눈떴을때 죽고싶은데 니 정신머리가 썩어서 그런거라는 소리 이제 안듣게되겠네요. 원래 돈 벌면 다 가져갔거든요.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쓰니깐 좀 맘이 편해지는 거 같기도하네요. 이해해달라는것도 조언을 얻으려고 쓴것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