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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을 생일

감자 |2020.02.01 02:08
조회 124 |추천 0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에 글을 남겨보고 싶었다. 그냥 글을 남겨보고 싶어서 처음 가입도 해보았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12시 지났으니 어제인가..
얼마 살아본건아닌데 지금까지 살았던 25년중에 이번이 가장 기억에 남을듯 하다.

나름 열심히 살았고 부지런히 살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창업하여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앞두었다. 나름 인정받고 살았고 부모님께 교육 잘 받았다며 좋은 평판을 들으며 살아왔다.

근데 그런 부모님들께서 오늘 이혼하기로 하셨다.

사실 남들이 보면 화목하고, 화기애애한 평화로운 집안이었고, 살면서 특별히 부족함을 느낀적이 거의 없었다. 항상 그런점에 감사하며 살아왔다.

다만 많은 집들이 그래왔듯이 친가댁, 그러니깐 할머니와 고모들과 엄마의 잦은 고부간의 갈등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사실 우리 할머니는 굉장히 못되셨다. 이기적이시고 욕심많은 분이셨고 남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힘든 말도 쉽게 내뱉으시며 나몰라라 많이 하셨었다. 그분과 닮은 다섯 고모들도 하나같이 못된 행동을 일삼으셨다.
그런건 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우리아빠는 그에 상응하는 마마보이 최고치를 달리시는 분이었을뿐..

사건의 발단은 2년전 명절이었다. 그전에도 일삼으시던 며느리의 종살이를 요구하시던 분과 중간도 아닌 할머니편만 들던 아빠의 닦달에 우리 엄마는 결국 화병 및 갖은 병을 얻게 되었고, 결국 시댁과 싸움이 시작되었다.

우리엄마는 누가보아도 당당히 살던 꽤 능력과 지성을 겸한 여성이셨다. 그런 엄마가 누군가의 집에 빨대 꽂히듯 피빨리며 살 수 있는분이 아니셨고, 4년전부터 시댁에 가지 않으셨다. 물론 그때마다 아빠와 싸움이 났었다. 평소엔 그렇게 장난끼 많고 착한사람이 할머니와 연관되면 제대로 된 판단이 안서는지 한 번은 밥상을 엎어 모든 그릇과 음식이 한곳에 깨지며 난리도 났었던 적도 있다.
나도 약간 엄마를 닮았는지 할머니와 관련된 비논리적인 억지를 피우는 아빠를 답답해하고 화도나서 아빠와 많이 싸워왔었다.

2년전 명절 사건의 그날 아빠가 도저히 못참았던지 3자대면 하자며 할머니와 같이 얘기해보자며 결국 갔었다. 그곳엔 고모 한분도 있었고, 할머니는 어디 뭐가 그리 서운했었냐고 말하라고 하셨다. 사실 거기서 엄마는 한마디 하셨었다.
"어머님이 절 사람대접은 하셨냐고..이 집에 종이 필요해서 결혼시키셨냐고..최소한의 대우만 해주셔도 저 이러지 않았을거라고"
이 말에 할머니는 순식간에 기차화통 삶아 드신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며 화를내셨다. 자기가 언제 그랬냐며 외가댁과 엄마를 지칭하며 폄하하셨다.
사실 거기서 그쳤으면 더 나았을걸...
내가 할머니께
"서운했다. 할머니가 어머니께 대하시는 모습들 중에 서운한 적이 있었다"
딱 이말 한마디에 나를 고부사이를 이간질하는 년이라고 지칭하셨다. 그리곤 우리를 저주하셨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너희같은 년,놈들 저주할거라고, 죽어서도 쫒아다니며 저주할거고 어디 잘사는지 두고보자고"
저기서의 놈들은 내 남동생들 즉 그 할머니 하나뿐인 아들의 딸과 아들들이었고, 할머니의 손자,손녀였다.
자기 화를 못이겨 자기 손주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저주를 퍼부으셨다. 그 어미가 보는 앞에서.
그 중 말리기는커녕 자기엄마 감싸고 편들기에 급급한 고모와 아빠가 있었고, 자기 화에 쓰러질듯한 할머니를 보며 내가 엄마를 붙잡고 그자리에서 나갔다.
그와중에 아직도 기억나는건 고모란 사람이 나를 붙자으며 너희엄마대신 너가 하루자며 일을 하고 가란거였다.
나를 종년 딸 쯤으로 아셨나보다. 지 딸은 공주처럼 방에 드러누워 잠만 자면서.. 병신이 아닌 난 무시하고 갔지만

이 사건이 있음에도 이혼을 안하셨었다. 그래도 엄마는 지금까지 정이 있으신지 아빠의 아둔함을 알고도 덮으셨었다. 사실 저 사건 후에도 명절때마다 난리가 났지만 무시하고 넘어갔었다.

한 번은 아빠가 나보고 할머니와 연끊을거냐며 그럼 자기랑도 연끊자는 소리나하는 아빨 보며 그래 인사만 하고오자는 맘에 갔었다. 인사했더니 날 쌩까시는 할머니와 고모들.. 그래도 아빠봐서 참고 넘기려했었다.
근데 집가려고 떠나려는데 동생이 같이 가자며 날 붙잡는걸 보시던 할머니가 동생을 붙잡으며 말씀하시더라
"니 누나년은 자기와 늬 엄마사이를 이간질이나 한다고 아들인 너가 중간에서 잘해야하지 않겠냐. 할머니가 너 용돈줄께 그래도 니 누나 따라갈테냐"
그때 머리가 띵했다. 아..날 종년 딸로 알았구나..손녀가 아닌 나쁜년의 딸이었나보구나..
내앞에서 동생붙잡고 날 욕했다..그래도 손녀였는데..
정이 떨어졌다. 완전히. 나쁜 년이라 욕해도 할말없는데 할머니 돌아가셔도 안슬플것 같다..

그리고 몇일전인 이번 설에 내가 잠깐 알바하러 간 사이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명절이 되니 아빠는 엄마께 할머니와 연끊을거 아니면 가서 인사드리자고 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싸움이 삼자대면을 외치며 스피커폰으로 할머니와 전화통화가 되었다.

기억이 안나신댄다. 할머니는 자기가 언제 그런 저주의 말을 하셨는지 설령 있었다해도 그런일로 아직도 꽁해서 혼자 그러고 있냐며 화를 내셨다고한다. 자기가 사람이면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었겠냐며..
외가쪽을 폄하한 적은 있어도 그런말 한적은 없으시댄다. 그러면서 나를 ㅇㅇ년 이라고 칭하셨단다.. 나..그분 손녀 맞은가.......그것도 어미한테 손녀를 ㅇㅇ년이래..
아빠도 할머니가 그런말 한게 기억이 안나신댄다..
차라리 말로만 그러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아빠는 자기뜻대로 안되는 이 상황이, 자신의 인생에 어머니가 최고인데 그런 어머니와 싸우는 엄마를 보며 화가 나셨을까.
한번도 엄마한테는 손찌검한 적이 없으셨는데 화를 참지 못하고 엄마한테 폭력을 행사하셨다.
엄마는 갈비뼈 금이 갔고, 얼굴에 주먹들을 맞으셨는지 얼굴이 붉었었다. 그리곤 내가 일하는곳에 마치는 시간에 찾아와 근처 모텔에 하루를 보내셨다.

억장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귀한 우리 엄마인데..고생만한 우리엄마인데..

아빠 옹호하는 것 처럼 들릴 수 있는데..그래도 아빠 심성이 못되진 않았었다. 할머니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장난도 많이 치고 친한사이였다. 금슬좋은 부부였고 나와도 사이좋은 친구같은 부녀였다. 그날 하루 전날만해도 우리 어디 놀러가기로 했었는데..
꼭 할머니일에만 아빠는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통하지 않았다.
가시밭 같았던 일주일동안 엄마는 생각이 차분해지고 정리가 되셨는지 이혼하기로 결심하셨다. 31일 내생일엔 그렇게 나와 법원가서 서류를 챙겨왔다. 주민센터에서 필요한 서류들도 다 챙기셨다.
난 엄마의 결정을 지지한다. 똑똑하신 분이니 앞으로 잘 해내실거고 많은걸 이루실거다. 당당하게 잘 사실거라고 확신한다. 카페에 가서 엄마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엄마 나 내색은 안했는데 엄마가 안쓰럽고 대견하기도 한데..조금만 슬퍼할께
나 우리 가족을 사랑해 매우 많이 사랑해. 그래서일까 좀 슬프고 가슴이 많이 아프다. 아마 지금 거실불이 켜져있는 이유는 엄마가 이혼서류를 작성하고 있어서겠지?
날 위해 이사왔던 지금 우리집이 우리 다섯식구가 다같이 살았던 마지막 집이 될것같아서..우리가 행복하게 다같이 다섯이서 모여 웃고 지냈던 그 많은 날들이 이제는 보기 힘들것같아서..할머니 말대로 내탓으로 이렇게 결과가 된건 아닌건 아는데 그래도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오늘 주변사람들이 생일축하한다며 연락주는데 좋은하루 보내라고 해주는데..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지 논의하는 내모습 보면서 뭔가 오늘하루의 내가 착잡하더라..

내가 엄마 닮았는지 혼자 삭히고 참는게 습관됬나봐. 누구한테 말도 못하겠고 슬퍼도 웃고 행복한척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날보면서 아 엄마도 그러고 있구나 새삼 깨닫는다.
아무렇지 않게 이혼을 결심하고 혼자 준비하는 엄마를 보며 내 맘이 문드러져.. 이모들한테도 걱정할까봐 말도 못하고 잘지내고있다고 전화하는 모습 보는데 나도모르게 눈물나고 복장터지더라
저 속은 남아있질 않겠구나..우리 엄마..내 귀한 엄만데 그사람들이 뭐라고 그렇게 능력있던 사람이 주부로만 살며 힘들게 살아왔을까. 엄마 우리 이제 그만 힘들어하고 그만 울자.
우리 잘살자. 행복하게살자. 정말 누구보다 떵떵거리며 웃으며 살자.
아빠. 그래도 우리 아빠라고 사랑하는 우리 아빠라고 아빠의 행동이 이해되진 않지만 그래도 사랑해. 앞으로 자주는 못보겠지만 그래도 한두번 밥해주러 갈께요ㅋㅋ 지금은 좀 많이 미워서 말도 잘 안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이러나저러나 아빤걸..아둔한 행동을, 못된 행동을 해도 아빤걸..혼자 지내도 몸 잘챙기고 건강잘 챙기고. 할머니랑 평생 연끊어도 아빠랑은 못끊겠다. 그래도 아빠라고 내아빠라서 이해하려 노력해볼께. 근데 다시는 할머니 볼 자신은 없다.

이번 내생일은 오늘 요리했던 그 스테이크가 우리 가족 다같이하는 마지막 식사일것 같아서 좀 많이 생각날것같다 오늘 하루가.
그냥 많이 생각날것 같은 오늘 하루를 아무에게도 말못했던 오늘을 어딘가에 끄적여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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