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의 연애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운명처럼 만나서
가진 건 없지만 오빠가 너 행복하게 해줄게
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정말 가진 건 없었지만 여태 만나본 사람 중에서는
가장 로맨틱했다고는 생각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챙겨주고
서로의 집을 오갈 때마다 직접 맛있는 밥상 차려 주고
보고싶다며 한달음에 달려오는 남자는 처음이었거든요.
서프라이즈로 나타나길 자주 했습니다.
가진 게 없어서 미래는 걱정됐지만
일단은 영화 속 주인공을 만들어주는 이 사람과
연애만을 생각하기로 하고 사겼습니다.
사귀다보니 가진 게 없는 것 만큼 미래를 생각하기 어렵게 만드는 게 또하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가장 로맨틱 했던 만큼 가장 감정적인 사람이었어요.
가장 큰 장점이 가장 큰 단점이 되는 순간들.
그의 집에 있을 때 쫒겨난 경험
(몇 개 안되는 짐을 싸서 돌아가란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진짜 무너졌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바로 미안하다고 하고 상황이 종료됐지만요.)
데이트 중 싸우고 내 집으로 돌아와 몇 개 안되는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간 경험
(화나서 홧김에 그렇게 행동한 거라고 생각할 테니 그만 돌아와서 화해하잔 제 말에
이 싸움은 좋게 끝났습니다.
남사친을 만나는 것에 싫어했던 남친에게 그 친구를 만나 밥 한끼만 하겠다는 말로 다툰 경험
(그는 왜 개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카톡으로 저를 다그쳤습니다.
결국 제가 미안하다고 하고 아직 잡지도 않았던 약속이라며 사과하고 끝냈습니다.)
그러다 어제는 데이트를 하다가 음식집에 들어갔습니다.
주말 내내 너무 많은 음식을 먹어 배가 아픈 상태였는데 뭔가 애매한 느낌이어서
표정이 안좋았나봐요.
주문한 음식을 들고 온 그 사람이 눈치를 살피더니 뭔 생각하냐고 계속 물었고
저는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음식에 집중하고 있는 거라구요.
계속 분위기가 좋지 않자 그 사람도 표정이 안좋아지더니 먹고있던 음식을 양손으로 구겨버립니다.
순간 그 모습이 제게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으깨진 음식을 보며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감성적으로 연애하지만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
감성적 연애와 감정을 잘 통제하는 능력은 양립하지 못하는 것인가요?
그대로 음식집을 나와 단 한 번도 내뱉지 않았던,
이별을 암시하는 말을 하고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중간에 그가 내 책임도 운운하며 말을 걸었지만
열정적으로 싸울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할말 없다며 돌아온 거에요.
그 사람은 우리집에 있는 자신의 짐도 택배로 붙여달라고 했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자기 집 주소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프로필 사진도 단 번에 사라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화도 났지만 이별의 순간엔 정말 많은 감정들이 교차하잖아요.
그냥 내가 배아프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 순간에 말할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기에 그건 돌이킬 수 없던 일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싸움을 걸어오는 그 순간에 나도 할말을 다 하고 돌아왔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까?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상자를 주워와 그의 짐을 쌌습니다.
몇 개 되진 않았지만 쌓다보니 빨래통에 놓인 그의 옷가지와 양말이 몇 개 있더군요.
그냥 보낼 순 없을 거 같아 빨래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또 멍해져서 티비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초인종이 울리고 누군가 해서 문을 열었는데 그 사람이었어요.
내 짐을 가져왔다고,
몇 개 안되는 거 택배로 싸기도 뭐해서 가까우니까 자기 짐을 직접 가지러왔다고.
왜 왔을까 란 생각도 들었고, 무슨 말을 해야하나 싶었습니다.
주섬주섬 짐을 싸고, 돌아가던 세탁기도 정지시켜 꺼내 가져가더군요.
그리고 진짜 가버리자 속이 울렁거리듯이 더 답답했습니다.
고마웠어라고 카톡을 남겼는데, 그게 내가 붙잡을 여지를 주는 건지.
그럼 너무 비겁한 것은 아닐까요..
결국 저는 그 밤,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공허하다고 했어요. 마음이나 달랠까 전화했다고.
끝인 거 아는데 너무 마음은 아프다고.
그리고 모든 순간을 좋게만 끝내려는 그에게 잔인하다고,
사실 오빠는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됐다고.
다 행복해도 그런 것들 때문에 얼마나 상처받았는 줄 아냐고.
원망어린 말도 했습니다.
구질구질 하죠?
마음 아프다고는 하는데
돌아갈 생각도 없어보였습니다.
저도 겁이 많이 나서 무서웠구요.
이별하는 것이 맞겠죠?
좋은 순간들이 문득 생각날 때마다
그 사람의 행동이 정말 별것이 아니었나
란 생각을 하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