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전남 광주 폭력조직인 서방파의 행동대장을 시작으로 폭력계에 발을 들여놓은 김씨는 1977년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군소 폭력조직들을 제압하면서 전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정ㆍ재계는 물론 연예계에까지 인맥을 넓히며 활동하다 뉴송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폭행 사건을 계기로 폭력계의 대부로 우뚝 섰다.
김씨는 이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1986년 징역 5년 및 보호감호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 폐암 진단을 받은 뒤 수술 등 건강상의 이유로 한때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기도 했지만 1992년 `범서방파' 결성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조직범죄단체 구성죄가 인정돼 징역 10년형을 받고 줄곧 수감생활을 했다.
특히 조직범죄단체를 구성한 혐의로는 처음으로 검찰로부터 1심과 2심에서 모두 사형이 구형됐고 1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십수 년을 복역한 김씨는 2004년 10월 풀려난 뒤 보호감호 처분을 받아오다 지난해 7월 사회보호법이 폐지되면서 `온전한 사회인'으로 되돌아왔다.
김씨는 인천의 한 교회에서 집사로 활동하면서 최근까지도 소년원, 경찰서 등을 찾거나 tv 등을 통해 신앙 설교 및 간증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히 최근 경찰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는 "청송교도소 수감 시절 아내가 유산했다는 소식에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지만 숨이 붙어 있었고, 반평짜리 독방 마룻바닥을 헤매던 나를 일깨운 것이 성경책이었다"며 창세기를 5분여간 외워 경찰 신도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김씨의 이러한 건실한 생활은 그동안 여실히 공개된 데 반해 그 이면에는 사행성 게임장 운영과 경품성 상품권 유통 개입 등의 소문이 끊이지 않아 검찰과 경찰의 내사를 받아왔으며 급기야 최근에는 감시 대상 인물로 지목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