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올해는 폭력가장아버지와 끝내렵니다.

88 |2020.01.27 17:45
조회 1,144 |추천 10

남들은 명절이면 시댁스트레스 미혼 친구들은 부모님의 걱정어린 잔소리에 스트레스들 받는다는데 저는 명절 연휴내내 본가에서 상전처럼 차려준밥먹고 큰소리치다 집에 왔어요. 작년에 아버지랑 재혼하신 새어머니는 세상에 저런 이기적인 딸램이 어딨냐며 아버지를 불쌍한사람이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저 그래서 이제는 나쁜딸 그만하려구요. 복수라고 생각해서 아버지가 늙어갈때 갑질하고 돈으로 저울질하면서 참 미련하고 멍청한짓을 10년이나 했네요. 덕분에 돈 그거라도 없으면 아버지가 언제 다시 폭군이 될지 모르니 독하게 10년을 살았어요. 먹고살만해요. 아니 차고 넘칩니다. 이제 금전적으로 여유되니 내 마음도 다스려야 할것같아요. 어디가서 부끄럽고 쪽팔려서 단한번도 한적 없는 얘기를 익명의 힘을 빌려 여기쏟고 이제 제 삶을 살려구요.
내 아버지는 폭력가장 이었어요.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니고 사업이 실패해서 집이 가난해졌을때 무시받지 않기 위해 폭력을 선택한것같아요 그속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제 생각엔 처음엔 자기방어 자격지심 그런종류였던것이 본인을 집어삼킨것같아요. 엄마는 딸들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이혼하셨네요. 어릴땐 원망 비슷한걸 한적도 있는데 지금은 그냥 다 이해가 되요. 양육비를 줄 형편이 안되서 나와 내 연년생 여동생은 아버지가 키운다고 협의하셨고 그렇게 친할머니댁에 버려져서 컸어요. 딱 그 시기가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유일한 유년기네요. 중학생 쯤 아버지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랑 동생 저 셋이 살기 시작하면서 엄마를 때리던 매가 저에게 행해졌고 자느라 새벽에 들어오신 아버지에게 오셨냐는 인사를 못해서 가드올리고 살려달라 빌면서 밟히던날 아버지가 잠드시고 울면서 유서를 썼었네요. 지금생각해보면 사춘기였는데 왜 그 흔한 반항한번을 안하고 3년간 샌드백처럼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습관적인 무기력이라고 할까요 그냥 말도 없어지고 눈물도 없어지고..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때 넌 패는맛이 안난다며 동생에게 손찌검을 시작했을때 이성이 끊어져서 주방에가서 식칼을 꺼내왔어요. 잠시 주춤 하더니 귓빵망이를 쳤는데 저도 미쳤는지 칼 다시 주워들고 덤볐네요. 아버지도 저도 여기저기 베이고 칼 뺏어서 싱크대로 던져버리고 넌 그냥 죽어버리라며 때리는 아버지에게 처음 말대꾸도 하고 같이죽자고 덤볐어요. 참 웃긴게 아버지가 감정없이 맞을때랑 다르게 때리다가 주춤거리고 사람같이 행동하더라구요.
그날 동생이 휴대전화들고 화장실문 잠구고 들어가 울면서 경찰과 친할머니를 불러서 대충 마무리 되고 그날이후 간간히 폭행할 기미가 보이면 불쌍한 동생 엄마한테 보내고 우리는 죽자며 미친척했더니 점점 다정하고 가정적인 아버지가 되더군요. 아 인간은 간사한것같아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참 독하게도 일했네요 내 연봉이 오를수록 아버지가 내눈치를 보는게 느껴졌거든요.. 독립한 후에도 연을 끊지 않았어요. 그렇게 갑질하고 아버지 하시는 모든 말에 아버지가 뭘 아시냐며 비웃고 용돈봉투 드리면서 비싼밥 사드리면서 인격적으로 모독했어요 사람이 없이살면 괴팍하고 폭력적이어진다면서 가난탓이라면서 능글거리며 참 저도 나쁜사람 이었네요. 작년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만나 재혼하셨어요. 새식구라고 누군가 생기고나니 참 제 삶이 허무해서요. 그래서 저 이제 상담도 받고 여행도 다니고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속에서 살려구요. 욕도 좋고 조언도 좋아요 아무말이라도 좋으니 제게 용기를 주세요. 끝으로 배우자가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 이혼하시는 부부님들은 아이를 배우자에게 보내지마세요. 형편이 안된다면 고아원이나 시설로 보내주세요. 시설에서 살고싶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아픕니다.

추천수1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