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3시 15분께 부산 남구 광안동 탑마트 앞 왕복 4차선 도로에서 박씨가 자신의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몰고 수영구청 방면으로 달리다 길 옆 버스승강장 기둥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박씨가 가슴 등을 크게 다쳐 현장에서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당시 승용차에는 박씨 혼자 있었고 이 사고로 버스승강장이 일부 부서진 것 외에 다른 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사고 장소가 직선도로인 점으로 미뤄 음주운전 여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중이다.
이름 : 박동희
생년월일 : 1968년 1월 4일
신체 : 186cm, 88kg, o형
학력 : 고려대학교
소속 : 前 삼성라이온즈 21번,투수
수상 : 1994년 세이브포인트 2위
취미 : 영화감상 '비운의 투수' 박동희는 누구'…'제 2의 선동열'에서 방출까지 명암교차
22일 교통사고로 사망한 전 롯데자이언츠 투수 박동희는 아마 시절 ‘제 2의 선동열’로 불릴 만큼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으나 프로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야구선수로서는 극단적인 빛과 그늘을 가진 ‘비운의 투수’였던 셈이다. 부산고 출신은 박동희는 고교 시절부터 150㎞를 넘는 강속구를 앞세워 최동원-선동열을 잇는 대표적인 강속구 투수로 각광을 받았다. 고교 3학년때인 1985년 봉황대기에서는 ‘방어율 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고려대에 진학한 이후에도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다. 1990년 프로진출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이를 뿌리치고 당시 최고 계약금인 1억5200만원에 롯데에 입단하기도 했다. 박동희는 프로 신인시절에는 아마시절의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했다. 데뷔 첫해 10승 7패 7세이브를 거뒀고,데뷔전에서 10탈삼진을 기록하며 신인 데뷔전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91년에는 14승 9패 3세이브를 거두며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1992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이정훈-이강동-장종훈-강정길 등으로 이어지는 빙그레 이글스의 다이너마트타선을 상대로 2승1세이브를 거두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강속구에도 불구하고 컨트롤면에서는 약점을 보였다. 그러나 그동안의 무리한 투구 때문에 고질적인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며 이후 부진을 면치못했고,결국 1997년 삼성라이온스로 트레이드 됐다. 그는 1997년부터 삼성에서 뛰며 5년간 단 7승밖에 거두지 못하다 2002년에 방출돼 은퇴의 길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