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논 창문으로 봄바람의 향내가 온 집안을 물들이고 있었다.
은서는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소파에 기대어 깊은 사념에 빠져들었다.
재현은 잠결에 몸이 불편하여 뒤척이다 서재의 의자에서 잠이 든걸 깨달코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문득 재현의 눈에 식어버린 찻잔이 들어왔다.
아마 은서가 자신이 잠든사이에 놓고 간 것이리라.
침실로 가기위해 서재를 나서던 재현은 거실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은서를 발견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잔뜩 찌프린얼굴로 깊은 생각에 빠진듯 했다.
은서에게 말을 걸기위해 입을 열던 재현은 왠지모를 분위기에 입을 다물었다.
달빛을 받은 은서의 모습에 눈길을 주었다.
임신으로 인해 조금 살이 찐듯한 은서는 어느때보다도 더 사랑스러웠다.
이제는 제법 티가 나려는 배에 재현의 눈이 멈추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지만 확실히 아기의 존재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배였다.
예전의 은서라면 본인의 버릇대로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있을 텐데 이제는 불편한지 배에 손을 얹고 앉은 모습이었다.
은서의 임신은 재현에게도 뜻밖의 일이었다.
본인 나름대로 철저히 한다고 한 피임이었는데 어느 순간 아기가 잉태되었던 것이다.
또한 은서가 임신사실을 알고 고민했을거란 생각에 왠지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만약 은서가 다른 생각을 했더라면…………..
떠오르기도 싫은 생각이다.
자신의 또다른 생명이 어느 이름모를 차디찬 병원수술대위에서 없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여자에 대해 그리 욕심이 많지았던 재현이었다.
본인이 욕심을 내지 않아도 끊임없이 꼬이는게 여자였다.
나이가 들면서 경제력이 더 강해질수록 여자들은 더욱더 재현의 주위에서 맴돌았다.
재현본인도 부담없는 관계의 여자는 굳히 거절하지 않았었다.
그런 여자관계라서 그런지 자연히 특정한 애인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은서를 보기전까지는……….
은서에 대해서는 한없이 욕심이 생기고 탐이났다.
처음 회사 복도에서 마주치듯 본 은서는 옷차림은 차가운 분위기였지만 언뜻 본 눈동자는 많은 감정이 숨은 눈이었다.
그런 눈동자에 첫눈에 매료되어 호기심이 생긴 재현이었다.
사람이란게 한번 관심이 가면 눈은 저절로 그 대상으로 향하게 된다.
마치 누군가 짜 놓은듯히 그후 은서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아니 지금 생각에 보면 재현의 눈이 은서를 찾았던 것 같다.
회사내에서는 다소 차가운듯한 분위기라는 평판의 은서였다.
하지만 그동안 같이 지내면서 본 재현의 결론은 은서는 열정 그 자체였다.
처음엔 다소 감정을 억눌르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요즘은 임신때문인지 다양한 은서의 모습을 보게 되는 재현으로선 은서가 한없이 귀여웠다.
재현은 은서에게로 발을 옮기며 은서를 불렸다.
“ 은서야, 서은서.”
재현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반응하듯 정신을 차린 은서는 달빛을 등진 재현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 은서야, 뭐해? 잠이 안 와?”
재현의 부드렁운 목소리에 은서는 슬픔을 느꼈다.
“ 오늘따라 잠이 잘 안오네요…”
‘ 저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
저 자꾸 기대게 되고 재현씨한테 욕심이 생겨요. 저 그러면 안 되죠?
저 재현씨한테 점점 욕심부리면 안되는 거죠?’
안타까운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한채 은서는 재현을 마주보면 웃었다.
은서앞까지 온 재현은 은서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재현의 손을 마주 잡은 은서는 재현의 품으로 들어갔다.
은서에겐 어느것보다 따뜻하고 편안한 재현이 품이었다.
재현은 은서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은서의 체온을 음미했다.
둘의 포웅과 함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