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남친 집에 인사 갔다가 헤어졌다는 썰이 많네요.
읽다보니 예전에 저도 2년반 정도 사귀다 인사 가고 다음날 미련없이 헤어진 전남친이 생각나서요.
그때 저는 28살이었고, 지금은 33살 결혼한지 2년 된 아줌마 입니다.
퇴근길에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자주 마주치던 남자가 있었고
어느날 저 따라 내리더니 다짜고짜 같이 밥 먹자, 오늘 안되면 내일 먹자 하며 꼬셔대기를 한두달.
결국 사귀게 돼서 2년반 만나다 보니 나보다 4살 많았던 이 남자가 먼저 결혼얘기를 꺼냈죠.
집에 알리니 엄마, 아빠가 전남친 보게 날짜를 잡자 하셨고, 전 그 말을 남친한테 전했죠.
그때 전남친이 "울 엄마한테 너네집 먼저 인사가는게 맞지 물어보고 말해줄게"라고 했을때
이미 쎄....했습니다. 뭐지... 그래 뭐 요즘 세상에 순서가 어디가 먼저든 상관없다 치더라도
지가 결혼하쟀고, 난 그걸 집에 전했고, 울 부모님이 좀 보자는데
왜 그걸 자기네 엄마한테 물어봐서 허락을 구하지??
뭐 초딩이 엄마 나 친구네서 밥먹고 와도 돼? 하고 엄마한테 허락 받는 것도 아니고.. 서른둘이..
암튼 며칠 후 그 집 엄마의 허락(?)이 떨어져 우리집에 전남친이 인사를 왔고
울 엄마는 특기인 버섯소고기전골과 각종 밑반찬에 LA갈비까지 구워가며 대접..
아빠는 아침일찍 수산시장 가셔서 도미회를 떠오시기까지 해서 아주 한상 차려 먹였죠.
거기서 전남친 아주 세상 둘도 없는 남편감인양 허허 거리며 저한테 간, 쓸개 다 빼줄듯 하고
우리딸이 속이 깊어서 혼자 끙끙대며 짊어지려는 경향이 있는데
말 안한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말고 자네가 말할 곳이 되어 주게 라고 아빠가 당부하자
제가 OO이의 대나무숲이 되겠습니다 하.하.하.... 이땐 이것마저 러블리해보였죠...ㅡㅡ
그 후로 2주 후에 전남친 집에 인사를 갔는데
아버지가 계시다고 들었는데 우선 집에 아버지가 안계셨음...
인사드리고 사간 선물 드리고 앉아있는데 잠깐 준비 좀 한다며 그 아줌마 방에 들어간 사이
아버지 어디가셨냐고 하니까 낚시 가셨다고 함...? 응?;
30초 뒤 그 아줌마가 외출할 복장 갖춰입고 나옴.. 응? 집에서 밥먹는거 아녔어?
내가 당황하는데 옆에서 전남친은 더 당황했더라구요. 엄마 어디가?
밖에 어디서 밥 먹자. 집에서 먹는거 아녔어? 내가 뭔 음식을 한다고 집에서 손님상을 차려.
아가씨 괜찮지? 밖에서 맛있는 거 사줄게. 요 앞에 만두전골 맛있게 하는 곳 있어.
얼떨결에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못하고 만두전골가게에 착석..
아버님이 낚시를 좋아하시나봐요 호호..
아, 사실 애아빠도 오늘 보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낚시나 가라 했어.(?????????)
첫 인산데 내가 먼저 보고, 괜찮다 싶으면 그때 집안 가장한테 뵈는거지. 안그래?
.... 남친 집에 인사드리는데.. 무슨 대기업 면접도 아니고 일반면접, 경영진면접이 있고 난리..
어이가 없으려는 찰나에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주문한 만두전골이 앞에 놓였는데
만두전골 끓기 시작하니 전남친이 국자 가지고 음식을 뜨려고 하자
그 국자 뺏어서 나한테 줌. 그 국자 나한테 주면서 내 옷 소매에 빨간 국물이 좀 튀었고
오른손에 국자를 가만히 들고 소매에 튄 그 양념자국을 바라보면서 나 정지. 하.. 장난하나..
그래 그냥 좀 불편한 어른하고 밥 먹는다 생각하자 하고 우선 음식 떠서 드림.
그제서야 몇가지 물어보는데 우선 내 이름자를 물어보더니 비웃듯이 켈켈 거리며
누가 이름에 그런 한자를 쓴댘ㅋㅋ 부모님이 잘 모르셨나보다. 함.
우리 부모님 두분다 대졸이셨는데 그집 아줌마 상고졸이었음.(학력비하아님. 그럴생각 없음)
우리엄마 결혼하기 전까지 병원에서 영양사로 일했고, 원무과였던 아빠랑 사내커플로 결혼.
나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일 안하다가 후에 직업훈련원 영양사로 지금까지도 일하고 계심.
근데 이 아줌마는 상고 나와서 "금융업"에서 일했다는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얘기함.
그러면서 음식하는 울 엄마를 굉장히 기술도, 지식도 필요없는 일을 했던 것 처럼 말함.
대학까지 나와서 왜 부엌데기를 하냐. 라고 정확히 이렇게 말했음.
그때는 저희 엄마는 전문직종이시고 공부도 많이 하신분이라서 늘 존경하고 있다고 확실히 말함.
나중에 전남친한테 듣고 보니 그 "금융업"이라 함은 전당포였음. 전당포 사장 아니고 직원.
그리고 나한테 키가 많이 커서 인기가 없었겠다 라고 함. 168임. 작은키는 아님.
그치만 인기가 없었..? 그래 뭐 남자가 들끓진 않았어도 1년에 1~2번 정도는 길가다 헌팅 당했고
그때 만나고 있던 전 남친도 그런식으로 만난거였는뎈ㅋㅋ 뭐.. 네... 좀 크죠 제가. 하고 말았음.
난 그때나 지금이나 공기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요즘 공기업 월급 얼마주냐고 물어봄.
... 저게 초면에 물어볼 말인가 싶어서 그냥 전남친이랑 비슷하게 번다고 말해 줌.
전남친이랑 월급은 한.. 15만원 정도 차이 났는데, 다른 복지나 상여금 같은거 합치면 내가 위.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일하는 그 지역은 내가 다니는 그 공기업을 중심으로
그 공기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수많은 중소업체들이 밀집한 일종에 해당업계 타운이었음.
즉 업무관계상 전남친네 회사가 을, 내가 다니는 공기업이 갑.
내가 하는 업무도 그랬는데.. 공기업 다니는 여자애라고 하니까 커피나 타는 줄 아셨나 봄.
일 쉬운거에 비해 많이 번다는 둥, 우리 아들 너무 야근많고 고생하는데 너 다니는 공기업에나(?)
좀 이직했으면 좋겠다는 둥... 아주 후려치기가 일품이었음.
진작에 내 머릿속에서 이 결혼은 안하기로. 라고 선 그엇지만 끝까지 앉아서 저거 다 들었음.
웃지는 않았지만 예의를 잃지는 않았음. 오히려 좀 더 고고한 듯 표정짓고 앉아 있었음.
당신같은 인격에게 좌지우지 될 기분이 아니라는 식의 오오라를 풍기려고 노력했음.
당연히 옆에서 전남친은 안색이 시꺼매지기 시작함. 엄마의 무개념이 너무 쪽팔리기도 했고
나 진짜 업체한테 갑질하는거 싫어하는데 가끔 내가 나이 어리고 여자라고
반말하고, 일 제대로 안해오는 꼰대 사장 업체들이 있으면 그들한테 하는 표정과 말투로 대해서
전남친은 그 뉘앙스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일이 틀어졌다는걸 식사중에 깨달음.
근데 그 아줌마는 그것도 모르고 더 신나서 떠들기 시작함.
그리고 앞에 전골이 다 없어지고 내가 먼저
"식사 다 하셨나요? 다 드셨으면 일어나시죠.^^" 라고 이야기 함. 완전히 비지니스 말투.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어깨에 매며 아직 앞에 앉아 있는 아줌마를 온화하게 내려다 봄.
그때 아이보리색 슬랙스에 하늘색 셔츠, 네이비색 자켓에 6센치 스티레토힐을 신고 있었으니
키가 우선 170이 넘었고 이미 내 표정과 말투는 상냥하지만 차디차게 변해있어서
다시는 안볼 사이에 별로 에너지 쏟고 싶지도 않다는 내 의중이 쳐발쳐발 묻어나기 시작.
그제서야 이 아줌마도 뭔가 이상하다는걸 눈치 챔.
전남친에게 카드 주며 이걸로 계산하라고 함. 업체와 식사 자리에서 뇌물공여 안되니
우리 법인카드로 그 업체 가장 말단 직원에게 계산 심부름 시키듯이.
전남친 어버버 거리며 내 카드로 계산하러 감.
전남친 계산하는 동안 그 뒤로 나는 빠른 걸음으로 가게를 나섬.
전남친과 그 아줌마는 당황하며 날 따라나옴.
그 가게 주차장에 서서
"오늘 뵙게 돼서 여러모로 알게 된게 많네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드님과 좀 더 데이트 하다 들어가세요.^^" 하고 돌아서서 택시 잡음.
그날 저녁 전남친에게 전화가 옴. 울 엄마가 좀 생각없이 말하는게 있는데
그래도 잘 들어줘서 고맙다. 엄마가 너 예쁘다고 한다. (맘에 든다는 소린 없었음)
그래서 응 듣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뵐일 없었으면 한다. 라고 함.
그런 소리 듣는 동안 입에 만두 쳐넣으며 내 눈치 니 엄마 눈치만 설설 보던 오빠가 더 짜증나고
결혼 얘기는 없던걸로 했으면 한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맘에 든다니 오빠 좋게 본거지
내가 맘에 안드는데 이미 인사를 했고, 맘에 들었고가 무슨 상관이겠느냐.
아, 그리고 너네 회사 차장님한테 서류 기한 엊그제 까지였으니까 내일 아침에 내가 출근해서
메일 열자 마자 바로 볼수 있게 보내 놓으라고 전해라.
웬만하면 마주치기 싫은데, 일때문에 마주치게 된다면 제발 모른척하고 꺼져주라. 함.
다행히 전남친이 을 업체였기에 혹시나 모를 업무상의 불편이나 소문때문에 깔끔히 떨어져나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