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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차인표 직접 쓴 일기 - 그 두번째 이야기

charge007 |2008.04.29 00:00
조회 3,653 |추천 0
컴패션밴드       1952년. 전쟁 중인 한국에 스완슨이라는 미국 목사가 왔다.   그는 전쟁 통에 얼어 죽고, 굶어 죽어가는 한국의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눠지기 위해 컴패션 (compassion) 이라는 어린이 양육단체를 만들었다. 죽어가는 한국아이를 향해 내민 한 사람의 손길은 56년이 지난 지금, 100만개의 손길로 늘어났다. 절대 가난에 처해, 외부의 도움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전 세계 100만 명의 어린이들이,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선 또 다른 100만 명의 후원자들과 1:1로 결연이 되어 있는 것이다.
    패션밴드는 전 세계의 가난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 2006년 봄, 한국에서 만들어 졌다. 당시에는 일곱 명이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일흔 명이다. 당시에는 아마추어들이 노래했는데, 지금은 프로들이 노래하고, 춤을 춘다. 돈을 받는 사람들은 없다.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며, 모두 어린이와 1:1 결연을 하고 있는 후원자들이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뿌리가 같은 나무에서만 똑같은 열매가 열리듯, 그날 그들이 반복해서 불렀던 노래에는 사랑받지 못한 사람을 향한 사랑과,
위로받지 못한 사람을 향한 위로와, 고통 받는 사람의 고통을 함께 나눠지려는 예쁜 마음이 담겨있었다.   슬픔농담     1차 한국촬영을 마친 우리는, 2007년 7월 말경 중국으로 건너갔다.     탈북자들이 공안에게 쫓기는 장면을 촬영하던 날은 참 더웠다.
탈북자로 분한 한국배우들이 중국 공안역할을 맡은 현지인들에게 쫓기는 장면이었다.  
  무더위에 지쳐 살살 뛰는 중국 공안들에게 현지 코디가 이렇게 주문했다.   “실제로 한명이라도 잡는 사람을 제일 먼저 쉬게 해주겠습니다.”   촬영이 시작되자 모두들 전속력으로 뛰었다. 하루 종일 뛰고, 달리고, 또 뛰고, 계속 달렸다.     내 옆을 지키던 탈북자출신 사투리선생도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넌 뛰다가 힘들면  쉬었다가 다시 뛰면 되잖아. 다 뛰고 나면 호텔로 돌아가서 배불리 먹고, 잘 거잖아. 우리는.. 아무리 뛰어도 돌아갈 곳이 없어.”
  2007. 7. 25 중국     이날은 탈북자들이 독일 대사관에 진입하기 위해 은신처에서 출발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극중의 탈북자들이 타는 승합차로, 제작진이 중국에서 구한 차들이다.
협찬을 받은 것도 아닌데 약속이나 한 듯 국산차량이 여러 대 와 있으니까 기분이 우쭐해 졌다.     비가 올 듯 말 듯,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하늘에는 먹구름이 짙게 깔려있었다.     아파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수십 번, ok 싸인을 받았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버렸다.
날이 저물자 비가 한 방울씩, 두 방울씩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마치 하늘이 흘리는 눈물같았다.
2007년 7월25일, 그날은 탈레반에 의해 배형규 목사가 피살된 날이다.   출처 http://www.crossing2008.co.kr/asp2/event2/   <크로싱 홈페이지-차인표 포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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