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이념 같은 것은 정치프레임과 아무 연관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노동자인 적이 없던 심상정이 노동자를 위해 싸우고, 그들을 지키기 위한 법을 만들고자 한다. 그녀의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그녀가 얼마나 터무니없이 정치를 시작했는지, 지적인 그녀의 프로필이 얄궂게 그녀가 걸어온 행보가 얼마나 일관성이 없는지를 알 수 있다. 단지 이념과 사상이 그렇다는 이유로 금수저였던 조국이, 독식하는 부자와 집권하는 여당을 타도하고, 소외층 및 취약층을 위한 글들을 올린다. 배운자가 부르짖는 아름다운 ‘선’ 앞에서 덜 배운 국민은 쉽게 선동당하고, 영혼까지 내어주는 사태가 일어난다. (어휴 공교롭게도 그는 아름다운 외모까지 갖췄다.) 조국 수호. 팬이 연예인을 좋아하여 그 연예인의 관련 물품을 소비하는 현상처럼 국민은 분별없이 광적이게 된다. 이 사회의 약자를 위하는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할 줄 알았던 조국과 그의 일가족이 그 누구보다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음이 까발려지고, 그 민낯이 처참하게 드러났음에도 이미 그에게 충분히 매료당해 충성을 맹세한 사생 팬 집단은 댓쯔 오케이! 논쟁의 논점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영원히 ‘조국수호’를 외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다. 사상은 집권을 위한 근거일 뿐이다. 그리 보면 현재의 집권당은 역대 어떤 정부와 정당보다 정치를 잘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당 역시 더러운 것은 매한가지이다. 보수는 나라의 시장 경제 및 민감한 정치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여 변화시키는 것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보수 프레임으로 창당한 그들도 표를 얻기 위해서 선거철이 되면 소시민을 위한 복지정책을 마구 쏟아낸다. 진정성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 상대에게 질수는 없으니 공수표를 남발한다. 뭐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선’으로 포장하는 것을 진보당보다 덜 하므로 덜 역겹다. 정치. 참 복잡하고 무거워 보이는 개념이지만 일반 나 같은 사람들에겐 그냥 생존의 기로에서 선택을 하는 문제일 뿐이다. 내가 생존하기 위한 법을 생각하다보니 정치 성향이라는 것이 생기고, 지지하는(더 나은) 당이 생긴다. 그저 내가 나고 자란 자리에서 생존을 위협받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고자 함이다.
가난한 집에서 청년기를 보낸 내 아버지는 배운 것 없이 노가다를 하며 힘겹게 생을 잇다 지역에 소규모 생산사업을 일구는데 성공한 자수성가형 사업가이다. 그는 대체적으로 정직하고 인품 좋은 사장이고, 따뜻한 가장이지만 지킬과 하이드처럼 괴팍한 모습으로 변할 때도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그가 생산해 낸 제품들 위에 먼지가 쌓이고 재고라는 것이 넘쳐나게 된다. 직원들은 채용해놨는데 한 달 한 달 월급을 주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든다. 신제품을 트렌드에 맞게 내지 못하면 금방 도태되고 마는 현실에, 유능한 인재를 모셔 오고 싶지만 지방에 네임벨류가 약한 소기업은 그마저도 너무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호황일 때도 있다. 그러면 곳간에 벼를 조금 더 채워 넣는다. 잠을 자야만 하는 비수기가 다시 오면 사업장을 유지하기 위해 직원들을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보프레임으로 무장한 정당이 집권을 하면 겨울잠을 위한 자금을 선처없이 면밀히 감사(監査)하고 거기에 세금을 매기는 행위를 아주 가혹하게 한다. 또한 이러한 정권은 이 전까지 아버지인 대표와 아무런 문제없이 좋은 관계였던 회사 내 소속 직원들에게 노조를 만들라 권한다. 고용자의 힘을 키워 고용주와 대항해야만 생존 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들은 시장 경제를 제어하겠다.- 즉 소수의 사장이 아닌 다수의 고용자를 위하여 강력한 법안을 만들어 시장경제를 제어하고, 공정하고, 공평하며, 투영하게 하겠다는 정치를 펼친다. 그들은 그 나름대로 집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래야만 하는 것인데, 사회는 고용주보다 고용자가 다수이고 그 대다수인 사회 구성원들에게 선심을 쓰고 부동의 표를 확보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장의 딸이었던 나는 사장직인 아버지보다 아버지 밑에 매 달 같은 양의 월급을 받아가는 직원들이 더 좋아보였다. 내 아버지는 그저 허울만 좋은 사장님일 뿐이었으므로. 그래서 나는 시장경제를 좀 더 자율에 두자는 쪽이 나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는 쪽이므로 보수적 성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생산 사업을 일구는 데는 많은 초기비용이 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 어이없이 뒤집히는 게 얼마든지 가능한 위험 비용까지 안고 간다. 대를 걸쳐 탄탄히 일군 사업장도 많지만 모든 리스크를 안고 시작한 내 아버지 같은 생산사업주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하여 이 사회에 일자리를 창출한 그들은 어떠한 직업군 보다 존중과 존경을 받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티내고 발언하면 그것은 당장에 가진자(기득권)의 ‘악’으로 분류되어 내쳐지고 말 것이다. 고한(苦恨) 끝에 내 아버지가 이룩한 것들에 대해 다수의 사람들은 정당한 평가를 해주지 않는다. 내 기준에 늘 리스크를 짊어지고 가야하는 고용주는 고용자들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일컬어 부당, 비리 등의 명사로 표현 한다. (물론 처단 당해야할 기업주가 존재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도 눈치가 보이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자리에서는 또 그럴 수밖에 없다. 사업을 일구기가 힘든 노동 근로자는 한 달 월급을 받지 못하는 문제 자체가 생존의 위협이 되기 때문에 맞서 싸워야 한다.
자 쓸데없는 서론이 길었다. 이제 코로나 사태를 보자. 지금 집권 중인 여당은 노대통령의 사망 이후 국민으로부터 지지의 탄력을 받게 된 인사를 원수로 단합된 당이다. 나는 그 시작부터가 몹시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하여 생각만 해도 민망스러워 몸서리가 쳐진다. 아 그렇다. 이 것이 엄청난 광신도집단 탄생의 시초라 하겠다.
광신도 집단을 거느린 이 정권이 야당시절 겪었던 메르스와 세월호 사건은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어떻게 쇼맨십을 해야 국민정서의 칼 날 끝이 정부 및 집권당으로 향해지지 않을지 칼과 총을 무지막지하게 겨눠봤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쇼맨십 분야로는 만렙이라 보면 되겠다. 사실은 이 엄청난 국가재난에도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지는 선거를 목전에 둔 그들이 주요하게 생각할 쟁점이 아니다. 미쳐 날뛰는 광신도를 제외한 평범한 지지자들은 긴가민가하거나, 애써 부정하고 있지만, 제발 좀 환기를 하고 이 사태에 이 정부가 하고 있는 대응을 침착하게 살펴보라. 물론 현 야당 역시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시절 당했던 만큼 최대한 현 정부의 대응에 칼과 총을 들이대야 기사회생할 수 있으니 죽을힘을 향해 달려 들어보지만 아무래도 이 싸움은 영 그들 능력 밖의 일인 듯싶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눈치싸움, 개싸움을 하는 윗선의 양반들은 우리(대중)가 개와 돼지임을 안다. 사실상 우리는 개와 돼지가 맞다. 아무런 힘이 없는 우리끼리 이 난세에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영양가 없는 논쟁을 끊임없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들이 진실로 국민을 위하고 살리는 정책을 만들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괜찮아 보이는 쇼맨십을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다섯 치 앞을 내다보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유지거나, 교체하기를 위하여 그저 한 치 앞만 급급한 것이다. 서두에 언급 하였듯이, 쇼맨십을 잘 하는 것은 정치를 잘하는 것이다. 허무하겠지만 이 것이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근본과 체질 상 수박 외에 겉과 속이 다른 모든 것들을 혐오한다. 그러니 정치(쇼맨십)를 잘하는 지금 우리나라의 국가원수가 소름끼치게 섬뜩하다. 그저 국민성이 그러하여 의료시스템이 신식이고, 원활한 것을 국가가 주도한 것처럼 분위기를 형성하고 우매한 국민은 그런 것들에 또 쉽게 속고 있다. 외국에 나간 경험이 없던 31번 확진자는 늘 하던대로 본인의 종교가 주관하는 예배에 참석했을 뿐이었는데, 한순간에 역대급 국민마녀로 지탄을 받게 되었다. 이 나라는 이 국가적인 초대형 재난의 모든 죄는 그 여자와 그 여자의 불결한 종교집단이 지은 것이라 한다.(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대중은 그 종교인으로 분명히 몰아갈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전혀 아니다.) 물론 조심성 없이 집회를 꾸린, 근본 없는 사이비종교에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성이라는 게 있는 정부라면 세월호 때 박근혜대통령이 짊어진 죄의 반의 반만큼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가장 기본 적인 의무를 지키는 일에 구멍이 난 것을 인정하고 국가의 컨트롤기관로서의 처절한 반성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나는 역대 기록에 남아도 부족함이 없는 초대형 국가재난이 휘몰아치고 있어도 지지율에 큰 변동이 없다는 이 나라의 현실이 믿겨지지가 않고, 실로 분통터지게 개탄스럽다. 대한민국의 성장 및 국익은 저 멀리 치워두고 평등 같은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며 쇼맨십을 하는 국가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나는 코로나로 쓰러져가는 국민보다, 최전방에서 환자를 돌보는 영예로운 의료진보다, 이 땅에 내 가족과 잘 살아보겠다고 사업을 꾸린 자영업주들이 눈물겹게 가엾다. 모든 것이 멈춰 버린, 그리고 모두가 버린 도시에서 생계를 위해 나아가야만 하는 그들과, 격리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집 안에 갇혀 사는 그들의 어린 자식은 무슨 죄인가. 죄라는 것이 있다면 누가 지은 것인가. 우리세대가 이 나라에서 가장 잘 살았던 세대로 남을 것이라는 슬픈 전망을 해본다. 살면서 경제가 어렵다 해도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느낄 만큼 격하게 변화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전염 질병으로 얼어 붙은 상황 때문이라고 해도 이 긴 시기를 이겨낼 만큼의 힘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있을까. 나는 두렵고 무섭다. 이 쓰러져가는 작은 도시의 소시민으로서 원통을 담아 글을 써 본다. 나는 그저 이념을 떠나 최선을 다해 노력한 이가 정당하고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원할 뿐이다. 그 것이 공평하지 않은 결과를 주더라도 말이다. 나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주의체제 아래의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 및 생존을 위한 원활한 경제활동에 대하여 분명한 책임이 있고, 의무 이상의 막중한 중대가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 글이 정부에 반하는 입장으로의 선동이 되더라도. 지지하는 모든 이의 돌맹이를 맞게 되더라도. 저물어 가는 도시 속 작은 공장에 조그맣게 움츠려 앉아 있는 가엾은 내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눈물을 머금고 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