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gue girl(이하 v.g.) 그간 tv에서 짧은 머리만 본 것 같은데 오늘 보니 긴 머리도 꽤 잘 어울리네요.
윤하 초등학교 이후로 머리를 길러본 적이 없어요. 중학교 때는 두발 규정이 있었고, 졸업하고 나서는 기를 틈이 없었죠. 사실, 제가 짧은 머리를 좋아해요. 지금 머리도 어깨를 조금 넘겼을 뿐인데 거추장스러운걸요. 편한 게 좋아요. 평소에는 옷도 청바지에 티셔츠만 고집할 정도로.
v.g. 정규 앨범 발매 이전에 먼저 ‘오디션’이란 곡을 선보였죠.
윤하 네, 가사가 제 경험담인….
v.g. ‘엄마에겐 비밀로 해줘,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하는 걸 보니 엄마에게 혼날 만큼 오디션을 많이 봤나 봐요?
윤하 다 합치면 스무 번이 조금 넘나.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데, 중학생이 혼자 그렇게 다녔다고 생각하면 적진 않죠. 지금 소속사에도 네다섯 번 정도 봤을 걸요.
v.g. 1집은 ‘오디션’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사랑 노래가 대부분이에요.
윤하 가수에게 1집은 하얀 캔버스 같은 존재예요. 대중들이 10곡 남짓한 앨범 한 장만으로 그 가수의 존재를 접하고 정체성을 판단하게 되니까요. 전 지금의 나이와 감성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타이틀곡 ‘비밀번호 486’과 후속곡 ‘연애 조건’ 모두 애절한 사랑 노래는 아니에요. 아직은 어리잖아요. 게다가 동안이고. 이런 제가 가슴 아픈 사랑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걸 저답다고 믿어주겠어요? 풋풋한 사랑 노래가 더 설득력 있죠. 아직은 성숙한 노래보다 지금밖에, 아니 지금이니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v.g. ‘비밀번호 486’은 휘성이 작사했죠. 그와 작업할 때 몹시 긴장했다고 들었는데.
윤하 선배의 음악을 듣고 자란 까마득한 후배인데 긴장할 수밖에 없죠. 주변에서 그가 호랑이 선생님이란 얘기를 자주 듣기도 했고요. 프로듀서 소개로 처음 만났는데 얘기하다 보니 맘도 잘 맞고 음악적으로도 배울 게 많은 선배더라고요. 작업할 때는 소문만큼 무서운데 사적으로는 농담도 잘하고 재미있으세요.
v.g. 전문 프로듀서가 아닌 선배 가수와 함께했으니 좀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윤하 선배가 보컬, 작사, 작곡가로서 녹음과 공연 경험이 모두 있으니까 좀더 실질적인 조언을 해줘서 좋았어요. 전문 프로듀서들은 녹음 중에 이 부분은 좀더 슬프게 부르라고 하는데, 수많은 슬픔 중에 도대체 어떤 슬픔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답을 찾곤 하는데 둘의 생각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드물어요. 제 답이 참신하다며 채택될 때도 있지만 전문가가 생각하는 관점도 무시할 순 없으니까요. 선배는 이 부분에서는 호흡을 깊이 내면서 머리를 울려 소리를 내라는 식으로 세부적인 지적을 해주니 서로 만족스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v.g. 그런데 ‘비밀번호 486’에서 486의 의미를 알고 있었나요? 그건 삐삐 세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건데…. 윤하 하하, 정말 몰랐어요. 삐삐를 써봤어야 그게 ‘사랑해’란 뜻인지 알죠. 휘성 선배에게 들으니 그것도 당시 애인이 없었으면 모른다고 하던데요(웃음).
v.g. 사실 요즘 여가수들의 노래가 다 비슷하게 들려요. 창법도 분위기도 마치 섹시한 댄스와 우는 듯한 발라드의 양분인 것만 같죠. 그 사이에서 당신의 시원시원한 목소리는 꽤 독보적이에요.
윤하 병원에서 그러는데 제 성대가 선천적으로 고음을 잘 낼 수 있대요. 대신 저음은 약해요. 하지만 옥타브만 높이 올라가거나 테크닉이 좋다고 해서 노래를 잘한다고 할 순 없죠. 표현의 차이인 것 같아요. 목소리는 외모처럼 각자가 가진 개성과 매력이니까요. 자신의 목소리로 가능한 가장 좋은 발성을 내는 거죠. 물론 유행의 압박을 부인할 순 없지만. 한때는 하드록에 빠졌었는데 그런 노래를 하기엔 제 목소리가 너무 부드럽더라고요. 좀더 강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 개인적으로는 발음이 정확해서 좋아요. 요즘 바이브레이션만 들리는 노래가 워낙 많아서요.) 노래는 가수의 입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잖아요. 정확한 전달과 분위기,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아요.
v.g. 그럼 5년간 있었던 일본 얘기를 해보죠. 처음 일본에 가게 된 계기는 뭔가요?
윤하 소속사에서 데모 테이프를 일본에 보냈는데 그쪽에서 먼저 데뷔를 제안했어요. (v.g. 아직 어린 나이였는데 고민은 없었나요?) 어려서 더 고민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가면 잘 될 줄 알았거든요. 혼자 살아야 하니까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죠. 생각해보면 그땐 나이가 아니라 생각이 어렸어요.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음악은 뒤로 제쳐놓고 일단 스타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거든요. 노래하는 건 좋은데 죽을 때까지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제 목소리를 단순히 유명해지기 위한 도구로만 여겼던 거죠. 그때 보아 선배가 오리콘 차트 1위 하고 시부야 번화가의 쇼핑 센터에도 대형 사진이 붙어 있을 정도로 유명했거든요. 그냥 열심히 하면 선배처럼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첫 번째 싱글 앨범을 냈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았어요. 그때 많이 좌절했죠.
v.g. 싱글 앨범 발매 후 첫 라이브 공연 때 관객이 단 두 명이었다면서요?
윤하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을 했는데 관객이 두 명밖에 안 왔어요. 박수는 매니저만 치고. 그땐 당황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하니 추억이네요. 10개월 후에 두 번째 싱글이 나왔는데 그 곡이 혜성이라는 뜻의 ‘호우키보시’예요. 애니메이션에도 삽입되고 여름이라 콘서트도 많을 때여서 홍보할 곳도 많았고, 여러모로 운이 좋았어요. 결국 오리콘 차트 톱10에도 들었고. 너무 행복했어요. 실패한 싱글이 없었다면 그 행복도 없었겠죠. 그 후에 같은 곳에서 공연했는데 관객이 하나 둘 늘더라고요. 고정 팬도 생기고.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파티처럼 재미있게 놀면서 공연했어요. 즐겁게 노래한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깨달았죠.
v.g. 오리콘 차트보다 라이브 카페 공연이 더 많은 교훈을 가져다준 것 같은데요?
윤하 예전에는 음악을 심각하게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공연을 하다 보니 음악이란 하나의 신나는 의사소통 방법이란 걸 알았죠. 성격, 상황, 기분이 다 다른 관객들이 음악 하나로 다같이 즐거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해요. 그것도 정서가 다른 나라에서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니 저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해준 관객들 하나하나가 다 고맙더라고요. 몰랐던 사람들이 공연이 끝날 때쯤에는 서로 즐거워서 삼삼오오 같이 나가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 그게 노래가 지닌 힘이자 가수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지켜려고 노력해요.
v.g. 일본과 한국 팬들은 많이 다른가요?
윤하 한국 팬들은 무대에 걸어 나가기만 해도 무조건 소리를 질러줘요. 그런데 그게 단순히 반사적인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좋아해줘요. 무대에 올라보면 알 수 있어요. (v.g. 왠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에게만 소리 지를 것 같은데요?)사실 풍선으로 티가 나잖아요. 누구의 팬이 어느 정도 분포해 있는지. 하지만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팬들이 서로 편먹고 야유하고 그러진 않아요. 풍선 색이 달라도 제 노래를 따라 불러주는 걸 보면 그 순간만큼은 음악적으로 통했다고 생각하니까 기쁘죠. 일본은 공연을 즐기는 방식이 많이 달라요. 우리나라는 공연에 커플이나 친구와 함께 가잖아요. 일본엔 혼자 오는 사람이 더 많아요. 눈을 감고 듣고 있기도 하고, 어깨를 살짝살짝 흔들기도 하고, 자기 방식대로 즐겨요. 연령대도 다양하고요.
- photographed by hye w. kang
- 에디터 : 정윤주
- 스타일리스트 : 김봉법
- 헤어 & 메이크업 : 류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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