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7월달, 방학식이라 학교가 빨리 끝난 날이었다. 그 때 나는 친구들과 놀러나갔다. 근처 카페에서 얘기하면서 새로 산 틴트를 발라보던 도중에 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친구는 자기가 지금 힘들다고 했다. 전화를 걸었던 친구는 가족사정이 좋지 않았고 가출을 자주 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우리집에 와서도 지낼만큼 친했다.
그 친구는 그 때 남자친구네 집에서 지냈는데, 남자친구와는 가끔 무인모텔을 잡아서 어른흉내를 내기도 한다고 자랑하듯 말했던게 기억이 난다.
난 몸무게가 아주 많이 나갔고, 그때 20키로 남짓 살을 뺀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남자애들 사이에서 '저런 애가 있었구나' 하며 화자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간혹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네이트온이나 싸이월드를 통해 연락과 일촌신청이 오기도 했다. 뚱뚱했을때는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장난'으로 생각하고 넘길만큼 나는 멍청했다. 살이 빠지고나서무터는 남자들이 나에게 호의적이어서 그때문에 나쁜일이 생길거라 생각 못했다.
아무튼 그 친구의 전화를 받았던 애는 '얘 지금 무인텔에 있다는데 우는 것 같아. 나랑 같이 가줘, 무서워' 하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섭다는 말이 왜 붙었는지 더 곰곰히 생각해야했다.
전화가 왔을 때 나 포함 4명이서 있었는데 나를 유독 아끼던 친구가 '얘는 나랑 화장품 사러 가야해. 너 혼자 가 얘 끌어들이지 말고' 식으로 말했다. 난 그 때 그 친구의 호의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도 친구가 힘들다잖아, 집 가서 연락할게' 하고 말했다.
그리고 무인텔에 도착했다. 몇몇 친구들은 민증이 있어서, 그걸 찍고 자주 드나들었다. 주로 술마시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나도 몇번 같이 가봤기때문에 거부감은 없었다. 처음에도 신기하기만 했다.
들어가기전에 전화를 받은 친구네 집에 들러서 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전화를 건 친구와 아는 얼굴 2명과 모르는 얼굴 4~6명 정도가 있었다. 그 친구는 기다리다 지쳐서 자기 친구를 불렀다고 한다. 술마시고 놀자고 했다. 여자는 친구 두명과 나 이렇게 셋 뿐이었다.
처음에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울었고 우리는 그걸 달래주었다. 모르는 얼굴도 있어서 친해질 겸 술게임을 시작했고, 나와 전화를 받은 친구는 무척 취했다.
화장실에 다녀오고나서 기분이 나아졌냐고 물어보려는데, 전화를 걸었던 친구가 없었다. 당황했다. 전화를 받은 친구가 말해주기로는, 남자친구에게 연락이와서 나간지 꽤 됐다는 것이다. 금방 돌아올테니 놀면서 기다리자는 말에 알겠다고했다. 이미 나는 친구가 언제 나갔는지도 모를만큼 꽤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게임은 계속되었다. 타겟은 분명히 나와 내 친구였다. 손병호게임, 베스킨라빈스31, 더게임오브데스와 같이 지목할 수 있는 게임만 주구장창 했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곧 나는 잠들었고, 누군가가 찢어지듯 소리지르는 소리에 깼다. 전화를 받았던 친구였다. 그 남자들은 내 친구에게 술을 부어댔다. 그리고 옷이며 이불이며 술에 잔뜩 젖어있었다. 나는 놀래서 친구를 부축했다. 내가 잠든 후로도 계속 술을 마셨는 지, 괜찮다던 그 애는 계속 토했다.
남자들의 타깃은 내가 되었다. 한명이 목을 졸랐고, 머리가 당겨졌다. 옷을 벗기는 손에 긁힌 자국이 있는걸 나중에 발견했고, 그곳이 아주 아팠다. 웃기게도 당할 때의 기억은 잘못했다고 애원한 것, 담배냄새, 도중에 발목을 잡혔던 기억뿐이다. 술에 젖은 친구가 퇴실시간이 다 됐다며 깨웠고, 우리는 대충 화장만 지우고 나왔다. 집가는동안 멍해서 아무 생각도 못하다가 집에 도착해서 미친듯이 울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첫 타깃은 내가 아니라 전화를 받은 친구였다. 전화를 건 친구는 '얘 아다야' 하며 그 친구의 처음을 그들에게 판것이다. 하지만 술자리에 내가 왔고, 그때 거래가 더 진행됐다고 한다. 그 친구는 너무 취해서 계속 토하고 난리가 나니까 그 친구가 깰 때 까지 모든 남자들의 타깃이 내가 된 것이다.
나는 내가 내 몸을 판 것 처럼 소문이 났고, 그들은 나 쟤랑 잤다며 자랑을 하고 다녔다. 내 몸매와 외모에 대한 품평과 '그래도 쟤정도면 먹을 맛 나지' 라는 말들을 들으며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들을수록 나는 아무 억울했다. 그래서 내 의지로 자고다녔다. 관계라는 것이 내겐 너무 쉬웠고, 즐긴다기보다는 나를 씻어내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이게 뭐라고 그랬을까 하며 그들에 대한 혐오감이 나날히 커졌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타학교 남학생과 연애를 하면서 관뒀다. 그 남자애는 아주 모범생이었고, 수많은 소문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주 사랑해주던 애였다. 그 덕분에 많은 친구를 잃었고 (버릴 수 있었고) 하지 않았던 공부도 손에 잡아볼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남자친구를 따라 아주 모범생처럼 학교를 다녔는데, 그래도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그 소문을 아는 눈치였다. 실제로 학급미화로 말다툼이 있었는데, '몸대주고 인생 편하게 살아서 이거 하나 니 맘대로 못하는게 그렇게 불만이야?' 라는 소리를 들었다.
솔직히 가끔은 내가 꿈을 꾼 것 같다. 믿어지지 않을때도 있지만 아직도 너무 선명하게 기억난다. 특히 내 발목을 잡아끌던 감촉이 생생하다.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세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그 애들이 너무도 잘 지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8년간 정신과 약을 복용했고, 입원을 3번 했다. 고등학교도 자퇴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다행히도 지금의 나는 어느정도 이겨냈다. 아니, 정확히는 그때보다는 훨씬 괜찮아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많은 곳이 무섭고, 낯선 남자가 말을 걸면 두렵다. 잠들기 전 숨이 멎는 기분이 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가질때에도 발목의 감촉이 생각나서 울어버리거나 잘못했다고 애원할 때가 있다.
근데 정작 가해자들은 잘 살고있다. 한명은 법학과에 입학했고,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대기업에 취업했다. 물론 배달이나 핸드폰판매와 같은 일을 하는 애들도 몇몇 있지만 영화처럼 완벽한 인과응보를 겪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나만 처참히 무너졌다.
두번째는 이건 무게가 있는 악몽이라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나는 아직도 그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위로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렇게 지내고 있음을 털어놓으면 후련해질까 해서. 그러다보면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서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들은 나의 대나무숲이다. 그러니 무슨 반응을 해도 나는 일절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볼 것 같아서이다. 솔직히 죽을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 뒤로 내가 너무도 못나보이고 더럽게 느껴지고 그랬다. 하지만 난 아직 살아있다. 온전한 사랑을 받아보기도 하고, 대학생활도 하고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이게 혹시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한번만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말이 들어보고싶었다. 그들을 동정하거나 위안삼을 생각은 하나도 없다. 그들만이 나를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오래된 일 하나 가지고 너무 힘들어 할 필요 뭐 있냐는 소리를 들었다. 근데 난 그게 안된다. 힘들다. 이따금씩 등 뒤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이 고통을 아는 사람에게서 무슨 말이라도 듣고싶었다. 그러니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는 누군가도 같지 않을까. 그냥 간단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