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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 문제로 아빠에게 폭언을 들었습니다.

ㅇㅇ |2019.12.28 10:23
조회 149 |추천 0

안녕하세요. 20대 후반 정도의 여자입니다. 정말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제 상황을 돌아보고 싶어져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어요.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혼가정의 편모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형제관계는 저 포함 2자매입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저는 외가, 친가를 전전했으며 중학교 때 1년 여정도 아빠와 새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타 지역에 사시던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집은 엄마가 얻은 소위 말하는 13평짜리 ‘주공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으며, 당시 양육비는 아빠가 가끔(1년에 두세 번) 오시면 화장지 생리대 등등의 생활용품을 사주는 것, 저희가 무언가(책이나, 학교 준비물, 옷 등등)가 필요해지면 전화해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사야하는데 얼마가 필요해요. 하고 말씀드리면 계좌이체 해주시는 방식으로 지급되었습니다.

이러했기 때문에 전화통화를 하면 돈을 보내 달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어야 했고 아빠는 역시나 돈이 필요해서 전화했구나, 내가 돈 내는 기계구나. 라고 비아냥대는 말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정말 필요한 것이 생겨도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이 무서워 전화를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다가 제가 입시실패를 겪고, 재수학원을 다니던 해부터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양육비를 부담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하시곤 지원을 끊으시겠다 하셨습니다. 재수학원을 2어달 다녔으나 엄마와 동생한테 너무 미안한 마음에 끊고 독학했습니다.

재수를 끝내고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아빠께 어렵사리 부탁드리니 첫 입학금은 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턴 거의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네요. 후에 이 장학금으로도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등록금의 반 가량을 장학금으로 받았었습니다. 제 계좌로 입금이 들어왔었는데, 이걸 아빠한테 자랑삼아 말씀드렸더니 그 돈을 아빠한테 부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학비 제외하곤 어떠한 지원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 돈을 교통비, 식비, 책값 등등의 생활비로 충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축하해주실 줄 알았지, 설마 그 돈을 등록금을 내줬으니 본인 돈이라며 달라고 하실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충격받은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아빠와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러다가 친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셨습니다. 동생이 병문안 갔더니 중환자실에 계시더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빠가 동생한테 절대 네 언니 못 오게 하라고, 얼굴 보이면 가만 안 둔다. 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가서 뵙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부모님의 이혼사유가 가정폭력이었고, 아빠는 만약 병원에서 저를 마주치면 때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생각에 선뜻 가지 못하고 마음만 졸이다가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때서야 제가 장례식장에 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살아생전엔 못뵈었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은 배웅해드리고 싶어 용기내어 갔습니다. 다행히 친척들이 전부 다 있어서인지 제가 욕설 및 폭언은 하시지 않았으며, 폭행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취직을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취업준비 할 때 정말 힘들었네요. 일상이 늘 공부뿐이라 자존감도 많이 낮아질뿐더러 인강비, 독서실비, 책값, 식비 등등 아껴서 쓴다한들 돈도 많이 들었구요. 아빠께 지원을 부탁드릴까 잠깐 생각도 했지만 용기내어 연락한다한들 지원해주지 않을 거라는 마음의 확신이 들어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다행히 취직을 했고, 그래도 어디가도 무시받지는 않을 직업을 얻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받을 축하는 취직하고 다 받은 것 같습니다. 몇 년간 제게 연락이 없으셨던 아빠는 동생한테 제 취직 소식을 듣고는 ‘나는 네가 잘 될 줄 알았다’라고 하시며 연락을 먼저 하셨습니다. 아빠에 대한 원망이 아예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래도 제가 잘 된 소식에 본인 일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남보단 가족이 낫지, 싶어 그 뒤로는 종종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빠의 태도는 정말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예전에 책값을 보내 달라고 하면 싸늘해지던 목소리와 말투는 온데 간데 없이 늘 솜사탕처럼 다정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했던 어린시절의 저에게 이렇게 해주셨다면 얼마나 든든했을까,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취직 후 평판하게만 살아갈 것 같던 인생은 한꺼번에 뒤집혔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1차 의원 아니고서야 갈 일 없었던 제 인생에 크나큰 교통사고가 들이닥쳤습니다. 저는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부모님 모두 큰 충격을 받으셨고, 저 또한 이게 현실인가 싶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절망한다한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어느정도 정신이 든 후에는 보험에 관한 일처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판에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저는 보험금을 청구하고자 부모님께 제 앞으로 든 보험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했고, 엄마는 증서와 함께 제게 어떠어떠한 회사에 보험을 들어놨으며 수익자는 엄마 앞으로 해놓았지만, 들어오면 바로 계좌이체 해주시겠다고 하시고 정말로 그러셨습니다. 아빠께서는 보험 든 게 하나도 없다고 하시더군요. 솔직히 황당했지만 이미 기대치가 바닥이었기 때문에 ‘아빠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겼습니다. 사건은 그 뒤부터네요.

 

글로 써야하기 때문에 그 동안의 세월이 많이 생략되었지만, 아빠는 여러번의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잠깐 살던 새어머니, 그 뒤로 중국 국적의 여자분, 현재는 보험업계에 종사중인 여자분과 살고 계십니다. 처음에 몇몇 여자분들은 얼굴도 보며 연락도 종종 하며 지냈지만. 나중엔 저 분도 언제 아빠와 헤어질지 모르니 그냥 교류 없이 사는 게 낫다, 라는 마음이 들어 신경 끄고 살았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싫어하십니다. 당연히 그러하겠지요. 가정폭력의 가해자이며 그 때문에 저희 엄마는 지금도 공황장애와 불안증에 관한 정신과 약을 드십니다. 저희 엄마는 자식 키우면서 보험 하나 안 들어놓은 아빠가 정말 진저리치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든 제 보험에 대해서 아빠가 어떠한 것도 아는 게 싫다고 하셨습니다. 엄마가 없는 살림에도 혹시나 저한테 필요한 일이 있을까 힘들게 드신 보험이니 전 그에 당연히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러지 않길 바랐으나, 아빠는 가끔 병문안 오실 때마다 보험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보험금을 받으면 땅을 사라, 보험금 수령은 했냐, 등등 관심이 분명 있으셨습니다. 저는 아빠가 드신 보험이면 당연히 아빠와 상의했겠지만, 엄마가 드신 거기 때문에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났고, 아주 우연한 일로 아빠가 같이 사시는 보험업계에 종사하시는 분과 함께 제가 보험금을 수령했는 지에 대한 여부를 조회해봤단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정말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끼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습니다. 상식적으로 아빠와 그 여자분 둘 다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대체 그걸 무슨 생각으로, 왜 조회해봤을까요? 더군다나 본인이 조회해본 게 아니면 그건 불법입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질색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 여자분이 종사하시는 보험 관련해서 제 동생과 아주 불쾌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게 주내용은 아니지만 왜 이렇게 제가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하려면 이것 관련해서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줄여 설명하자면, 제 동생은 20대 초반부터 자영업을 해왔습니다. 당시 수입이 꽤 있었고, 아빠는 그것을 알고 그 여자분이 다니는 보험회사에 적금을 넣는게 어떠냐고 권유를 했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여러상품을 가입했다고 들었고 결론적으로 한 달에 300만원을 7년간 납입해서 10년 후에 만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달에 300만원. 저는 아주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으나, 살면서 어떠한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적금을 고려해볼 때 월 납입금액이 50만원 내외의 상품도 정말 많이 고민하고 들것 같습니다. 사람이 수입으로 적금비만 내고 사는 것도 아니니까요. 단언컨대 대한민국에 사는 어떠한 서민도 한달에 300만원을 적금비로 내진 않을 겁니다. 게다가 모든 자영업이 그렇듯 경기상황에 따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며, 사람이 하는 일이라 몸이 아플 수도 있는 것이고 당시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접고 대학교를 가게 됐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절대적으로 동생을 진심으로 위하고 생각했다면 저럴 수 없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 일로 그 여자분과 통화하게 되었을 때, 헛소리 하지 말라며 300만원이 아니고 200만원이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걸 들으며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도, 죄책감이 있는 사람도 아니구나, 싶어 더 이상 이야기 할 의지를 잃었습니다. 200만원이나 300만원이나 그 어느 하나 정상적인 일인가요? 동생에게 다시 물어보니 300만원이 맞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보험 일이라면 질색을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제 보험에 관한 것까지 알아보고 다녔다는 것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와 그날 전화로 큰소리가 오갔으며, 병원에 입원해있던 저에게 어린 시절의 그 말투와 목소리로 쌍욕을 하며 다신 연락하지 말라고 폭언을 퍼붓고 그 뒤로 다시 예전처럼 연락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동생한테 저를 두고 쪼시라기 돈 좀 손에 들어온다고 오만해졌다며 험담을 하며, 본인의 사망보험 및 재산을 전부 동생에게 물려주겠다며 제 앞으로 재산이 하나도 가지 않게끔 유서를 남기겠다고 신분증을 가져갔다고 하네요. 그 이야기를 듣고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는구나,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필요한 건 부모가 죽고 나서 남기는 쪼시라기 돈인 물질적인 재산이 아닌 어릴 적부터 세상이 모두가 등 돌려도 부모만은 내 편이야 하는 정서적인 지지가 가장 필요하단 걸 부모가 된 지 2n년이 흘러서도, 아마 죽는 날까지 모르고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아직 결혼 생각도 없고 자식도 없지만 아빠를 보며 자식에게 저런 사람으로 비추어지면 정말로 인생을 헛산 거구나, 하고 느낍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이고 부모의 자식인지라, 이번 보험 관련해서는 충격을 많이 받아 가끔 새벽에 아무 이유 없이 잠에서 깨 천장을 바라보고 있곤 합니다. 저 일이 있고 한동안은 같이 병실을 쓰던 분들도 제가 확연히 어두어졌다고 느끼고 많이들 걱정해주셨을 정도로 타격을 받았었습니다. 아마 남은 생애 있어 더 이상의 극적인 화해는 없으니, 저는 이제 엄마만이 제 보호자인 셈이네요.

 

그냥 푸념 겸 쓴 글인데 이렇게나 길어졌어요.

 

저보다 인생을 더 길게 산 여러분들이 저에게 한마디씩 해주시면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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