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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을 되짚으며 답하는 안부, 병들어가는 저희 아버지에 대해

lllllll |2020.01.02 18:09
조회 60 |추천 1
안녕!
지난번에는 위로 고맙습니다.
일회용 계정으로 도망치듯이 쓰고 떠나려고 했던 마음이, 덕분에 따뜻해져서 아직까지 남아 있어요.
귀신은 괜찮아요. 이제 보이지 않아요.
당분간은 더 버티면서 살아보고 싶어요.
나는 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요.
우리 엄마아빠.

제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아빠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아빠..
이전글, 나억울해요 채널에 아직 남아있을 제 인생에 대한 글에 없는 제 고등학교 시절의 우리 아빠를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우리 아빠는 화물 관련 회사에서 30년을 일하셨어요.
제가 아기였을 적에도 일하고 계셨겠죠. 저는 아빠가 무슨 사정인지, 어떤 일을 하고 회사를 다니는지 중학교 때까지도 몰랐지만
중 3학년, 고등학교1학년인가부터는 아빠가 트럭을 모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죠.


아빠가 모는 트럭은 어딘가 낡고, 멋졌죠.
자랑스러워했을지, 부끄러워했을지 물어본 적은 없어요.
제 고등학교 시절, 저는 버스로 1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의 고등학교를 다니며 콩나물 등하교 버스에 늘 고생했는데
그런 저를 위해 일 경로가 겹치는 특별한 날에는 늘 저를 태우고 집에 데려다 주셨어요.

정말 기뻤죠. 버스정류장은 사람도 드글드글하고 애들은 가래침도 뱉어대고 난리도 아닌데 그런 곳에서 제가 대화할 만한 친구가 아무도 없으니 어떻겠어요.
맨정신으로 그걸 버티기 위해 인도에 걸터앉은 채 옆에서 걸려오는 시비를 못 들은 척 하고 있었지만,
정말 싫은 시간이었거든요. 그때도 저는 집이 좋았어요.
집에 가는 길 한여름의 버스 창밖 산의 풍경은 지금도 꿈처럼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그것만을 위해 견딜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학교 어딘가에 앉아, 보통 빈 영어교실이나 중앙계단에 앉아서
버스에 아무도 안 타는 시간이 오기만을, 날이 어두워지기만을 오래오래 기다렸어요.
밤 6~8시쯤. 그게 일상이었어요.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늘 저와 함께한 리코더와 멜로디카.
그 당시 관악기 애니메이션에 빠져있었던 저는 베이스 클라리넷을 불어보는 게 꿈이였어요.
한때는 트럼펫을 꿈꾸기도 했고.

그런 악기연주에 빠지게 됐을 때 쯤엔, 오히려 아빠의 마중이 슬펐죠.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말 고마웠어요.
대화도 도란도란 나누며 집으로 가는 찻길의 산을 넘고, 버스비가 없는 날엔 오래 기다리고
도중에 내리고선 편의점에 들러 좋아하는 김밥과 젤리를 사 주셨죠.

3학년 말에야 생긴 처음이자 마지막 친구들에게도 저희 아빠는 자랑이었어요.
하굣길 횡단보도에서 날 태우러 오던 날, 처음 아빠에게 친구들을 소개시켜 준 때가 아직도 기억나요.
아름다운 추억. 너무 기뻤어요.

저는 그때 아빠에게 친구를 보여준다는 기쁨에만 취해,
아빠가 무슨 표정이었는지, 어떤 마음이였을지는 보지 못했어요.


아빠는 과장으로 승진했어요.
말이 승진이지 급료는 바뀐게 없지만,
이제 아빠는 억지로 지휘자가 되었고, 차를 모는 일이 없어졌고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아빠는 차라리 차를 몰던 때가 그립다고 말해요.
손이 부르트고 온 근육이 떨리고, 팔이 부러지듯 쑤셔오고 매일 밤 고통에 쑤시면서도
그 당시 사이가 안 좋았던 우리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들어가는 것 부터가 숨이 막히고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대요.

미안했어요. 너무 미안해...

우리는 되돌리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요. 지금은..
언제였을지 모르는 행복한 우리 가족을.


아빠가 병에 걸렸어요.
불치병일지도 모른다고 아빠가 찾아가 본 병원들의 의사들은 말해요. 병명도 알 수 없고, 어쩌면 암일지도 모른다고 하면 언니는 제발 그런 말 하지 말아달라고 펑펑 울어요.
저도 암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정말 답답한데,
아무도 아빠가 무슨 병인지, 어떻게 해야 건강하고 행복할지 가르쳐주지 않아요.

얼굴이 붓고 아프고 띵하고,
증상만 들어서는 모르겠어요. 목도 뻐근하니 아프대요.
정말 암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어쩌죠?
가장 괴롭고 오랫동안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고 싶어하며 재멋대로 굴러가던 시절의 저를,
누구도 아니고 가장 오래 지켜봐 준 사람은 아빠에요.
언니도 엄마도 절 사랑하겠지만..
저도 사랑하지만,
지금은 온 가족이 아빠만 걱정해요.

매번 재미없는 군대 얘기나 골프 방송 이야기, 스포츠나 어린 시절 얘기만 하던 사람이,
먹방asmr이나 노인분들 채널만 보시던 분이
암 관련 유투브만 수십 개 쫓아다니며 온종일 보고 있대요.

꿀도, 치즈도, 우유도, 정수기 물도 다 안 좋대요.
생강을 먹어야 한다길래 생강청이 어떻냐고 물었더니 단 건 안 좋대요.
가루를 보더니 전분이 들어있어서 안 좋다고, 생 생강을 집었어요.

아카시아꿀이 싸길래 어떻냐고 묻자 몸에 안 좋대요.
카카오를 많이 먹어야 한다길래 75%다크초콜릿은 어떠냐 이거 맛있다 했더니, 안 된대요. 95%는 되야 한대요.

마트를 나가는 길에 구석에서 생화를 파는 곳을 봤어요.
세상에. 이 시골 마트에서 꽃을 팔다니. 너무 감격한 제 눈에는 싸게 묶어서 파는 싱싱한 백합 꽃봉우리 줄기들이 눈에 들어왔죠.
그래서 사달라 졸랐어요. 과자도 뺄 테니 사달라고.
저는 꽃을 사랑해서요.

아빠가 엄마는 분명 뭐라 할 꺼다.
피지도 않을 거 사서 뭐하냐 하길래 설명했어요.
꽃병을 잘 관리하면 피우기도 하거든요.
그러더니 아빠가 말했어요.
꽃을 피우면 뭐 하냐고. 어차피 버리는 것밖에 더 돼?
진 꽃은 쓰레기야.

나는 느꼈어요.
이건 자신을 보는 아빠야. 분명 그래서 노력하고 있는 거야.
그건 안 돼요. 저는 그 백합 꽃봉우리 다발을 안고 말했어요.
이것 좀 봐. 아직 피우지도 않았는데 향기가 나.
나는 이 아이들에게서 운명을 느껴!
분명 내가 피워야 하기 때문에 우린 만난 거야.
지금도 이 봉우리의 끝이, 당장에라도 피어오르고 싶어서 힘껏 고개를 뻗고 있어.

나는 말했어요.
그러고 은근슬쩍 올려놓자, 과자 빼지 말고 그냥 같이 사라고.
그거 얼마나 한다고 빼냐고.
저는 막 신나했죠. 언니는 그런 저희를 바라보기만 했어요.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언니와 대화했어요.
암 유투브 이야기도 그때 언니에게 들었어요. 언니에게 말했어요.
언제나 강할 줄 알았던 사람이 무너지니까, 정말 기분이 묘하다고.
우리의 역할은 기다려주는 것 뿐이니까 티내지 말자고.
먼저 도와달라 할 때까지 옆을 지켜주자고.
뒤로 아빠가 돌아와서 짧은 대화였지만, 지금도 가슴에 박아뒀어요.

물론 언니도 저도 정신과에 다니고 있는 정신병자고,
약물과 상담이 필요한 중환자에요.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아끼고 더 챙기고 열심히 나아가야 하는데,
아빠는 그게 힘들어서 주저앉았어요.
나는 부축해 줄 힘이 없어요.


아빠가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행복해질까요.
물론 연세도 있고,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끼리 통하는 게 그렇게 많았는데 일찍 가면 슬프잖아.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라도 누가 좀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나는 도움이 필요해요. 정확히 아빠가..
지금도 주방을 해집고 소리지르며, 온몸으로 도와달라 외치는 것처럼 보여요.

우리집은 늘 아빠가 요리와 살림을 했어요.
중학생 때부터였는데, 그래서 엄마와 아빠 사이가 많이 틀어졌어요.
엄마가 살림을 전혀 안 해서 불만스럽고,
당연하게 여기는 게 싫다는데.. 저는 이제 요리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부탁하지 않아도 스스로 하려고 해요. 쉬라고 해도 자기가 해야 한다고.

어떻게 해야 좋은 딸이고, 행복한 나일까요.
그리고 어떤 게 행복한 아빠일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이번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만 듣고 싶어요.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같이 힘내요.
저만 속상한 게 아니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어요.
같이 고민하고. 견뎌내고 싶어요.


제 기도가 하느님께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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